萍 - 창고 ㅈ ~ ㅎ/재벌가 인사이드

4 재벌은 행복한가 (上)

浮萍草 2014. 6. 28. 11:44
    돈 많은 재벌, 과연 행복할까?
    자살한 딸을 가족 사진첩에서 지운 재벌 회장 지난 1993년 8월 어느날. 회사로 모그룹 홍보담당 임원의 전화가 걸려 왔다. 차분한 어조로 “어제 슬픈 일이 있었다”면서“가족의 아픔이니까 당분간 기사가 안나갔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좋은 일도 아니라서 기사를 잠정적으로 보류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상 엠바고인 이 기사는 7~8년 흐른 뒤 한 여성지가 보도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외동 아들이 병사한 내용이다. 고 3이었던 외동 아들을 잃은 구 회장은 그 일이 있은 뒤에 딸을 하나 얻었고 동생(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광모씨를 2004년 양자로 입적시켜 현재 LG그룹의 후계자로 경영수업을 시키고 있다. 재벌 집안에 태어난 것이 복이라며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재벌 집안은 나름대로 불행한 과거를 갖고 있다. 국내 굴지의 재벌가에 아픔이 없는 집안이 별로 없을 정도다. 국내 최대 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현대·LG·롯데·옛 대우 그룹 총수 집안에도 총수보다 먼저 자식을 잃는 슬픔이 있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씨는 2005년 미국 뉴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처음에는 교통사고로 발표했으나 자살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재벌가의 막내딸이 자살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 후 삼성 이건희 회장 가족 사진첩에는 막내딸의 얼굴이 지워졌다. 부모 보다 먼저 생을 마감한 자식에 대한 원망과 사진을 보는데서 오는 슬픔으로 인해 지워 버렸다는 후문이다.
    ▲ 이건희 삼성 회장(왼쪽)과 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도 생전에 자식을 잃는 아픔이 있었다. 장남인 몽필씨는 교통사고로 4남인 몽우씨는 자살로 생을 마쳤다. 생전에 정 회장은 장남과 4남의 자식인 손녀와 손자를 끔찍이 아꼈다는 얘기가 있다. 정 회장이 타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5남인 몽헌 회장도 계동 현대사옥에서 떨어져 이승과 하직하고 말았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그룹이 한창 잘 나갈 때인 1990년 장남이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는 비운을 맛보아했다. 이듬해 아들의 이름을 따 ‘선재미술관’을 만들고 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선재미술관은 지난해 우양미술관으로 개명 현재도 각종 기획전시 등으로 국내 미술관 중 몇째 안가는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회장의 아들도 이국 아파트에서 추락해 생과 이별하고 말았다. 각종 구설수에 휘말렸던 동학씨는 2005년 태국 방콕 공항 인근 아파트에서 추락한채 발견 충격을 준 적이 있다. 이외에도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차남이 강에서 익사한 일 등 재벌가의 비운은 수없이 많다.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왼쪽)과 신준호 푸르밀 회장

    재벌가들의 비보는 비단 국내 뿐만 아니다.가끔 억만장자의 후손이 어디에서 객사했다라는 보도가 나와 일반인들을 의아케 한다. 재벌가에 대한 비운은 미국 시카고의 ‘세계 제일 가는 9부자 이야기’가 잘 말해준다. 1923년 시카고의 에지워터비치 호텔에서 당시 최고의 부자 9명이 회합을 가진 적이 있다. 막강한 부를 축적한 철강회사와 전기회사 음료회사들이었다. 당대에 성공한 이들은 25년 후 다시 만나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20년 쯤 되었을 때 이들의 후일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세계 최대 철강회사의 사장이었던 찰스 샵은 5년전에 파산하여 빚쟁이를 피해 다니다가 병사하였고 전기회사 사장이었던 샤뮤엘 인셀은 재산을 모두 탕진해 외국 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가스회사 사장이었던 하워드 홀슨은 정신병자가 되고 말았고 증권회사 사장이었던 리처드 휘프니는 범죄혐의로 교도소에 들락거릴 정도로 전과자가 되었다가 병사 하고 말았다. 맥주회사 사장이었던 제스 비브모어와 레온 프레이저라는 은행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30년도 안돼 세계 최고 갑부라는 이들의 말로가 평범한 사람보다 못했다는 시카고의 9부자 얘기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재벌이라고해서 다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들이 증명해 주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재벌가에 며느리로 들어갔다가 얼마 살지 못하고 이혼한 A씨를 몇년전 인터뷰 한적이 있다. 결혼하는 순간부터 숨이 막혀 살기가 힘들었다는 하소연이었다. 마치 새장속에 갇힌 새처럼 자신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는 얘기였다. 도박도 해보고 쇼핑 중독에까지 이르렀지만 상태가 나아지지않아 우울증까지 찾아오자 이혼이라는 극단을 선택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물질은 비록 풍족하지 않을지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주장한 A씨의 생생한 목소리가 지금도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돈=행복’이라는 등식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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