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재벌가 인사이드

2 재벌과 정치의 함수 (上)

浮萍草 2014. 6. 23. 06:00
    대부분 실패로 끝난 재벌 총수와 정권 실세의 정략 결혼
    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대통령이 재벌 때문에 정치를 시작하였다면 얼마나 믿을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가 국회의원직을 반납하면서 생긴 1998년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통해 금배지를 달았고 MB(이명박)는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결별
    하면서 92년 신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박 대통령이 보궐선거에 출마한 대구 달성은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의 지역구였다. 
    김 회장은 선대 회장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에 불어닥친 IMF가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자동차 사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 등으로 그룹이 풍전등화에 놓였다. 
    결국 98년 2월에 국회의원직을 반납,기업인으로 복귀해야 했다. 
    이 지역구에 박근혜 대통령이 투입된 것이다. 
    당시 집권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씨를 내세워 TK(대구·경북) 공략에 온 역량을 집중했다. 
    이에 야당인 신한국당은 박 대통령을 선택 그 바람을 잠재우는 작전을 펴 승리를 따냈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의 정치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MB는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때문에 어쩌면 어부지리로 국회의원이 된 케이스다. 
    1992년 초 정 회장은 통일국민당을 창당 할 때 MB에게 동참을 요구했다. 
    그러나 MB는 거부했다. 
    대신에 YS(김영삼)가 총재로 있는 민자당 전국구 23번으로 등록,가까스로 전국구 초선의원이 됐다. 
    YS가 정주영의 바람을 막으려고 그를 전국구 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MB가 현대측 제의를 거절한 이유를 당시 필자는 심층적으로 취재했었다. 
    정 회장 측근들 중 누구하나 MB를 옹호하는 인사가 없었다. 
    한 공중파 방송에서 MB를 롤 모델로 한 드라마가 히트를 쳐 국민들에게도 ‘영웅’으로 그려져 있는데 의아했다.

    현대그룹과 결별하기 얼마전부터 MB와 정 회장 사이에는 냉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그래도 통일국민당에선 대중성 있는 그를 서울 종로 지역에 공천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뿌리치고 여당인 신한국당으로 가버렸다. 그 뒤 현대그룹 핵심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MB를 원망했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 당선되고 집권하자 정 회장 측근으로 분류된 몇몇 인사들이 공기업 수장까지 차고 앉았다. 정치란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적이 된다는 말이 실감났다. ‘재벌 총수와 최고 통치자’. 이 두사람 중 누구 힘이 센가를 가늠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셈법인지 모른다. 1960년대와 70년대 5공화국인 전두환 정권하에선 흔히 얘기하는 권부 실세마저 총수들을 부하 다루듯 했다. 권위주의정부 시절 재벌 총수들은 권력앞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재벌들은 이를 극복하려고 권력에 기대는 공생의 길을 모색했다. 정권 실세들에게 적당히 뇌물을 주고 혜택 받는 길을 선택하거나 혼맥으로 연결해 ‘가족’을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한화 그룹이 당대의 실력자 이후락씨와 사돈을 맺은 일이나 코오롱그룹이 김종필 전총리 딸과 혼사를 맺은 일이 60, 70년대 대표적인 정략 결혼이다. 5공화국과 6공화국 땐 현직 대통령 가족과 혼사를 맺은 재벌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현직일 때 딸을 SK그룹 최종현 회장 아들과 아들은 동방유량 신명수 회장 딸과 결혼시켰다. 전두환 대통령 역시 현직일 때 포스코 박태준 회장의 딸과 아들의 혼사를 성사시켰다. 이들 중 대부분이 이혼 정략 결혼이 결국은 실패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Premium Chosun         홍성추 재벌평론가 sch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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