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재벌가 인사이드

1 재벌 창업자의 연애법칙, 연예인과 바람이 나도 조강지처는 버리지 않는다

浮萍草 2014. 6. 20. 18:51
     년전 아주 흥미로운 소송이 하나 있었다. 
    친자 확인과 재산분할 소송이다. 
    소송을 한 사람은 1960년대와 70년대 은막을 주름잡던 미모의 스타 H씨였고 당사자는 얼마전 타계한 국내 굴지의 재벌 총수였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H씨와 재벌총수와의 관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재벌 총수와 H씨 사이에는 딸 2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황한 유가족들이 100억원의 현금을 H씨에게 주고 이 소송은 취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H씨가 본명과 자녀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해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은 모르고 지나갔다.
    재벌 가족들과 연예인들의 스캔들은 온갖 루머를 양산하며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다. 
    '모 총수가 연예인 00에게 백지 수표를 건넸다더라’‘00백화점이 연예인 00소유라 하더라’‘가수 00가 홍콩에서 어느 총수의 애를 낳았더라’는 식의 얘기들이 증권가    
    ‘정보지’나 세인들의 단골 메뉴다. 
    이러한 소문들은 자식이 있으면 H씨처럼 늦게라도 반드시 노출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입소문만 무성하고 그냥 묻히게 되고 만다.
    재벌들과 연예인의 구설수는 1970년대와 80년대에 특히 심했다. 
    당시 재벌들은 정경 유착과 새로운 시장 개척 등으로 한창 양적 팽창을 할 때였다. 
    이에 맞추어 큰 기업주들은 대부분 서울 성북동이나 한남동,강남 등 고급 주택단지에‘영빈관’이라는 비밀 접대장소를 만들어 놓고 주요 고객을 초대했다. 
    이런 접대 장소에 여자 연예인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초대자인 총수와의 스캔들로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재벌가와 연예인의 관계는 수없이 있어왔지만 결말은‘해피엔딩’보다 대부분 불행을 자초했다.
    연예인과 재벌 총수와의 만남은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창업주인 경우 혼인 신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연예인은 숨겨진 여인,즉 첩으로 데리고 있었다. 
    반면 2, 3세에 이르러서는 초혼이든 재혼이든 정식 부인으로 연예인을 대우해 준다. 
    후처 연예인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 지난 1977년 미스 롯데로 화려하게 연예계에 대뷔했던 서미경씨다. 
    서씨는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의 후처로 들어간 뒤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1988년 서미경씨가 낳은 딸을 신 회장의 호적에 입적하면서야 세상에 드러났다. 
    그때까지는 후처로 들어앉았다는 소문만 무성했었다.
    ▲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1974년 롯데모델로
    활동하던 당시의 서미경 씨.
    서씨는 현재 롯데쇼핑 지분을 0.1%(3만531주)나 보유하고 있다. 딸인 유미씨도 롯데쇼핑 0.1%와 롯데삼강 0.33%코리아세분 주식 1.40%를 보유하고 있다. 미미한 주식 지분율로 보이지만 신 회장이 돌아가고 두 아들인 동주,동빈 씨가 지분 경쟁을 벌일 때는 케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수치다. 이들 형제의 현재 롯데 계열사 지분율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형식상 형 동주씨가 일본 롯데를,동생 동빈씨가 한국 롯데를 맡는 것처럼 돼 있지만 주식 소유는 그렇게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재벌 총수와 결혼한 이는 1970년대‘별들의 고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안인숙씨와 60년대 최고의 인기배우였던 문희씨 90년대 모래시계로 유명한 고현정씨다. 재혼으로 정식 아내가 되었던 이는 70년대 최고 스타 정윤희씨와 인기가수‘펄시스터즈’ 멤버인 배인순씨 이다. 안인숙씨는 대농그룹 박용학 창업주의 아들인 박영일 회장과 결혼하면서 은막을 떠났다. 당시만해도 대농그룹은 섬유와 유통,기계 업종을 아우르는 국내 굴지의 회사였다.
    특히 계열사인 미도파 백화점은 젊은이들의 쇼핑장소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1998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해 쓰러지고 만다. 그룹이 해체된 뒤 이들 부부는 조용히 교회일에 전념하며 외부 활동을 삼가고 있다.
    ▲ 조규영 전 중앙산업 회장과 배우 정윤희 씨.
    7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정윤희씨는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과 살림을 차렸다. 당시 조 회장은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1984년 간통혐의로 유치장 신세까지 감수하면서 사랑을 쟁취,오늘에 이르렀다.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와 완전히 발을 끊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변신했다. 중앙산업은 일제시대부터 있었던 회사로 초창기만해도 삼성그룹보다 사세가 더 컸었다.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곁에 있는 태평로 빌딩이 원래 중앙산업의 모태다. 삼성 이병철 회장이 이 빌딩을 사려고 무척 공을 들였으나 팔지 않았다가 IMF 이후 결국 삼성손에 넘어 가고 말았다.
    ▲ 최원석 전 동아그룹회장과 배인순 씨.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안방마님이었던 배인순씨는 워낙 세간에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20여년을 함께 살다가 헤어질 때 폭로전을 하며 구설수를 만들었다. 결혼 직전 최 회장은 동아건설 최준문 창업주의 장남으로 이미 두 번의 결혼 경력이 있는 이혼남이었다. 반면 배인순씨는 국내에서의 활동을 접고 뉴욕으로 건너가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최 회장이 미국까지 찾아와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이 둘은 결혼하게 된다. 결혼후 한동안 잉꼬 부부로 소문나 있었다. 최 회장은 나중에 미스코리아 출신인 아나운서 장은영씨와 살림을 차렸고 배씨는 최 회장과의 관계를 폭로 하는‘커피 한잔’이라는 자전 에세이를 발간,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동아그룹 역시 무리한 사업 확장과 내부 관리 잘못으로 모기업인 동아건설이 부실해지면서 최 회장은 경영 에서 손을 떼게 된다. 1960년대 톱스타인 문희씨와 한국일보 창업주의 장남인 장강재씨와의 결혼도 장안의 화제였다. 그러나 장 회장이 타계하고 한국일보도 최근 장씨 일가에서 삼화제분 집안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회장과 미스코리아 출신 톱스타 고현정과의 결혼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1남1녀를 낳고 짧은 결혼 생활을 청산해야 했다. 정 부회장은 그 뒤 한지희씨와 재혼 지난해 이란성 쌍둥이를 낳으면서 새출발했다.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탤런트 고현정 씨.
    재벌은 아니지만 잘 알려진 기업주와 결혼 했다가 실패한 연예인들도 더러 있다. 이인표 에스콰이어 창업주 3남과 결혼했던 탤런트 황신혜씨와 영화배우 김부선씨의 경우다. 황씨의 남편 이정씨는 한때 패션구두를 생산 판매하는 등 잘나가는 기업가로 활동했지만 기업도 부도가 나고 결혼마저 실패하고 만다. 김부선씨는 극장 재벌로 소문난 단성사 장남인 이주호씨와의 사이에 딸을 하나 뒀다. 당시 유부남이었던 주호씨는 집안에서도 인정 받지 못해 외국을 전전해야 했다. 차남이 운영하던 단성사도 최근 부도를 맞고 말았다. 지난 1990년대 초 잘 나가던 재벌 2세의 몰락을 취재한 적이 있다. 70년대 강남개발로 일약 거부가 된 부친의 후광을 업고 백화점을 운영하는 등 한때 젊은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던 K씨다. 서울대 상대를 나오고 키도 180cm를 넘어 흔히 얘기하는‘신언서판’을 다 갖춘 촉망받는 젊은 사업가였다. 그러나 30대 초반에 큰 사업을 하기에는 무리였는지 마약과 도박 등에 빠져 사업을 멀리했다. 마지막에는 연예인들과 마약 파티를 벌이다 잡혀 패가망신하고 말았다. 함께 마약을 했던 여자 연예인들은 그 뒤 영원히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당시 필자에게 K씨는 이렇게 고백했다. ‘철없는 나이에 원하는 것은 모두 할 수 있어서 결국 마약에 손을 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돈이 있으니까 주변에 채홍사 역할을 하는 친구도 있었을게 뻔한 일이다. 이렇듯 재벌가와 연예인의 결합은 그렇게 좋은 결실만은 아니다. 창업주들은 본 부인이 아닌 후처로 대부분 들였고 2, 3세들은 정식 부인으로 삼았지만 회사가 망하거나 이혼 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재벌가에선 연예인과의 혼사를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2, 3세와 혼사가 많을 것 같지만 스캔들로만 이어지는 것은 이와 같은 재벌가의 불문율 같은 것이 있기 때문 이다. 이를 두고 주변에선 연예인의 기가 세서 재벌가와의 혼사는 맞지 않다고 얘기한다. 재벌 총수의 부인은 밖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조용히 집안에 머물며 대소사를 처리하는 현모양처형을 요구 한다는 지적이다.
    홍성추
    재벌평론가 sch8@naver.com 만 31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았던 필자는 일선기자 시절 주로 기업(산업)분야를 취재했다. 서울신문 주간국 기자로 있을 때는'화제의 창업주'라는 기획물을 연재했고 편집국 산업부장 재직시에는 재벌가의 혼맥을 분석한'재벌가맥' 이라는 기획을 하기도 했다. 특히 재벌가 분쟁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서울신문 STV 대표이사직을 끝으로 언론계 생활을 접고 현재는 한국도시정책학회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서울신문 기자,서울신문 발행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편집장,편집국 기획취재 부장,산업부장,이사대우 광고마케팅국장, 서울신문 STV 대표이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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