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Her Story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浮萍草 2014. 6. 30. 06:30
    “유학때 학업·육아 병행… 뉴욕 미술관 체험 오늘의 나 이끌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후 놀랍게도 과천관 관람객도 곱절 가까이 늘었습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어요. 그동안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이용이 어렵다던 과천관이 아닙니까. 서울관이 문을 열면 상대적으로 과천관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게 아닌가 모두들 걱정했거든요.” 정형민(62)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 뉴스로 도심에 신축된 서울관뿐 아니라‘동물원 옆 미술관’인 과천관의 재발견이 활발해지고 있는 점을 들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3일 만난 정 관장은“서울관 개관을 계기로 국립현대 미술관이 일반에 널리 알려지고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것 같다”고 굿 뉴스의 배경을 설명했다.

    ▲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미술관이 모여 있는
    뉴욕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미술관 인생이 시작됐다”
    며“똑같은 작품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의미도
    달라지며 전시자체가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사람들의 문화 욕구가 커지고 미술관 관객이 전반적으로 늘었어요. 서울관과 과천관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한 곳만 알았다가 미처 몰랐던 다른 곳까지 둘러보는 관객도 적지 않습니다. 서울대공원과 인접한 자연 속 과천관은 전시장도 널찍하고 공예 건축 사진 야외조각 등 볼 게 많거든요.” 문화계의 오랜 바람이 결실을 맺어 서울 북촌,삼청공원 입구 쪽 경복궁 건너편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문을 연 것이 지난해 11월 13일 개관 후 7개월을 맞는 서울관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나들이 인파로 붐비며 어느새 강북 도심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정 관장 인터뷰는 사진촬영을 겸해 서울관 제1전시실에서 시작됐다. 정 관장은“서울관 개관 반년 만에 50만 명이 다녀갔다”며“무엇보다 기쁜 것이 미술관에서 미술품만 보는 게 아니라 식당 음식도 즐기고 데이트도 하며 미술관을 생활공간으로 활용하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서울관과 과천관을 특화해 운영 중”이라며“과천관이 산책도 하고 여유롭게 즐기는 곳이라면 서울관은 사람 만나는 친근한 생활 공간으로 관람객들이 활용하는 행태가 조금씩 다르다”고 지적했다. “우리 미술관도 국제적인 미술관 문화의 추이와 꽤 인접해 가는 중입니다. 미술관서 작품도 보고 아트숍서 쇼핑도 하고요. 미술관이 꼭 미술관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목표 없이 부담 없이 들르는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는“해외미술관에서 동네 할아버지가 오전 10시쯤 한가롭게 커피 마시며 신문 보고 젊은 주부가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며“우리나라 관람객도 이전보다 미술관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미술관의 달라진 풍속도를 전했다. 학생 노년층뿐 아니라 점심시간을 틈낸 직장인 배낭을 둘러맨 등산객까지 관객층이 다양해졌다는 것. 그리고 전시장에 비치된 작품 설명서를 챙겨 들고 전시작을 확인하며 도슨트의 설명회를 일부러 기다려 듣는 등 관람태도도 진지하고 적극적이라는 이야기다. 서울관의 8개 전시실에선 개관 후 6개월여간 선보인 개관기념전이 막을 내렸다. 현재 새 기획으로 소장품전 ‘코리안 뷰티’전 및 이란 출신 여성미디어아트 작가 시린 네샤트 회고전 등이 진행 중이다. “미술관 기획전은 4∼6개월마다 바뀝니다. ‘코리안 뷰티’전이 열리는 1, 2전시실은 미술관 소장품을 선보이는 공간입니다. 한국 현대미술 중에서 조각, 회화 같은 정통장르를 선보이는 공간이라 관람객도 편하게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나머지 공간에선 장르를 넘어 확장하고 융합하는 세계 현대미술의 최신 동향도 적극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으로선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현대미술관이 개척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정 관장은 그러나“전시가 너무 어려우면 관람객이 미술관의 문턱이 높다고 여길 수 있다”며“기존의 1·2 전시실 외에 3·4전시실까지 보기 쉬운 전시를 하나 정도 더 늘리겠다”고 말했다.
    서울관 기획전의 40%는 비교적 쉬운 전시로, 나머지 30%는 미디어아트 같은 실험적 기획 나머지 30%는 음악 무용 영화 건축 패션 등 다른 장르와 융합하는 보다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선보이겠다는 이야기다. 정 관장은“지난 5월 멀티프로젝트홀에서 사흘간 펼친 다원예술프로젝트 ‘무잔향’의 경우 관람객은 1000명이 안 됐지만 직접 방문한 영상전공자들이 꼭 보고 싶었던, 외국서나 볼 수 있는 전시라고 반겼다”며“실험적 전시를 지속적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또 전시장이 보다 친근한 공간이 되도록 구체적인 작품 설명서를 적극 활용하고 도슨트의 전시작 설명회도 강화할 방침이다. 문화계의 여성 파워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정 관장은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지기보다는 미술관이 더 부각되길 바라는 마음인 듯했다. 그의 마음을 짐작하지만, 미국 유학 후 귀국해 미술사학자로 살다가 공공기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의 삶의 궤적은 더듬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정 관장은 1970년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 입학 직후 출국 미국 웰즐리대·미시간대 대학원에서 서양·동양미술사를 공부했고 컬럼비아대서 동양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귀국 후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미술사 교수(1994년∼현재)로 재직하면서 예술의전당 전시감독(1999∼2001년) 서울대미술관 관장(2006∼2012년)을 역임했다. “건축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 입학 무렵 건축과에 여학생이 거의 없을 때라 인접한 분야로 응용미술과에 진학했어요. 서울선 대학을 다니지 않고 가족이 있던 스위스로 갔어요. 1년여 불문학을 공부했고, 미국 보스턴 인근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며 회화를 부전공했어요. 그러나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창작에 자신이 없지만 공부에 흥미를 느껴 미술역사를 전공하게 됐어요.” 정 관장은 “미술사가 딱 부러지게 정답이 있는 학문이 아니고 창작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미술사란 학문이 의학 법학처럼 없다고 해서 살기 어려운 건 아니지만 일상에서 수시로 접하게 되는 미술은 삶이 각박하지 않게 또 생을 풍부하게 이끈다”며 미술사의 의미를 일깨웠다. 정 관장은“1983∼1992년 뉴욕 컬럼비아대 박사과정 시절이야말로 실제 작품을 접하며 미술사를 입체적으로 공부하며 미술관을 가깝게 접했던 시절”이라고 돌이 켰다. “미술관이 모여 있는 뉴욕에서 미술관 전시기획까지 심층적으로 공부하며 작품뿐 아니라 전시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점,또 작품을 다루는 노하우도 배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외교관이던 부친(정일영 전 외무부 차관)을 따라 어린 시절 외국서 살며 미술관을 자주 접하기도 했지만 뉴욕 시절 미술관 경험이 오늘의 든든한 밑바탕이 됐다는 이야기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1976년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학업을 병행한 뉴욕 시절을 그는“더 이상 시간을 쪼개기 어려울 만큼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았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그는“흔히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다지만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웃었다. 또 “유학 시절처럼 지금도 뭔가 배우는 것이 재미있다”며 요즘은 현대미학을 공부 중이라고 밝혔다.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면 더 깊숙이 파고들게 되고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지요. 요즘 학생들은 이 공부가 큐레이터 대학교수가 되는 데 필요한지부터 묻지만, 목표를 우선 생각하면 공부도 재미가 없잖아요. 쓸모를 따지기보다 실력을 쌓으면 쓸모가 생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안정적인 사회겠지요.”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및 문화재청 등 미술 관련 기관의 장(長)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관장 시대’가 화제다. 이에 대해 정 관장은“미술사와 이론을 전공한 사람 중 여성이 90% 정도 된다”며“미술이론분야의 여성인력이 20년여 쌓이면서 이즈음 각종 전시장의 책임자를 맡게 된 게 아닌가” 하고 분석했다. 여성대통령 시대의 코드 인사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으나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들은 이전 대통령 시절에 임명됐다. 한편 기획자로서 정 관장은 예술의전당 예술감독 시절 ‘나혜석전’ ‘청나라 의궤 전’ 등을 서울대미술관 관장 시절엔 ‘앤디 워홀전’ ‘일본의 근대를 보는 눈 전’ 등 역사적 관점이 돋보이는 기획전을 선보였다. 3층 화상회의실로 옮겨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 관장은 개관 기념전 중 소장품전을 둘러싼 불협화음과 관련해 개인적 소회도 털어놓았다. 당시‘시대정신’을 주제로 열린 소장품전이 서울대 미대 출신 작가 위주라며 한국미술협회 등을 주축으로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 관장은 “개관행사를 통해 미술관에 대한 미술인들의 기대를 절감하게 됐다”며“국립미술관과 관장이 미술계와 그 기대를 안고 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 했다. 미술관 운영자로서 리더십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정 관장은“전문성을 확보하고 기업가의 입장에서 전시 외에 아트숍과 식당 운영 등 사업을 다양화하며 원칙에 입각한 합리적인 운영”이라며 전문성 운영 합리성을 리더십의 세 요소로 지목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2012년부터 이끌고 있는 그에게 신축한 서울관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요청했다. “일단 건축 수준은 국제적입니다. 서울관이 바닥만 돼 있던 2012년 연초 관장직을 맡았습니다. 서울관 건축가로 국내건축가 민현준 씨가 선정된 것이 전임 관장 시절이었습니다. 완공 후 ‘아, 참 잘했다’ ‘한국건축가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관은 심플하고 현대적이지요. 공사 중 계속 유물이 발굴되고 기무사와 종친부 건물을 그대로 껴안아야 하며 지상 3층이란 제약 속에도 시원스럽게 잘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정 관장은 미술관의 수준을 보여주는 소장품 및 프로그램과 전시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피카소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미술관의 1년 작품 구입비가 30억 원대입니다. 그 금액으로 해외 명작 한 점조차 사기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제대로 컬렉션해 한국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현 단계의 세계화라고 생각합니다. 전시 외에 각 연령층에 걸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정 관장은“결국 전시가 문제”라며“수준 높은 전시를 위해 2∼3년 사전연구가 전제돼야 하지만 현재 2년 임기체재에선 장기 추진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관장 임기가 2년에 1년씩 연장되는 상황에선 장기간 연구 검토를 요하는 기획전보다 몇 달 만에 성사 가능한 감각적 전시에 그치기 쉽다는 이야기다. 그는 또“서울관의 경우 직원들이 대부분 계약직이라 솔직히 개관 직전까지 걱정이 컸다”며“현재 국회 계류 중인 미술관의 법인화 여부가 조속한 시일 내에 결정 나고 안정적인 인원 확충 등이 이뤄져야 서울관을 포함한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Munhwa ☜       신세미 문화일보 문화부장 sse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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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형민 관장이 전하는 현대미술과 가까워지는 법
    “전시장 벽면의 작품 설명문, 작가의 작품 세계에 다가서는 지름길”
    "현대미술은 어렵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정형민 관장은 조언한다. 현대미술과 가까워지려면 “무엇보다 작품을 많이 보라”고. 그러나 작품만 봐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정 관장은 말한다. 작품만으론 소재와 기법에서 고정관념을 넘어 기발한 실험과 튀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현대미술과의 거리를 좁히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전시장에서 자주 미술품을 접하되“현대미술사 혹은 20세기미술사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서 작품의 배경까지 다양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 정 관장은 “현대미술이 그저 보면 느낌이 통하는 대상은 아니다”며“작품의 소재와 기법 및 작가와 미술사조를 어느 정도 알면 작품이 가깝게 느껴진다”고 지적한다. 미술도 의식을 했든 안 했든 수많은 문화적 코드를 담고 있고 특히 성당과 미술관 박물관을 찾을 기회가 많은 해외에선 미술 속 코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외문화를 즐기기 위해 미술공부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전시장 벽면의 작품 설명문,별도로 갖춰 놓은 설명서를 챙겨 읽는 것도 효율적인 미술공부법. 그저 작품을 둘러보기보다 전문가의 설명을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와 기획자의 전시 의도에 다가설 수 있다. 전시장마다 일정 시간에 진행하는 도슨트의 전시 해설 강의도 챙겨봄 직하다.
    서울관 소장품전 ‘코리안 뷰티’전처럼,벽면에 별도의 작품 제목이 표기되지 않을 경우 입구에 비치된 작품설명서를 통해 작품번호대로 작가명과 작품제목을 확인해 보면 작품 감상이 훨씬 효율적이다. 정 관장은 서울관 중앙에 전시 중인 서도호 작가의 설치작품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을 예로 들어 현대미술의 이해를 일깨운다. 개관 직후부터 서울관의 상징처럼 관람객의 호응을 얻고 있는 ‘천 집’ 작품의 경우 큰 스케일로 정교하게 양옥 속의 한옥을 형상화하면서 작가의 경험뿐 아니라 시대를 반영한 다층적 의미를 짚어낸다. 푸른색 옷감으로 지은 집모양의 작품을 통해 유학하며 그리워하던 서울집을 형상화한 작가의 삶 유목민처럼 옮겨다니는 현대인의 상징이자 현대미술의 큰 흐름 이기도 한 ‘노마드(유목민)적 요소’를 읽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서울관의 인기 기획전인 이란 작가 시린 네샤트의 미디어아트전에선“이제까지 남성 위주의 미디어아트에서 덜 주목받았던 아랍지역 여성작가의 작품에 드러 나는 글로벌한 요소”를 주목한다. 이란 여성 등 국적 성별 같은 지엽적인 요소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어디에나 통용되는 보편성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미술이다.
    Munhwa ☜       신세미 문화일보 문화부장 sse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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