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Her Story

33년만에 새 앨범 낸 가수 김추자

浮萍草 2014. 6. 28. 06:00
    김추자 “간첩 소리 듣기 싫어 무대 떠났었다”



    “간 좀 보러 가자.” 33년 만에 복귀를 앞두고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기 전 가수 김추자(63)가 던진 한마디였다. 1981년 결혼과 동시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범한 주부로 돌아간 김추자.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세월 동안 등졌던 언론과 대중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순간조차 그는 제대로 인기를 만끽하기 전 ‘간 좀 보는’ 단계로 생각할 만큼 당찬 엔터테이너다. 33년이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지난 5월 2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엔 그가 활동하던 시절을 공유했던 기자들은 더 이상 없었다. 그의 과거 인기는 전설일 뿐이었다. 그의 노래를 담던 테이프와 LP도 통용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이번 앨범은 김추자의 노래가 담긴 첫 CD다. 하지만 세월은 변했어도 김추자 특유의 자신감과 쇼맨십은 닳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취재진에게 인사를 해달라는 주문에 김추자는“테스팅 테스팅… 아아”라며 마이크를 툭툭 치며 목을 가다듬었다. 주저함은 없었다. 이미 간은 다 본 듯했다.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입장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던 그는 선글라스를 벗는 동시에 봉인해 두었던 마음의 빗장까지 벗어던진 듯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33년 만에 나왔다. 살림하고 애 키우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지만 오늘 이렇게 여러분과 인터뷰하는 날을 기다리며 많이 노력하고 노력했다. 마음 좀 많이 써달라.” 내용은 당부였지만 말투는 웅변이었다. 그리고 여느 기자회견장과 달리 김추자의 신곡을 먼저 들어보는 순서가 시작됐다. 김추자에게 묵은 질문을 먼저 던지기 위해 물밑 눈치싸움을 벌이던 기자들의 템포를 뺏는 한 수였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노래로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김추자의 새 앨범에는 그의 음악적 대부인 신중현의 신곡‘몰라주고 말았어’와 ‘내 곁에 있듯이’ ‘고독한 마음’ ‘태양의 빛’ ‘가버린 사람아’ 등 5곡이 수록됐다. 이곡들은 이미 수십 년 전 신중현이 김추자에게 건넸지만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켜켜이 쌓인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김추자가 다시 부른 이 노래들은 30여 년 전의 향수와 지금 들어도 올드하지 않은 세련미를 동시에 갖췄다. “신중현 선생님은 제 음악을 가장 잘 아는 분이다. 제 음성에 어떤 곡을 지어줘야 하는지 잘 아는 베스트 콤비다. 얼마 전 편찮아서 입원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병문안을 갔더니 침대에서 맨발로 내려오셔서 반기시더라. 노래를 다시 부른다고 하니 마음대로 불러보라 하셨다. ‘일하면 좋지 뭐’라고 하며 웃으셨다.” 지난 2일 발표된 김추자 신보의 제목은 ‘늦기 전에’다. 그의 히트곡에서 이름을 빌려 온 이 앨범명에는 더 늦기 전에 가수로서 대중의 곁으로 돌아온 김추자의 결연한 의지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그 역시“저를 사랑해 주시는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무대로 돌아온 김추자”라고 거듭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많은 팬들이“김추자는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퍼포먼스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감적인 몸매와 율동, 몽환적인 창법이 어우러진 그의 춤사위는 분명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특히 ‘거짓말이야’를 부를 때 허공을 가르는 김추자의 독특한 손동작이 북한에 보내는 신호이며 그가 간첩으로 활동 중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급기야 ‘거짓말이야’는 불신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더 이상 김추자의 퍼포먼스를 볼 수 없게 된 대중들이 돌아온 김추자의 새로운 퍼포먼스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퍼포먼스를 따로 정해놓진 않았다. 원래 음악이 먼저 나와야 거기에 맞는 춤이 나온다. ‘거짓말이야’ 역시 곡을 받은 후 곡에 따라 손짓과 발짓이 나왔다. 신중현 선생님은 몸을 움직여야 소리가 나온다고 하셨다. 보디 랭귀지다. 몸을 움직여야 소리가 나오고 노래를 부르며 연기를 함께하는 거다. 당연히 예전처럼 엉덩이도 흔들 거다.” 기자회견 후 김추자는 다시 두문불출이다. 오는 28, 29일 양일간 열리는 단독 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다.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숱하게 들어오는 방송 출연 제의도 고사하고 있다. 지독한 연습벌레, 그게 바로 김추자다. 혹자는 그의 끼가 타고났다고 말한다. 반만 맞는 말이다. 김추자는 타고난 재능에 노력이 더해져 탄생된 가수다. 1951년 강원도 춘천에서 5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추자는 명문 춘천여고 재학 시절 응원단장을 거쳤고 배드민턴과 기계체조 선수로도 활약했다. 몸쓰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셈이다. 창도 배웠고 춘천향토제에서 ‘수심가’를 불러 3위에 입상했다. 지난 3월 별세한 배뱅잇굿의 1인자 이은관 명창이 당시 심사위원이었고 ‘수심가’를 부른 어린 김추자를 극찬했다. 결국 김추자는 재능을 살려 1969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신입생 노래자랑에서 1위 입상 후 신중현의 동생인 신수현의 추천을 받아 신중현과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내가 원래 창을 했었다. 그 때문에 이번 앨범에는 김희갑 작곡가가 만든‘그대는 나를’ 같은 트로트곡도 수록됐다. 뽕짝이라 불리는 트로트의 기본 정서는 한이다. 설움 때문에 창과 상통하는 게 있다. 그래서 트로트식 꺾기도 익숙하다. 그냥 내 스타일로 불렀기 때문에 녹음할 때도 별로 어려운 점은 없었다.” 신중현과 만난 후‘늦기 전에’와‘커피 한 잔’ ‘거짓말이야’와‘님은 먼 곳에’등 주옥 같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승승장구하던 김추자는 1975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기소 되며 가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사건으로 연예협회로부터 무기한 제명 처분을 받은 김추자는 2년의 공백기를 가진 뒤 활동을 재개했으나 1981년 결혼과 함께 돌연 자취를 감췄다. 게다가 그가 활동을 중단한 정확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으니 대중의 갈증은 타들어갈 정도였다. 33년 만에 돌아온 김추자의 뒤늦은 설명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간첩 소리가 싫어서 떠났고 무대가 그리워 돌아왔다”는 것이다. 대중 가수로서 사랑과 지지를 받아야 신이 나는 법인데 그를 향한 괜한 의혹들은 무대에 서는 김추자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연예계 생활을 정말 하기 싫더라. 히트쳤더니‘간첩이다’ ‘CIA고 남산에 갔다왔다더라’라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노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수 활동을 접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내게는 더 행복한 시간이었다.” 결혼과 함께 무대를 떠났지만 노래와 결별한 건 아니었다. 무대를 향한 그의 동경과 공허함을 채워준 건 라디오였다. 김추자의 집에는 라디오가 여러 대 있다. 동시에 틀어놓지만 각 라디오마다 맞춰진 채널은 달랐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래의 변천사를 알려주고 신곡과 흘러간 노래가 공존하는 라디오는 김추자의 가장 큰 친구였다. 라디오는 아직 대중 앞에 설 준비가 되지 않은 김추자에게 근황을 물으며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직 정보와 음악만 묵묵히 제공할 뿐이었다. 집안에서 아내이자 엄마 가정주부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오직 귀만 열어놓으면 족했다. 그래서 그는 라디오가 좋았다. “컴백을 앞두고 노래 연습을 별도로 한 건 아니다. 그 동안 부엌이나 응접실에도 항상 각기 다른 라디오 채널을 켜놓고 음악을 들었다. 남편도 그렇고 딸도‘엄마가 노래에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낮에 잠자고 밤새 음악을 듣거나 낮에 잠이 안 오면 또 라디오를 틀고 무질서하게 10∼20년간 음악을 들었다. 덕분에 현역 가수들의 변천사를 꿰고 있다. 후배들이 신곡을 가지고 나올 때마다 나름대로 채점을 했다. (웃으며) 어떤 노래는 외국 노래를 표절했다는 것도 알겠더라.” 결혼 후 가족을 위해 가수의 길을 가지 않은 김추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다시금 무대로 올린 이도 그의 가족이었다. 서른 살 딸의 격려는 김추자가 다시 무대에 두 발을 딛고 손에 마이크를 쥐게 만든 원동력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믿음직한 딸이 응원하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그는 자신을 응원해 주는 딸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외국 좋은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딸이‘왜 엄마는 노래를 안 부르냐’고 묻더라. 내 노래를 듣고‘엄마처럼 노래 부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엄마가 노래 부르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믿어지지 않는다며 자신을 잘 대접해 준다고 하더라.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듣는 게 소원’이라 하셨다고 한다. 뒤늦게 노래를 부르지 않은 것을 뉘우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노래를 부르라고 격려해줬다.” 김추자에 대해‘1970년대 이효리’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이효리를 기억하는 이들이 김추자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추자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에게 더 많은 점수를 준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남진-나훈아 조용필 서태지의 인기가 사회적 현상이었던 것처럼 김추자는‘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며“국내 여자 가수 최초로 엉덩이를 흔들었는데 이건 도발이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숱한 수식어에 김추자는 손사래부터 쳤다. “디바라는 소리가 별로 좋지 않더라. ‘전설의 가수’ ‘국민적인 가수’ 이런 말이 제일 듣기 싫다”며“난 그냥 한국의 노래 잘 부르는 가수 김추자 이거면 좋겠다”고 말했다. 1969년 18세의 나이에 데뷔해 13년간 치열하게 활동 후 홀연히 대중의 곁을 떠났던 김추자. 그리고 33년의 공백 다시 무대에 선 그의 나이는 예순 셋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그머니 물었다. “다시 또 떠나는 거 아니냐”고. 김추자는 당차게 대답한다. “다시는 무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어떤 결과를 기대하고 노래부르지 않는다. 그냥 내가 노래를 잘 불렀으면 좋겠다. 노래를 못 불렀는데 결과가 좋으면 그것도 이상하지 않나. 돈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무대가 있으면 세계를 다니며 치밀하게 준비해서 무대에 설 거다. 난 무대에서 공연할 때 제일 좋다. 관객들이 박수쳐 주고 공감하고 환호해 줄 때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그 맛에 노래를 부른다. 매일 간첩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노래를 부르겠나?” 33년 만에 돌아온 김추자는 분명 그를 기다려온 팬들 만큼이나 팬들의 사랑과 환호에 목마른 천생 가수였다.
    Munhwa ☜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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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추자 “신중현 선생님과 난 음악에서 베스트 콤비”
    데뷔 → 성공 → 결별 → 저작권 갈등 → 화해
    추자를 가수로 데뷔시킨 사람은 바로 한국 록음악의 전설 신중현이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형 기획사를 통해 가수로 데뷔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고 유명 작곡가 밑에 문하생 으로 들어가 노래연습을 하다 실력이 쌓이면 레코드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신중현사단’으로 들어간 김추자는 첫 앨범 ‘늦기 전에’를 발표하며 스타 반열에 올랐다. 당시 세간에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돌 정도로 김추자의 인기가 높았다. 신중현사단에서 또 ‘간다고 하지 마오’ ‘아니야’ 등을 부른 김정미도 있었다. 김추자는 비음이 섞인 섹시한 보컬이 특징이었고 김정미는 한국 사이키델릭 음악의 정수를 보여줬다. 김정미의 보컬은 에로틱한 느낌까지 안겨줬으며 현란한 춤은 행위예술가를 연상케 했다. 이후‘님은 먼 곳에’를 비롯해‘커피 한잔’‘거짓말이야’등 신중현의 곡을 부르며 승승장구하던 김추자는 1973년 발표한 앨범 ‘후회’를 마지막으로 신중현과 결별했다. 김추자는 신중현과 결별 후 김희갑이 작곡한 ‘왜 아니올까’ ‘그럴 수가 있나요’ 등과 이봉조 작곡의‘무인도’ 등을 발표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김추자가 33년 만에 컴백을 준비하며 예기치 않게 신중현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신중현은 김추자의 컴백 앨범 ‘잇츠 낫 투 레이트(It’s Not Too Late)’에 자신의 곡을 수록하며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한 속내를 드러냈다. 신중현은 지난 5월 2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김추자 앨범에 내 곡이 수록된다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추자 측이 새 앨범에 신중현의 곡을 수록하는 데 대한 사용절차를 마무리하며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해소됐다. 김추자 소속사인 이에스피엔터테인먼트의 박의식 대표는 5월 22일“신중현 씨의 미발표 신곡 3곡과 과거 발표한 곡 2곡을 리메이크하는 데 대한 계약을 신 씨와 맺었다”며 “협의를 잘 거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제출할 서류에 5곡에 대한 사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추자의 컴백 앨범은 지난 2일 발표됐고 오는 28∼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D홀에서‘늦기 전에’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이 콘서트는 7월 6일 강원 춘천시 호반체육관에서도 열린다.
    Munhwa ☜       김구철 문화일보 문화부 차장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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