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한국인의 마지막 10년

4 日, 한해 3만여명 無緣死(무연사: 가족이나 친구와 인연 끊겨 홀로 숨진 경우)…

浮萍草 2014. 6. 4. 06:00
    혈혈단신 아닌 평범한 사람이 대부분
    [전국서 무연고자 유골 받아 모시는 古刹 '다이호지' 르포] 장의업체서 택배로 유골 보내 상자에 공양비 5000엔 동봉 3주간 매일 공양 올리고 사찰 지하 납골당에 안치 배우자 먼저 보낸 경우 옆에 유골함 예약하기도 도쿄서 장례 없이 화장하는 直葬 비율 30%에 달해
    배회사 로고 찍힌 차량이 일본 도야마현 다카오카(高岡)시에 있는 560년 된 고찰(古刹) 앞에 멈췄다. 택배 기사가 네모난 상자를 승려에게 건넸다. 승려가 허리를 굽혔다. "잘 받았습니다." 발신자는 장의업체. 상자 속 내용물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 일본 열도 반대쪽 해안 지바(千葉)현에서 가족 없이 혼자 살다 지병 으로 숨진 64세 할머니의 유골이었다. 친척들은 다들 "인연 끊긴 지 오래라,시신을 인수해 장례 치르기 곤란하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장의업체가 지자체 허가를 받아 할머니를 화장(火葬)한 뒤 유골을 수습해 이곳 다이호지 (大法寺)에 택배로 보낸 것이다. 구리하라 게이인(栗原啓允·54) 주지 스님이 유골함을 본당 제단에 올리고 초를 켠 뒤 기도를 올렸다.
    "이분의 가족을 대신해 부처님께 극락왕생을 빌었습니다." 이 절에는 이런 식으로 일본 전역에서 홀로 죽은 사람들의 유골이 하루가 멀다고 택배로 온다. 4년째다. 죽은 지 여러 날 지나서 발견된 이들도 많다. 애초부터 마음먹고 시작한 선행은 아니었다. 2009년 한 장의업체가 이 절에 신자들의 합사(合祀) 묘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을 받아달라"고 부탁해왔다. 다이호지 관계자 히즈메 나오쓰구(�爪直次)씨가 "처음엔 정말 난감했다"고 했다.
    ▲ 일본 전역에서 발견된 고독사 시신 중 일부는 화장 뒤 택배 상자에 담겨 도야마현 다이호지(大法寺)로 보내진다.연고 없는 300여명 유골들이 절 한편 납골당에
    모여 있다.승려가 가족을 대신해 극락왕생을 빌어주고 있다. /안준용 특파원

    "그분에게 '만약 우리가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그냥 폐기된다'고 해서 유골함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일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무연고자 유골을 보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이호지에 쉬고 있는 영혼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죽어도 시신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선'무연사(無緣死)'지만,정말로 가족도 친척도 없는 혈혈단신은 아니다. 부인도 있고 자식도 있고 몇 년 전까지 멀쩡하게 직장도 다녔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이 끊겨 홀로 숨진 경우가 많다. 젊었을 때 가족을 팽개치고 회사에만 올인하다가 나이 먹어서 가족에게 외면당한 샐러리맨도 있다. "고령화·핵가족화·개인주의화를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게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다이호지가 사회복지법인과 연계해 자발적으로 펼치는 활동인 만큼 무연사 유골을 거둔다고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금을 주지도 않는다. 무연사 시신이 나오면, 지자체는 사망자가 각종 사건에 연루됐는지 확인한 다음 화장 허가서만 발급하고 손을 뗀다. 유골을 수습해 다이호지에 택배로 부치는 건 장의업체의 몫이다. 다만 업체가 그때 택배 상자에 사망자가 남긴 돈 중 5000엔(약 5만원)이 든 봉투를 동봉한다. 일종의 '공양비'로, 전액 납골당 안치·유지 비용에 들어가기 때문에 다이호지에 돌아오는 금전적 이익은 '제로'다. 사망자가 돈 한 푼 없이 죽는 바람에 5000엔을 동봉하지 않는 경우라 해도 어찌 됐건 안치하지, 유골을 버리거나 돌려보내는 일은 없다.
    구리하라 주지 스님은"죽어서 갈 곳 없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마지막 10년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외로워졌을 뿐 그들 대다수는 우리처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스님은 "이분들이 결국 우리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이분들의 유골이 사망 사실,화장 기록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폐기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다이호지 측은 유골함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이름·생년월일·사망일시·사연 등 고인에 대한 정보를 모을 수 있는 대로 모아서 문서로 기록해둔다. 최소한의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이 작업을 스님은 '망자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불렀다. 유골함 택배가 도착할 때마다 3주간 매일 공양을 올리고 이후 본당 뒤편 지하에 있는 납골당(33㎡·10평)에 안치한다. 납골당의 양쪽 벽은 사물함처럼 생긴 유골 수납공간 300여개다. 각각의 수납공간 앞에 다이호지에서 붙여준 불명(佛名)이 쓰여있다. 문을 열어보면,오래된 사진,낡은 향수병 같은 사소한 소지품이 유골함과 함께 놓여있다. 아직 비어있는데 'Reserved(예약 완료)'라는 팻말이 붙은 수납공간이 간혹 있었다. 다이호지 관계자는"꼭 무연고자가 아니라도 여기 안치되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돈이 없어 정식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배우자 유골함을 택배로 보내오면서 본인도 나중에 죽으면 남편·부인 곁에 있고 싶다며 자리를 부탁하는 경우입니다." 취재 도중, 사이타마(埼玉)현에서 그런 택배가 왔다. 61세 남편의 유골함을 보내면서 아내가 흰 봉투에 5000엔 지폐와 메모를 넣었다. "스님, 남편을 잘 부탁합니다."
    Premium Chosun         안준용 다카오카(高岡)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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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한 日 여배우도 홀로 숨진채 발견돼 충격
    매년 목욕탕 익사 1만여명, 센서 달린 목걸이 상품 나와… 가스 사용량으로 안부 확인도 "孤獨死는 가난만의 문제 아닌 고령화·핵가족화 겹쳐 발생"
    본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지켜보는 사람 없이 혼자서 죽는'고독사'가 사회문제가 됐다.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이 문제도 따라서 심해졌다. 2000년대에 접어들자 해마다 목욕탕에서 익사하는 사람이 1만명을 넘길 지경이 됐다. 지자체마다 아이디어를 내놨다. 오사카의 한 민간 회사는 주민센터와 연계해 센서 달린 목걸이를 상품화했다. 20초 이상 물에 잠겨 움직이지 않으면 주민센터에 비상 신호를 보내는 제품이었다. 고베시는 2005년부터 가스 사용량으로 노인의 안부를 챙겼다. 가스 사용량이 '0'이면 복지단체에서 노인에게 전화를 걸고 벨이 수십번 울리도록 받지 않으면 구조대가 출동했다. 그래도 고독사가 계속 늘어 유품 정리 대행업체까지 등장해 연간 20%씩 고속성장했다. 꼭 가난하거나 병이 있거나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만 고독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최근 추세다. 2009년 중견 여배우 오하라 레이코(당시 62세·사진)가 도쿄 부촌에 있는 자택에서 혼자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고독사는 가난의 문제라기보다 고령화·핵가족화가 겹친 문제이고, 50~60대와 중산층·부유층으로 번져가고 있다" 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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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안하고 지역사회 참여안하면 無緣死 가능성 커"
    NHK '무연 사회' 특집으로 日사회에 충격 준 이타가키 PD "日서 조금 일찍 일어났을 뿐 한국에서도 곧 일어날 현상 비정규직 많아 직장 연고 약한 요즘 세대들 무연사에 더 취약"
    "이게 꼭 일본만의 현상일까요? 일본에서 조금 일찍 일어났을 뿐 한국에서도 곧 일어날 현상이라고 봅니다." 지난 2010년 일본 NHK 이타가키 요시코(板垣淑子·43·사진) 선임PD는 사망한 지 며칠 지나서 발견되고 시신을 인수할 사람조차 없는 무연사 문제를 다룬'무연 사회'특집으로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다. 일본에서 연간 3만2000여명이 무연사(無緣死)한다는 내용으로 일본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이후에도'소재 불명의 고령자 긴급 특집''일본,무연 사회 어떻게 되나' 등의 관련 프로그램을 꾸준히 만들었다. 그는 노숙자 문제를 취재하다 우연히 관보(官報)를 보고 시신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없어 관청에 보관된 유골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일본에서는 20년 후에 남성 3명 중 1명이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타가키 PD는"결혼도 하지 않고 지역사회에도 참여하지 않는 젊은 세대는 무연사를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했다. "일본에서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돌보던 시대는 정말 옛날이야기가 됐어요. 과거 세대는 직연(職緣·직장 연고)이라도 있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비정규직이 많아 그런 것도 없고 지역사회에서도 고립된 채 사는 경우가 많아 윗세대보다 무연사에 훨씬 취약하지요." 그는 "무연사를 방지하는 것은 정부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많다"면서"현실적으로 지역사회의 역할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령 사망한 지 며칠 지난 후 발견되는 고립사(孤立死)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웃에 누가 사는지, 이웃이 보이지 않을 때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지역사회에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
    또 "은퇴 후에 스스로 지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지연(地緣)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면서"'무연 사회'가 방송된 이후 지역 시민단체가 동네 주민의 고립사를 방지하는 활동을 펼 뿐만 아니라 사망 후 장례를 치러주는 사례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노후에 누구와 함께,어디서,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고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Premium Chosun         차학봉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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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喪主보다 더 많은 故人… 2031년부터 '부음 쓰나미'
    저출산·고령화·독신풍조 영향 북 경주시에 사는 회사원 홍영길(가명·59)씨는 딸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서울에 혼자 사는 무남독녀 외동딸(32·고교 교사)이"결혼은 시간에 쫓기기보다 좋은 사람 만났을 때 하고 싶다"고 하길래 마지못해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퇴직이 가까워질수록,이러다 딸이 혼기(婚期)를 놓칠까봐 조마조마해진다. "결혼하면 사위라도 있지만'그 전에 내가 갑자기 잘못되면,얘 혼자 어떻게 다 감당할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요." 홍씨의 막연한 걱정은 앞으로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실이 될 전망이다. 오는 2031년부터 상주(喪主) 세대보다 고인(故人)이 더 많은 이른바 '부음 쓰나미'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인구문제 전문가인 전광희 충남대 교수(전 한국인구학회장)에게 의뢰해 분석한 결과 1993년만 해도 65세 이상 노부모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집집마다 상을 치를 아들·딸이 평균 5명쯤 됐다. 올해는 그 숫자가 4명대로 떨어졌다. 2031년이 되면 아들·딸이 평균 2명 밑으로 떨어진다. "부모가 한날한시에 한꺼번에 세상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괜찮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그에 대해 전 교수는"지금처럼 여러 형제가 힘을 모아 노부모를 간병하고 상주 역할을 나눠서 해도 집집마다 '버겁다'고 아우성인데 형제가 없거나 달랑 하나면 자식 세대가 느끼는 부담감이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했다. 2031년은 불과 18년 뒤다. 그때 평균 사망연령에 이르는 1951~55년생들 중에 자녀가 하나뿐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실감할 가능성이 높다. 부음 쓰나미의 3대 원인은 ①저출산 ②고령화 ③독신 풍조다. 지금까지는 한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는 사람이 미미했지만 2030년에는 전체 사망자의 1%에 이르고 2052년에는 5%를 넘기게 된다. 김문조 고려대 교수는"'부음 쓰나미'를 어떻게 현명하게 감당할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Premium Chosun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goodl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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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서 숨진 뒤 5년 만에 발견된 할머니, 세자녀 모두 시신引受 거부
    이웃도, 봉사하던 사찰서도 할머니가 누군지 기억 못해 건보료도 꼬박꼬박 납부,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닌데… 경찰이 수소문해 찾은 자녀들 "개인사정" "기억 안나" 외면 은 요 위의 차가운 백골. 46년생 김복순(가명) 할머니가 이웃에게 보인 마지막 모습이다. 할머니는 지난달 2일 부산 초읍동 서민동네 단칸방(6.6㎡·2평)에서 숨진 지 5년 만에 백골로 발견됐다. 그날, 폴리스라인을 치는 경찰관에게 같은 주택 위층에 5년째 살고 있는 모자(母子)가 되레 물었다. "1층에 누가 살았습니까? 빈방인 줄 알았는데예."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다 혼자 죽어 한참 만에 발견되는 일은 유별난 사람에게나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취재팀이 김 할머니의 마지막 10년을 추적해보니 할머니는 그런 고정관념과 달랐다. 달동네에 살면서도 인근 절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건강보험료도 꼬박 꼬박 냈다. 기초생활수급자도 아니었다. 16년간 결혼생활도 했고 자식도 있었다. 공무원부터 이웃과 경찰까지 20명을 만났지만 고인의 마지막 10년이 왜 그렇게 외로워야 했는지 정말 깊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분명한 건, 혼자 사는 노인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 뿐이었다(1994년 전체 노인 14%→2011년 20%). 서울 시내 무연고자 시신을 모두 처리해온 문일현(58) 건국공영 대표는"꼭 가난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자녀들이 모두 미국에 사는 강남 노인도 고독사 한걸 봤다"고 했다.
    ▲ 독거 할머니들은 집을 놔두고도 인근 사찰로 모였다.절하고 기도하며 법당에서 인생 말년을 보낸다.이름 대신‘꽃보살’로 불리며 동료와 섞여 있던 김 할머니는
    생전 이곳 법당 어디에선가 남편과 자식들을 그리워했을지 모른다. /박국희 기자

    "다섯 달도 아니고 5년이라니 참…." 초읍동은 산자락에 다세대 주택들이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달동네다. 젊은이들은 출근시간 썰물처럼 빠졌다가 밤에 잠만 자고 또 빠져나간다. 60대 강복길(가명) 할머니가 "대문만 닫으면 앞집,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거미줄 같은 좁은 골목길에서 고양이들만 외부인을 반겼다. 고인이 홀로 백골이 되는 동안, 가까운 노인정에서 노인들은 화투도 치고 간식도 먹고 며느리 욕도 했다. "교류도 없었고 얼굴도 몰랐어. 죽었다는 소식도 뉴스 보고 알았어. ○○사(寺)에서는 알려나?" 고인은 생전에 절에 다녔다. 주민등록 빼고, 유일하게 적을 뒀던 곳이다. 2001~ 2004년까지 신도로 등록하고 법당 관리를 했다. 화려한 연등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몇몇 신도가 "그 양반 '꽃보살' 아이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 깊이 기억하진 못했다. 절 관계자는"아마 봉사하고 월급 대신 끼니 정도 해결했던 봉사자 같다"고 했다. 10년 넘게 법당 관리를 해온 신도가 "글쎄…"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상 닦고 바닥 청소하는 법당 봉사자만 수십 명이거든요. 허드렛일 도와주는 신도까지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어요."
    ㆍ연기처럼 사라진 '꽃보살'
    고인은 14년 전 9월 이곳 초읍동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했다. 2층짜리 단독주택 1층 단칸방을 보증금 700만원에 월세 10만원을 주고 계약했다. 고인은 그때 집주인(64)에게 "방에는 짐만 두고 생활은 절에서 하련다"고 했다. 집주인이 가끔 들여다보면 냉장고나 취사도구가 없고 수도·전기 사용량도 거의 없었다. 집주인은 수도세·전기세를 받지 않았다. 처음 3년 동안은 고인이 집주인에게 월세를 직접 건넸다. 이후 만나는 날이 드물어졌다. 월세를 안 줘도 10만원씩 보증금에서 까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보증금이 바닥나자 집주인이 경찰을 찾았다. 경찰이 문을 열었을 때, 사방에 엷게 드리운 거미줄 너머로 미미한 시취(屍臭)가 풍겼다. 얇은 요 한 장이 전부였다. 백골 하나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겨울에 사망한 듯, 위아래로 옷을 아홉 겹 껴입고 손에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TV도, 라디오도, 휴대전화도 없었다. 한쪽 구석에 냄비와 그릇 두어 개, 가스 버너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경찰관이 "지대가 높은 데다 집 뒤가 바로 산이라 냄새가 자연스레 날아간 것 같다"고 했다.
    ㆍ살점이 없어 지문이 안 나왔다
    집주인은 경찰에서"'절에 있겠거니'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절에선 봉사자와 신도 등 노인 수백 명이 숙식하다시피 불공드리며 시간을 보낸다. 24시간 개방된 법당에 간단한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갖다 놓고 한 끼에 1000원 하는 절밥을 먹는다. 절 관계자가 "그중 절반은 1000원 낼 형편도 안 되는 분들이라, 봉사 차원에서 그냥 대접한다"고 했다. 상당수가 고인처럼 혼자 산다. 경찰이 골치를 앓았다. 신분증이 없을 뿐 아니라 살점이 없어 지문도 안 나왔다. 집주인이 이름 석 자를 기억했다. 누렇게 바랜 벽에 인근 사찰에서 받아온 5년 전 달력과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의 독사진 2장이 걸려 있었다. 통통해 보이는 고운 얼굴이었다. 누군지 아무도 몰랐다. 경찰이 이름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 30여명의 주민등록 사진을 집주인과 함께 일일이 확인했다.
    ㆍ가난만이 문제였을까?
    고인은 14년 전 이 집으로 옮겨 오기 전까지 같은 동네 다른 단칸방에 잠깐 살았다. 이리로 이사 온 뒤에도 주민등록 주소지는 그 방에 뒀다. 2008년 9월쯤 숨졌고 그전까지는 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이 숨진 뒤, 골목 이쪽 단칸방에선 고인의 육신이 조금씩 삭아내리고 골목 저쪽 단칸방 앞엔 나라에서 보낸 체납 고지서가 저 혼자 비(雨) 맞고 마르고 다시 또 비 맞으며 차곡차곡 쌓였다. 61개월치 밀린 돈이 60만원 좀 넘었다.
    ㆍ피붙이 없는 사람은 없다
    관공서 서류는 고인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요약했다. '1967년 결혼, 큰아들(46)·작은아들(44)·막내딸(41) 등 1남2녀, 1983년 결혼 16년 만에 이혼.' 전 남편은 사망한 상태다. 경찰이 친자식을 수소문했다. 한 달 가까이 걸렸다. 셋 다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큰아들은 사체 처리 위임서를 쓰면서 "개인 사정"이라고 했다. 둘째는 "30년 전 나간 사람이라 얼굴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딸은 "오래전 일이라 얼굴도 기억이 없다"고 했다. 고인은 지난달 30일 '무연고' 처리됐다. 구청 직원이"나중에 친인척이 찾아와 '왜 마음대로 처리했느냐'고 따질까 봐 일단 가매장했다가 10년 뒤 화장한다"고 했다. 구청 돈 75만원이 들어갔다. 작년 한 해 김 할머니처럼 '무연고자'로 처리된 사람은 810명. 불과 3년 전보다 95명 늘었다. 독거노인도 더 많고 고독사도 더 잦은 서울에서는 일단 화장해서 10년간 납골했다 500~700명씩 한 봉분에 묻는다.
    ㆍ[고독死, 가난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과 緣 끊긴 경우 많아"]
    김 할머니처럼 혼자 사는 노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2011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열 명 중 두 명이 혼자 살았다. 또 혼자 사는 노인 네 명 중 한 명은 혼자 산 기간이 5년 미만(25%), 세 명 중 한 명은 10~20년이었다(31%). 혼자 사는 노인들과 노인끼리 사는 부부에게 "왜 자식들과 따로 사느냐"고 물으니 원해서 그렇게 된 경우보다는 "상황에 떠밀렸다"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가 결혼하는 바람에(32%), 자식들이 다른 지역에 살기 때문에(15%)…. '개인 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노인끼리 살고 있다는 응답은 소수였다(15%). 오래 살고 오래 앓는 패턴이 굳어질수록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 노인은 배우자보다 나이는 적고 수명은 길다. 배우자와 함께 살며 간병하다가, 배우자가 떠난 뒤 마지막 10년을 홀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혼자 사는 노인 열 명 중 아홉 명 정도가 여성이었다(86%). 자연히 그들은 지켜보는 사람 없이 외롭게 죽을 위험도 크다. 혼자 사는 노인 세 명 중 두 명(63%)이 소득 하위 20%에 속할 정도로 경제적 곤궁이 심하긴 하지만 꼭 가난이 고독사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수도권 유품처리 대행업체 대표 A씨는"연락 받고 가보면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은 한두 명이고 대개는 김 할머니처럼 이런저런 사연으로 가족과 인연이 끊긴 평범한 서민들"이라고 했다.
    Premium Chosun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goodl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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