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한국인의 마지막 10년

2 대만, 말기환자 집으로 의사 보내 돌봐… 13년 '善終(선종: 좋은 죽음) 프로젝트' 결실

浮萍草 2014. 6. 2. 06:00
    [아시아 '죽음의 質' 1위 대만, 그들의 마지막 10년은]
    -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 바꿔
    국립 타이완大 옆에 火葬場
    시민들 "언젠가는 이용" 담담… 장례식은 故人 영상 틀며 추도
    - 정부가 나서 호스피스 제도화 20세 되면 호스피스 신청 가능, 돈 낼 필요없이 모두 健保 처리… 한해 사망자 7명 중 1명꼴 이용 이완은 아시아 국가 중에 죽음의 질(質)만큼은 최선진국이다. 타이완 사람들이 생애 말기에 이르러서는 한국·일본을 비롯한 그 어느 아시아 국가 국민보다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한다는 뜻이다. 2010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연구소(EIU)가 실시한'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 조사에서 타이완은 전체 14등,아시아 국가 중 1등이었다. 일본(23등)은 물론 한국(32등)과 중국(37등)을 훌쩍 앞섰다. 우리와 도대체 뭐가 다를까? 우선"죽음은 재수 없다"고 무조건 터부시하는 사람이 적었고 인구에 비해 호스피스 시설이 넉넉했다. 또 지난 2011년부터 '호스피스 홈케어'라는 이름으로 말기 환자 집에 정부 돈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보내주는 제도를 시작했다.
    ㆍ죽음 얘기 꺼리지만 죽음의 질 높은 타이완
    지난달 2일 타이완 수도 타이베이. 최고 명문 대학인 국립타이완대 옆에 시립 화장장 겸 장례식장이 있었다. 총 14기의 화장로를 보유한 건물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솟아났다. 시내 한복판의 화장장에 대해 타이베이 시민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택시기사 린궈지(林國枝)씨는"좋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도 언젠간 이용하게 될 텐데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나흘간의 취재 기간 중 만난 다른 시민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장례식장에 故人영상 틀고… 제사상엔 故人이 좋아한 라면·과자 - 타이완 타이베이시 제2장례식장에서 상주들이 고인(故人)을 기리는 추도식을 진행하고 있다.
    왼편의 대형 스크린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을 틀어놨다.장례식장 한쪽에 마련된 제사상에 추모객들이 찾아와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라면,맥주,과자
    등을 올려놓은 모습. /타이베이=박순찬 기자

    장례식장에는 고인이 생전 좋아하던 음식으로 마지막 식사를 할 수 있는 합동 제사 공간이 있었다. 맥주·담배·콜라부터 비스킷·라면·초코바·사탕까지 격식을 따지지 않은 음식이 그득히 올려져 있었다. 한국의 결혼식장처럼 대형 모니터를 가져다 놓고 고인의 생전 모습을 슬라이드 형식으로 틀어놓은 장례식장도 많았다. 타이베이시 장례관리처 왕원슈(王文秀) 관장은"아시아 문화의 특성상 죽음을 꺼리는 건 한국과 마찬가지지만 일단 도심에 화장장이 들어서니 시민들도 화장장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ㆍ10여년 만에 호스피스제도 결실
    타이완이 죽음의 질 선진국에 오른 것은 정부가 일찌감치 국민의 생애 말기에 관심을 가진 덕분이다. 타이완은 지난 2000년 아시아 최초로 자연사(自然死)법을 도입했다. 말기 환자가 고통스러운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진통제를 통해 고통을 줄여가며 서서히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세 이상으로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한 성인은 사전에 호스피스 의향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타이완 호스피스재단 천이룽(陳怡蓉) 부집행장은"신청서를 쓰면 의료보험카드의 IC칩에 정보가 저장돼 나중에 의식을 잃더라도 법적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시행 초기 자연사법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국민은 '어떻게 자식이나 배우자한테 생명을 포기한다고 말하느냐'며 외면했다. 타이완 위생복리부 리웨이창(李偉强) 의료사업국장은"정부와 민간단체가 10년 가까이 선종(善終)의 개념을 알리고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이 나서서 신청서를 쓰는 등 기나긴 홍보전을 편 끝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연사법 시행 13년째인 올 8월까지 호스피스 의향 신청서를 작성한 타이완 사람은 총 18만6000명. 전체 인구(2300만명)의 0.8% 수준이다.
    7년 전만 해도 신청서 작성자가 한 달에 600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4200명 수준으로 늘었다. 현재 타이완에는 총 50개 병원에 711개의 호스피스 병상이 있다. 환자나 가족은 돈을 낼 필요가 없고 모두 건강보험으로 처리된다. 지난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사람은 3만1052명. 타이완의 1년 사망자 수가 20만명임을 감안하면 7명 중 1명꼴로 호스피스제도를 이용한 셈이다. 리 국장은"앞으로 어느 병원에 있든 호스피스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호스피스(hospice)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에게 연명 의술 대신 정신적·육체적으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제공하는 것.
    [전문가 자문단(56명)] 권기둥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김기웅 서울대 의대 교수·김기호 불교여성개발원 웰다잉운동본부 교육위원·김성권 서울대 의대 교수· 김윤준 서울대 의대 교수·라정란 서울성모병원 완화의료팀장·문일현 건국공영 대표·박영배 서울대 의대 교수·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손명세 연세대 보건대학원장·손성동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연구실장·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이사장· 신산철 늘푸른장사문화원 원장·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염안섭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총무이사·원주희 샘물호스피스선교회장· 유철규 서울대 의대 교수·윤병우 서울대 의대 교수·윤성은 삼성생명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육성필 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 윤승진 법무법인 현인 대표변호사·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이남희 남양주시동부노인복지관 상담사·이범수 동국대 생사의례학과 교수· 이병찬 한국죽음준비교육원장·이상민 서울대 의대 교수·이상재 대한장례인협회장·이영숙 서울대병원 의료사회복지팀장·이정권 성균관대 의대 교수· 이종연 보람상조라이프 차장·이창원 수원시시설관리공단 운영팀장·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전광희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전병술 건국대 연구교수·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조성자 서울의료원 완화의료병동 수간호사·조영민 서울대 의대 교수·최명환 웰다잉 연극단장·조항석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보험이사· 최영숙 한국웰다잉협회장·최윤선 고대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장·하종원 서울대 의대 교수·함봉진 서울대 의대 교수·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 홍양희 전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장·홍진의 서울대병원 호스피스실 책임간호사·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황명희 구립중구노인요양센터 사무국장· 리웨이창(李偉强) 대만 위생복리부 의료사업국장·쑤원하오(蘇文浩) 대만 맥케이기념병원 안녕센터장·왕원슈(王文秀) 대만 타이베이시장례관리처 제2장례관장· 천이룽(陳怡蓉) 대만 호스피스재단 부집행장·버니 바이른(Byrne)영국 매기센터 런던센터장·캐서린 맥더머트(Mcdermott)영국 킹스턴대 교수· 힐러리 달크(Dalke)영국 킹스턴대 교수 (이상 가나다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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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가정 울리는 '長壽의 역설'
    자식에게도 짐… 늘어난 '病魔(병마)의 굴레' 뇌종양 末期 아버지를 죽인 아들, 알고보니 '평범한 자식' 癌환자 1인당 진료비 수천만원… 벼랑끝 가정이 늘고 있다
    ▲ 우리 모두는 늙고 병들어 죽는다. 개인에게 병마가
    닥치면 그 고통은 비단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배우자와
    자녀 등 사랑하는 가족 모두가 짊어져야 할 고통 역시
    죽음의 연장 선상에 있다. 한 사회가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관리하고 덜어주느냐에 따라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도,죽음의 질도 갈린다.그 고통이 더욱 커질 수도 있고
    절반이 될 수도 있다.지난 1일 인천의 한 요양원에서
    노인이 도우미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1월 아버지(56)가 두통으로 병원에 갔다 뇌종양 말기 진단을 받기 전까지 그들은 경기도 포천 일대에 흩어져 사는 평범한 서민 가족이었다. 큰딸(29)은 전업주부, 둘째 딸(28)은 요양원 요양보호사, 막내아들(27)은 시화공단 비정규직이었다. 사는 게 동화처럼 밝지만은 않았지만 사회 고발 다큐처럼 어둡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말술에 다혈질이지만 두 딸이 일찍 결혼해 손주도 여럿이고 즐거운 추억도 적지 않았다. 어느 집에나 다 있는 고만고만한 우환(憂患)은 있어도 남들이 경악할 악행·범법은 없었다. 그런 집에서 지난 9월 8일 조간신문 사회면을 도배한 사건이 났다. 아들이 죽음이 임박한 아버지를 목 졸라 숨지게 한 것이다. 존속 살인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지난 두 달간 이 사건을 추적한 취재팀을 혼란스럽게 한 건 엽기적인 범행 뒤에 숨은 3남매의 연약한 민낯 이었다. 큰딸·작은딸과 주변 인물 22명을 인터뷰해 조각조각 재구성한 고인 가족의'마지막 10년'은 병마(病魔)가 한국 서민 가정을 얼마나 가파른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지 명료하게 보여줬다. 암 환자 1인당 진료비는 1159만원(국립암센터 2009년 통계). 여기에 환자 가족이 환자를 돌보느라 일을 그만두면서 생기는 기회비용과 보험이 되지 않는 각종 비급여 비용까지 더하면 암으로 서민 가정이 떠안는 실제 부담은 두세 배로 껑충 뛴다. 오래 살고 오래 앓는 패턴이 굳어질수록 암 환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암 환자 때문에 벼랑에 선 서민 가정도 따라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윤영호 서울대 교수는"이런 사건이 딱 한 건이면'우리와 상관없는 일,예외적인 악인이 저지른 일'이라고 넘겨버릴 수 있지만 요즘 여기저기서 중병을 앓는 가족을 해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고현숙 국민대 교수는"병을 앓는 노부모 때문에 위기에 처한 서민 가정에는 각종 복지제도가'남에게만 돌아가는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고 했다.
    ㆍ"복지 혜택? 해당이 안 됐어요"
    아버지는 평생 포천에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집안이 어렵고 공부도 잘 못해서 남매는 고교만 졸업하거나 그마저도 중퇴했다. 그렇다고 학교 다니면서 사고 친 적은 없다. 아들은 고교 졸업 후 2007년 포천 모 병원에서 공익근무할 때"군말 없이 환자들 병상을 정리하고 시트도 척척 간다"고 칭찬받았다. 제대 후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경기도 한 요양원에서 3년간 노인들을 돌봤다 (당시 지켜본 간호사 A씨, 포천서 B형사). 올 1월 아버지가 포천 모 병원을 찾았을때 의사가 5.5㎝짜리 종양 사진을 보여주며"남은 시간은 8개월이고, 수술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가족은 고민 끝에 수술을 포기했다. 일반 병동에 계속 입원하자니 돈이 없었다.
    암 환자는 입원비 5%만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가 댄다. 그래도 간병비·식비 등은 개인 몫이다. 일당 8만원씩 들어가는 간병인을 안 쓰고 자식들이 직접 병시중을 들어도 최소한 월 30만~40만원이 꼬박꼬박 나갔다. MRI와 CT 검사를 하면 40만원이 추가로 훌쩍 들었다. 3남매는 각자 월 100만~150만원으로 빠듯하게 살아간다. 둘째 딸은 직업군인 남편과 지적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다가 막내는 어머니가 예전에 아팠을 때 약값을 대다 빚을 지는 바람에 둘 다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병원비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둘째 딸이 자기가 근무했던 요양원에“혹시 우리 아버지를 이리로 옮기실 수 없느냐”고 물었다. 요양원에서 “딱하지만 노인장기보험에 해당하는 65세 이상도 아니고 치매·중풍 환자도 아니라서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켜보던 누군가가 “아버지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부담이 줄어든다”고 했다. 사지 멀쩡한 자식이 셋이나 있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ㆍ“차라리 내 손목을 그어다오”
    가족회의 끝에 아버지를 큰딸 집으로 모셔왔다. 3500만원짜리 다세대주택 전셋집인데 사위가 사기당해 전세금을 날려서 지금은 같은 집에 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을 주고 산다. 맏사위 월급 150만원으로 월세 내고 장인 부부,큰딸 부부,초등학생 손녀, 이렇게 다섯 식구 생활비와 장인 약값까지 해결했다. 둘째 딸과 막내아들이 수시로 보탰다. 아버지는 6월까지 큰딸과 함께 가까운 산에도 슬슬 다니고 다세대주택 텃밭에 고추와 감자도 길렀다. 큰딸은 어죽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밤낚시를 다니며 메기도 잡아왔다. 아버지는“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큰딸과 점점 자주 다퉜다. 무엇보다 통증이 갈수록 심해졌다. 병원에서 처방한 진통제가 안 듣는다며 약국에서 파는 게보린을 하루 서너 갑씩 삼키고 소주도 마셨다. 동네 내과에서 한 번에 1만원씩 내고 의료용 마약도 두 번쯤 맞았는데 아버지와 영 안 맞았는지“게보린만 못하다”고 욕하며 두 번 다시 안 맞겠다고 했다.
    ㆍ“무료 호스피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어요”
    적극적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이 의료용 마약을 맞으면서 덜 고통스럽게 마지막 순간을 맞는 곳이 호스피스다. 가고 싶다고 자리가 늘 나는 게 아니다. 한 해 암으로 죽는 사람은 7만5000명인데 호스피스 병상은 우리나라에 900개도 안 된다. 시설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라(무료~월 1000만원) 자기 눈높이에 맞는 곳에 때맞춰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장마가 시작되자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식들을 붙잡고 흰자위를 보이면서“내 손목 좀 그어달라”고 헐떡이는 상황이 됐다. 자식들이 사방으로 호스피스를 알아봤다. 월 100만원 하는 곳에서 사정을 듣더니“40만~50만원으로 깎아주겠다”고 했다. 아버지가“낯선 곳에 혼자 가는 건 싫다”며“아내도 함께 먹고 자게 해달라”고 청했다. 시설에서“그건 힘들다”고 했다. 잘 찾아보면 종교 기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호스피스도 있는데 그런 곳을 찾아볼 노력은 왜 안 했을까? 큰딸과 둘째 딸은 “하루하루 살기 힘들고 정보도 없어 그런 곳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잘 몰랐다”고 했다.
    ㆍ“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여름을 지나면서 3남매는 조금씩 지쳐갔다. 말하기도 힘겨운 아버지는 약을 피와 함께 토하고 똥오줌을 지렸다. 빨대로 물만 겨우 삼켰다. 마지막 한 달 동안 아들은 날마다 퇴근 후 시화공단에서 큰누나네 집까지 100㎞를 달려왔다. 밤 11시 넘어 도착해 지친 누나와 어머니에게“좀 쉬시라”고 말한 뒤 비쩍 마른 아버지를 간호했다. 범행 이틀 전(9월 6일) 아버지가 한 차례 혼수상태에 빠졌다. 온 가족이 모였다. 마음의 준비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튿날 기운을 차렸고 평소 좋아했던 수제비를 찾았다. 가족은 복잡한 심정이 됐다. 범행 당일 어머니와 큰딸과 아들만 집에 남았다. 큰딸이 아들에게 “이제 그만 아버지를 고통 없이 보내드리자”고 했다. 아들이 두 차례 완강하게 거절하다 결국 지그시 목을 눌렀다. 그전에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목이 메서 말했다. “아버지, 제가 편하게 보내드릴게요. 죄송해요.” 장례 끝나고 이틀 만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 아들이 가책을 못 이겨 작은누나에게 범행을 털어놓았다. 둘째 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펄펄 뛰었다. 아들이“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며 인근 저수지로 뛰쳐나갔다. 둘째 딸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을 때 아들은“죗값을 받겠다”며 순순히 양손을 내밀었다. 아들은 의정부교도소에서 재판을 기다린다. 신현호 변호사는“그가 죄책감에 울기도 한다”고 했다. 취재팀이 이런 얘기를 들은 큰딸네 집은 지금도 숨진 아버지의 옷가지와 가족사진이 식구들 살림살이 사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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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환자실·호스피스·내 집… 한국인 생애 말기, 어디를 가든 '딜레마'
    ①중환자실 - 가망 없어도 일단 중환자실 가면 불필요한 연명 치료 계속 ②호스피스 원하지만 - 암환자 비해 병상 턱없이 부족… 가격 비싼 곳은 月1000만원 ③내 집에서 이별하고 싶어도 - 통증완화에 의료진 필요한데… 在宅 진료 서비스 거의 없어
    이완의 1인당 GDP는 2만502달러 우리나라는 2만3679달러다(2012년 IMF 통계). 하지만 죽음의 질에 관한 한 그들이'위'다. 취재팀이 만난 전문가들은 "타이완과 달리 한국인의 생애 말기에는'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했다.
    ㆍ중환자실 딜레마
    서울 강남 대형 병원 중환자실. 수년간 백혈병에 악성폐렴을 앓아온 박성규(가명·40)씨가 오른쪽 목 정맥에 지름 0.3㎜짜리 호스를 꽂은 채 누워 있었다. 이 호스를 통해 수면진정제와 포도당이 24시간 주입되고 왼쪽 콧구멍에 연결된 줄로 유동식(流動食)이 들어 갔다. 삭발한 머리엔 25개의 뇌파 검사 줄이, 가슴엔 심전도선 3개가 붙어 있었다. 박씨는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받다 나흘 전 갑자기 집에서 피를 토해 실려 왔다.
    중환자실에 머문 5일 동안 박씨에게 들어간 치료비는 총 1223만원. 그중 199만원은 환자 가족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 몫이었다. 의료진은 "앞으로도 박씨가 회복할 가능성은 없다"면서"선진국과 달리 '내가 위독해지면 이런저런 조치를 취해달라'고 미리 밝혀둔 사람이 극소수라 가족이 원하면 연명 치료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ㆍ호스피스 딜레마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가 듣지 않을 때 "통증 관리를 하면서 편안하게 마지막을 기다리겠다"고 선택하는 시설이 호스피스다. 서울성모병원 완화의료병동 1인실에서 만난 침샘암 환자 박경호(가명·47)씨는 일반 병동에서"남은 수명이 한 달"이라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옮겼다. 일반 병동에선 통증을 참다못해"제발 일찍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지만 여기선 머리맡의 빨간 버튼만 누르면 의료용 마약 투여량을 조절해준다. 하지만 시설좋은 호스피스는 대기자가 많다. 비용도 만만치않다. 저렴한 곳도 월 50만원은 들고 좋은 곳은 월 1000만원까지 한다. 박씨의 부인과 세 딸은"열심히 산 아빠가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내면 좋겠다"면서 하루 30만원짜리 병실을 잡아줬다. 박씨는 그 마음이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집에서 임종하겠다"면서 26일 만에 퇴원할 때까지 그는 입원비·간병비로 1000만원을 썼다.
    ㆍ내 집 딜레마
    서울 동작구에 사는 이재호(가명·65)씨는 작년 6월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가 "아픈 사람들만 보는 게 힘 빠진다"며 퇴원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호스피스 가정간호사가 찾아와 의료용 마약을 주고, 매주 금요일 인근 병원에서 몸 상태를 체크한다. 이씨는 "병원이랑 비교하면 내 집은 호텔"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씨처럼 마지막 순간을 내 집에서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아직까지 몇몇 병원에서 소규모 가정 간호팀을 운영하는 수준이지 국가 차원에서 그런 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보건복지부 담당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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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10년 의료비 폭탄이 '처량한 노후'를 부른다
    [서민 가정 울리는 '長壽의 역설'] 사망 직전의 치료 비용이 평생 의료비의 20~30% 차지 65세 이상 年진료비, 10조원서 4년새 16조원으로 늘어 회생 불능 판정받고도 치료 포기 않는 특수한 문화도 영향 高價 검사 반복… 면회 제한된 중환자실서 홀로 세상 뜨기도 남 A요양병원 4인실에서 만난 황갑순(가명·83) 할머니 가족. 큰아들(60)은 전직 경찰관,둘째딸(55)은 식당 종업원,셋째딸(53)과 막내딸(50)은 전업주부라고 했다. 노환으로 입원 중인 할머니가 입만 열면"나 좀 집에 데려다 달라"고 중얼거렸다. 1남3녀 중 "우리 집으로 가시자"고 선뜻 말을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1981년 남편을 잃고 혼자 살다가 노환으로 3년 전부터 본인 뜻과 상관없이 가끔 바지에 대소변을 지렸다. 1㎞쯤 떨어진 읍내 약국에서 약을 사 먹어가며 관절염 통증을 다스렸다. 여든을 넘기면서 집 안에서도 자꾸 넘어지고 밥도 제대로 못 넘겼다. 자식들 성화에"집 떠나는 게 죽기보다 싫다"던 할머니가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의사는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잃은 상태"라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 지역에선 노인을 요양병원에 모시는 사람이 드물었다. 지금은 요양병원이 많이 늘어난 데다, 병시중할 자식 세대도 환갑 전후가 됐다는 이유로 직접 수발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황 할머니가 흐린 목소리로 "내는 여기가 감옥 같다"고 했다.
    ▲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病魔)는 평범했던 한 가정을 풍비박산 냈다.가족회의 끝에 막내아들이 병든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했다.3남매는 모두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었다.아들은 차가운 교도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4일,아버지 이씨가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살던 포천 집에는 가족사진이 찢긴 채 나뒹굴고
    있었다. /이덕훈 기자

    한평생 가족을 위해 개미처럼 일한 한국인들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빈곤의 굴레'와 '외로움의 늪'에 빠진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노인 상대빈곤율 1위, 자살률 1위다. 왜 이런 일이 닥칠까?
    ㆍ'한국인의 마지막 10년'을 발목 잡는 세 가지 착각
    취재팀이 만난 전문가들은 "한국인에겐 세대를 막론하고 삶의 마지막 10년을 가난과 고독 속에 보내게 하는 '세 가지 착각'이 있다"고 했다. "한국인은 아직도'자녀'가 곧 자신의 노후인 줄 알아요. 과거 세대는 없는 형편에 모든 걸 투자했고 요즘 40~50대도 과외비·대학 등록금·어학연수비 대다가 은퇴 자금 모을 시기를 놓칩니다. 겉으론 아니라면서 속으로는 '버틸 만큼 버티다 막판엔 자식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데 착각입니다."(윤승진 유산·상속 전문 변호사) "한국인은 인생에 '여든 이후'가 없는 줄 알아요. 인생 2막을 계획하는 사람도 70대까지만 생각하지,80대 이후를 물으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는데 요즘 진짜 '노년'은 여든 이후입니다." (윤성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한국인은 죽음이 어느 날 '짠' 하고 갑자기 닥치는 줄 알아요. 대다수가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살다가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 앓으면서 경제문제와 외로움을 겪다가 세상을 떠납니다."(황나미 한국보건사회 연구원 연구위원)
    ㆍ준비 안 된 인생 말기
    이런 딜레마는 지역과 세대와 계층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 끝에 공통으로 기다리는 복병이'본인이 꿈에도 원하지 않았던 형태의 죽음'이다. 고령화로 인해 사망 직전 지출하는'사망관련 의료비'가 평생 의료비의 20~30%를 차지할 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서울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숨진 김명숙(가명·73)씨. 작년 초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했는데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검사 한 번 할 때마다 병원비가 목돈으로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환자 본인은 문병 온 지인들에게"나는 사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검사고 뭐고 다 그만두고 공기 좋은 곳에서 애들이나 자주 보며 편안하게 떠나고 싶다"고 하소연 했다. 자식들 입장은 달랐다."이렇게라도 해야 우리 마음에 한이 안 남는다"면서 상태가 좀 나을 땐 요양병원에 모셨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옮기는 걸 반복했다. 김씨는 중환자실에서 혼자 숨졌다. 가족 면회시간이 아니라 주위에 의료진과 의료장비뿐이었다. 전문가들은"노후빈곤에 시달린다면서도 회생 불가능한 사람까지 치료를 포기 못하는 한국의 특수한 문화도 한 몫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연간 진료비는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8년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고 매년 상승해 지난해엔 16조4502억원을 기록했다.
    Premium Chosun         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goodlu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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