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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역린

浮萍草 2014. 5. 13. 11:42
    정조의 사망원인은 콧수염?
    선은 설립부터 그 마지막까지, 왕조와 사대부의 치열한 헤게모니 쟁탈전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지속된 권력 암투에 조선의 왕들은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고 그 중에 대표 격이 이산, 정조입니다.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한 정조의 일대기 중에 정조 1년에 발생한 정유역변을 모티브로한 영화 <역린>이 선보였습니다. 
    영화의 내용보다 현빈의 복귀 작으로 더 관심을 받으니 감독이나 다른 출연진들에게 조금 섭섭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 <역린>에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데 화려한 출연진에 비해 그 시너지효과가 미진해보여 아쉽습니다.

    사극 드라마 다모에서 실력을 검증한 감독 이재규의 야심찬 데뷔작이기도한 영화 <역린>이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면 출연 배우들의 비중만으로도 시청률 상위권을 석권하였을 겁니다. 영화 <역린>은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시대적 상황에 맞춘 복식의 재현과 역사적인 사실에 허구의 캐릭터를 잘 결합한 세심함이 엿보입니다.

    그러나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모자랄 정도로,수많은 캐릭터와 끊임없는 에피소드는 영화의 힘이기도 한 몰입을 방해합니다. 뷔페식당 생각이 들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많고 화려한데 배부르게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 말입니다.
    그래도 영화가 끝나고 확실히 머릿속에 남는 건 강렬했던 현빈의 등 근육입니다. 스타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상체를 벗고 팔굽혀 펴기를 하는 조각 같은 몸매의 왕 역대 임금역 중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으로 기대됩니다. 팩션이라고 해도 사극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다보니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역린>도 정조가 죽지 않는다는 역사적 사실에 영화의 긴장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정조는 정유역변을 겪고 살아남았고 그 이후에도 몇 차례의 살해 위협을 견디어냈지만 결국 49세를 일기로 갑자기 사망 합니다. 정조의 사망을 두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개방과 개혁을 이룬 시대 정조 시대가 조금만 더 길었다면,근대화에서 일본에 앞서는 결과가 있었을 것이고 일제 강점이나 분단의 역사를 피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비록 가정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역사의 한 자락입니다. 정조의 사망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많았습니다. 노론의 영수인 정순왕후의 사주에 의한 독살이라는 설도 있지만 결국은 등에 난 등창에 의한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조선 왕들의 사망원인 중에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이 등창(종기)입니다. 암이나 심혈관 질환이 아니라 피부 염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기가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하면 뉴스에 날 일이지만 개인위생이 열악하였던 조선시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정조의 사망원인, 바로 그 등창의 원인이 그의 콧수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종기(furuncle)는 체모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모낭의 감염에서 시작됩니다. 모낭염이 심해져 피하조직에 결절을 형성하는 것이 종기입니다.
    종기가 인접한 다른 모낭에 퍼지면 다수의 모낭 입구에서 농이 배출되거나 큰 종괴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것을 큰 종기(carbuncle)라고 하는데 역사서에 나오는 등창이 바로 이것입니다. 큰 종기가 치료되지 않고 심해지면 조직의 괴사가 일어나고 균이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패혈증이 발생하며 결국 생명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원인균으로는 황색포도상 구균이 대부분입니다. 목 뒤에 호발하고 당뇨가 있으면 잘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의 접촉이 많은 집단에서 단체로 발생할 수 있으며 이것을 종기증(furunculosis)이라고 합니다. 개인위생이 열악하거나 종기증 환자에 접촉이 많으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공간인 조선시대의 왕궁, 잘 생길 수 있는 환경입니다. ​종기의 치료는 배농을 촉진하는 온찜질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항문 주변이나 엉덩이의 종기는 온수 좌욕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심한 경우는 절개해서 배농을 하여야하고, 항생제를 쓰게 됩니다. 종기가 자꾸 재발하는 경우, 즉 재발성 종기증은 콧구멍과 회음부에 황색 포도상 구균의 집락이 있는 경우입니다. 즉 원인균의 아지트가 코 속에 있는 것입니다. 코 속의 포도상 구균이 손을 타고 전신의 피부에 퍼지고, 감염에 약한 모낭에 균이 파고들어 염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코 안에 항생제 연고를 바르는 겻이 재발을 5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연구가 있어 주목됩니다. 조선 시대 왕들이 위엄 있게 길렀던 콧수염, 콧구멍에서 내려온 황색포도상 구균의 집합소였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종기의 원인이 되어, 종기증과 재발성 큰 종기를 유발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심한 종기는 연조직염과 괴사 근막염으로 진행되어, 심각한 패혈증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조선의 부활을 꿈꾸었던 정조,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그 뜻을 펴지 못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등창(종기)이 사망의 원인이 맞는다면 그 시작은 그의 콧수염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정조가 콧수염을 깎고, 콧구멍 내의 코털도 깨끗이 정리했다면 정조는 오래 살았을 수 있습니다. 비록 가정이지만 조선과 대한민국의 역사는 정조의 콧수염으로 인해 바뀌었을 지도 모릅니다.
    Premium Chosun ☜       임재현 나누리서울병원 원장 nanoori1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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