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귀·코·목 들여다보기

감기 후유증으로 후각을 평생 상실할 수 있다

浮萍草 2014. 3. 4. 10:29
    난 겨울은 혹독한 추위는 없었지만 이비인후과 의사 입장에서는 감기,독감,신종플루 환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 홍역을 치른 겨울이었다. 
    마스크를 두르고 고열을 동반한 전신통증과 기침을 해대는 환자들로 병원 대기실은 여느 때보다 북적였다.
    그런데 감기가 끝물인 요즘 들어 필자의 환자 중에서 ‘후각장애’ 환자가 유난히 많아졌다. 
    그 원인을 곰곰이 분석해보니 지난 겨울 감기,독감,신종플루 환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그 후유증으로 후각장애가 생긴 것이다. 
    후각장애 원인의 80%가 감기 후유증임을 감안하면 감기를 제때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ㆍ산해진미도 그림의 떡인 후각장애 환자들 후각장애는 시각이나 청각장애와 달리 장애인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살아가는데 큰 불편을 주고 사회적으로도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질환이다. 20년 전만 해도“냄새 못 맡는 것이 죽는 병도 아닌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죽을 병이 아니라는 이유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등한시 된 경향이 많았지만 최근엔 삶의 질을 생각하는 웰빙시대에서 평생 냄새를 맡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기 때문에 꼭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예를 들어보자. 냄새를 못 맡아 뜻밖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왜 모를까. 주방의 가스가 새거나 밥 타는 냄새는 물론이고 유독가스가 새어 나오는 사고현장에서 냄새를 못 맡아 대형화재사고가 발생하고 초기 대응을 못해 생명까지 위험에 빠진다면 과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말이다. 무엇보다 냄새를 평소대로 잘 맡던 사람들은 냄새를 맡지 못하는 고통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환자들을 진찰하며 냄새를 맡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 듣다보면 그것은 곧 살아갈 의욕이 없어진 것과 같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는 후각이 상실되면 미각도 함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맛은 혀로 느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음식의 향이 70~80%를 좌우하며 혀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은 단맛,짠맛,쓴맛,신맛 4가지뿐이다. 그래서 냄새를 맡지 못하면 가장 먼저 식욕을 잃는다. 입맛이 없어 삼시세끼 밥 먹는 일이 즐겁지 않으며 제 아무리 산해진미 밥상이 차려져도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ㆍ감기후유증, 코 막힘, 뇌 손상이 후각장애 주요 원인 후각장애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하거나 전혀 맡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아예 냄새를 맡지 못하는 무취증(anosmia) 커피처럼 강한 자극의 냄새만 맡을 수 있는 후각감퇴(hyposmia) 냄새를 맡고도 다른 냄새로 잘못 착각하는 착취증 (parosmia) 등으로 구분한다. 후각장애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감기 후유증’이다. 감기의 원인인 바이러스가 후각신경을 침범해 후각신경이 손상된 경우다. 이렇게 후각신경에 손상이 온 경우에는 급성 염증이 나아도 후각장애가 계속돼 치료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초기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코가 막혀서이다. 코가 막히면 냄새입자를 가진 공기가 후각신경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하거나 도달한다고 해도 점막이 부어 신경세포에 직접 접촉하지 못한다. 축농증이나 비염으로 코 점막이 부어 있거나 물혹이 생긴 경우가 대표적이며 감기 후 급성염증이 생겼을 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다행인 것은 이렇게 코가 막혀서 냄새가 후각신경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약물치료나 수술 등으로 치료되며 70~80% 이상 회복된다. 세 번째는 뇌 속에 혹이 있거나 교통사고 등 외상으로 뇌나 신경이 손상된 경우다. 후각신경이나 뇌가 손상되면 냄새가 코 속의 후각세포에 도달해도 반응하지 않거나 뇌 속 중추신경이 냄새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ㆍ“스테로이드는 나쁜 약?”의사 말 좀 들으세요 후각장애의 치료를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을 통해 숨겨진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비인후과에서는 후각기능검사<사진>가 보편적으로 쓰이는데 플라스틱 등의 용기에 냄새가 나는 물질을 담고 종이 스틱으로 찍어서 어떤 냄새인지 알아맞히게 하는 방법이다.

    진단결과 감기 후유증으로 판단된 후각장애의 경우 경구용(먹는) 스테로이드 제제 또는 코나 입 안에 뿌리는 국소 스테로이드 제제로 치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테로이드는 감기 때문에 부어있던 콧속 점막의 염증을 없애고 붓기를 빼 후각신경이 제 역할을 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스테로이드’란 말만 나와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환자들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 답답한 경우가 자주 있다. ‘스테로이드는 나쁜 약, 몸에 안 좋은 약’이라는 편견 때문에 처방을 내도 약 안 먹고 다른 병원 가는 환자들도 있다. 초기 스테로이드 치료로 후각장애가 충분히 나을 수 있었던 환자가 더 심해져 온 사례도 자주 접한다. 필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냄새를 다시 맡고 싶으시면 처방대로 꼭 복용하세요.” 감기라는 질환을 가볍게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후각과 미각을 잃는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봄의 향기로운 꽃내음을 기대한다면 감기 치료부터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다.
    ㆍ“냄새 맡아보는 것이 일생 최대의 소원입니다” 냄새와 관련해 유독 기억에 남는 환자 한분이 있다. 올해 57세의 사업가 A씨는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 일생 최대의 소원이었다. 어릴 때부터 심한 축농증을 앓아온 그는 서른살 무렵부터 꽉 막힌 콧구멍 때문에 27년째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다. 세상의 모든 냄새를 잊고 산지 오래다. 그 흔한 꽃냄새는 고사하고 담배냄새, 비린내도 어떤 느낌인지 잊어버렸을 정도다. 축농증 수술을 하고 싶어도 증상이 너무 심해 가는 병원마다 수술 불가 판정만 받다가 “이 나이에 실패하거나 재발해도 좋으니 제발 수술 해달라”며 필자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막상 콧구멍을 들여다보니 양쪽 콧속에 물혹이 꽉 차있어 숨쉴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고 축농증까지 심각한 상황이었다. 얼마 후 굉장히 힘든 수술을 마쳤다. 이비인후과 의사 하면서 그렇게 말 잘 듣는 환자는 처음 봤다. 수술 후 하지 말라는 술·담배는 물론이고 지켜야할 수칙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천했다. 얼마나 간절한 상황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하늘도 감동했을까? 수술 후 어느 날 진료실을 찾은 A씨는“선생님 콧구멍으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신기합니다”라며 연신 들뜬 목소리였다. 누구나 대수롭지 않게 누리는 냄새 맡는 것조차 누군가에겐 간절한 소원일 수 있다. 그 와중에 이런 농담까지 한다. “맛도 살아나고 다 좋은데 안 좋은 점도 하나 있네요, 선생님 하수구 냄새는 생각하던 대로 구리네요.” 비단 이 환자뿐만 아니라 후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사연은 책을 써도 될 만큼 구구절절하다.
    Premium Chosun ☜    이상덕 하나이비인후과병원장 lsd134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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