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귀·코·목 들여다보기

"편도선 수술하면 머리 나빠진다고? 천만에!"

浮萍草 2014. 1. 21. 14:28
    환자들이 의사에게 가장 듣기 무서워하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아마도“수술합시다”라는 말만큼 무서운 소리도 없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의사에게 수술 통보를 받는 순간 환자들은 “약물치료로 안 되요?”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되묻는다. 
    반대로 의사들도 환자에게 수술하자는 말할 때 가장 조심스럽다. 
    일단 자신의 몸에 칼을 댄다는 자체가 공포스럽고 혹여 수술 중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극단의 두려움과 불안감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 통보를 받는 순간부터 환자들의 머리는 복잡해진다. 본인이 무조건 수술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긍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필자도 같은 고민을 할 때가 많다. 
    직업이 의사이다보니 지인들의 병원소개 청탁을 자주 받는다. 
    “잘 하는 의사와 병원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인데, 필자가 송구함을 무릅쓰고 소개하지 않는 질환이 3가지 있다. 
    척추수술, 성형수술, 암 수술 잘하는 병원에 대해선 정중히 거절한다. 
    공통적으로 수술 확률이 큰 질환이고, 환자 입장에서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천차만별이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개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병원들마다 ‘비(非)수술, 무통(無痛) 수술 없이 완치’같은 치료법 홍보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수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인 선진 치료법들이 속속 도입되면서 환자의 고통은 줄고 의학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는 부분에서는 분명 반길만한 소식이다.
    하지만 여기서 꼭 하나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일부 병원에서 수술을 남발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행위이지만 거꾸로 비수술치료에 매료돼 명백하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마저 수술을 망설이고 증상이 악화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한다.

    ㆍ“꼬맹이가 무슨 수술이에요, 선생님?” 외과도 아닌데 이비인후과 의사가 무슨 수술 타령인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비인후과도 외과만큼이나 수술환자가 많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우리나라 주요 수술통계를 보면 다빈도 수술 12개 가운데 이비인후과 영역의 수술이 3개나 포함돼 있다. 부비동 내시경수술(축농증 수술) 갑상선수술 편도절제술 등이 각각 6위, 11위, 12위다. 1위부터 백내장, 치핵(치질) 제왕절개 척추 충수절제술 축농증 담낭절제술 슬관절치환술 자궁절제술 스텐트 삽입술 갑상선수술 편도절제술 순. 그중에서도 흔히 편도선 수술이라 말하는‘편도절제술’은 우리나라 9세 이하 어린이 수술 중 단연 1위다. 아울러 수술을 꼭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술도 편도절제술이다. 부모 입장에서 덜컥 수술하자는 의사 말에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에게 “꼬맹이한테 차마 칼을 대게 할 수는 없다”며 완강히 수술을 거부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웬만하면 수술까지는 피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솔직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술에 보수적인 동네 소아과나 내과에서“이왕이면 수술하지 말라”는 이야기라도 한 마디 듣고 온 부모들은 검사결과를 눈앞에 두고도 더 망설인다. 하지만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 아이임에도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수술을 피한다면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편도선 수술이라고 하면 대개 구개편도 즉 목젖 양쪽으로 도톰하게 보이는 부위의 절제를 말한다. 여기에 염증이 생겨 붓는 것이 편도선염인데 단순히 편도선이 자주 붓고 목에 통증이 있다고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수술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경우인데 이때도 수술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가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해서라도 무조건 편도절제술을 권하는 원칙은 명백하다. 진단 결과 수술을 꼭 받아야 하는 ‘절대적 적응증(absolute indication)’이면 수술을 권한다. 또 수술 안 했을 때 환자의 손해가 크다고 판단되면 수술한다.
    ㆍ편도수술 안 하면 무조건 손해보는 3가지 적응증 꼭 편도선 수술을 시행하는 ‘절대적 적응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고열을 동반한 편도선염을 1년에 3∼4회 이상 앓는다면 수술이 필요하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편도선염의 독소가 혈관을 타고 심장이나 콩팥, 관절 등으로 옮겨가 심내막염이나 신우신염·관절염 등의 합병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편도선염이 자주 재발하면 편도선은 원래의 면역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염증을 보관하는 장소로 변하게 되므로 차라리 ‘병균 둥지’를 싹둑 자르는 것이 좋다. 둘째, 편도선염을 자주 앓아 비대해진 편도나 아데노이드 때문에 숨길이 막혀 심하게 코를 골거나 수면무호흡증이 있으면 구개편도와 아데노이드(목젖 뒤쪽 부위)를 절제 하는 수술이 꼭 필요하다. “편도나 아데노이드는 사춘기가 지나면 작아진다는데 굳이 수술까지 해야 하나”라고 되묻는 환자들이 많은데 이런 상태를 두고 수술하지 않았을 때의 악영향이 너무 크다. 코골이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 주간 활동에 지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두뇌 발달과 성장·발육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성장기 어린이는 숙면 중에 성장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데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당연히 성장호르몬 분비량도 줄어든다. 코를 심하게 골면 산소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게 되는데 특히 뇌는 산소에 민감해 산소가 부족하면 두뇌발달이 저하되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편도아데노이드 비대증이 생기면 정상적인 코 호흡을 하기 어려워 입을 벌리고 숨을 쉬게 되는데 그러면 입이 돌출되는 이른바 '말상(아데노이드형)' 얼굴로 변하거나 부정교합이 발생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편도선 수술을 안 하고 놔뒀을 때 키도 안 크고, 공부도 못 할 수 있고 얼굴도 못생겨 질 수 있으므로 제대로 된 성장을 위해 수술을 권유한다. 마지막으로 편도가 크거나 편도선염을 자주 앓아서 중이염이나 축농증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수술을 해주는 것이 좋다.
    ㆍ“마취하면 머리 나빠진다면서요,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이 편도선 수술을 꺼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편도를 떼어내면 면역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 그리고 전신마취를 하고 나면 머리가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편도와 아데노이드가 면역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면 면역기능이 약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물론 영아기에는 편도와 아데노이드가 일부 면역기능을 담당하지만 성장하면서 다른 기관의 면역기능이 발달함에 따라 편도와 아데노이드의 면역기능은 점차 줄어든다. 3세 이상이면 면역기능이 성인 수준에 도달하기 때문에 편도를 절제해도 문제가 없으므로 안심해도 된다. 실제 편도·아데노이드 절제 후의 면역기능 변화에 대한 연구를 봐도 수술 때문에 면역기능이 유의하게 떨어졌다는 결과는 없다. 또 편도선 수술 때 전신마취를 하면 기억력이 감퇴한다는 속설도 있지만 이 또한 근거가 없다. 예전과는 다른 마취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간혹 전신마취 후 하루, 이틀 기억력이 떨어지는 듯하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다.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편도수술 당일날까지 부모들은 의사를 웃음기 싹 빼고 쳐다본다. 하지만 수술 후 보름만 지나면 열의 아홉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그리고 10년, 20년 필자의 단골환자가 된다. 3년 전, 편도선염이 연 4~5회 이상 발병하고 코골이도 심했던 의기소침한 모습의 7살 어린이 환자가 떠오른다. “죽어도 수술은 못 시키겠습니다”라며 버티는 엄마 “무조건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는 필자와의 한 달 넘는 대치상황. 수차례 설득해봤지만 “선생님,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이 어린 것에게 부모로서 차마 수술 못시키겠습니다”라고 버티길래“제 딸도 저희 병원에서 편도수술 받았습니다”고 하자 그때서야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수술 1년 후 그 엄마는 “선생님, 이렇게 좋은 걸 왜 안한다고 했을까요? 제 고집 때문에 아들 녀석 미래를 망칠 뻔 했네요”란다. 의사가 수술을 꼭 해야 한다고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Premium Chosun     이상덕 하나이비인후과병원장 lsd134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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