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귀·코·목 들여다보기

의사인 내가 수술대 위에 누워보니

浮萍草 2014. 2. 4. 09:25
    자는 환자들의 코를 치료한 지 25년 넘은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콧구멍을 들여다보고 매주 10여명의 코를 내시경으로 수술해왔다.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사반세기를 넘은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 콧구멍엔 너무 관대했다. 
    비염은 심각한 지경에다 온종일 코가 막히는 것은 물론이고 밤에는 아예 이러다 질식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에 시달렸다. 
    게다가 코막힘의 동반자인 코골이에 내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도 점점 지쳐갔다. 
    언제부턴가 내 옆에 있어야 할 아내가 침대 아래로 피신한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2012년, 큰 맘 먹고 코 안이 어떻게 됐나를 알기 위해 컴퓨터 단층촬영(CT)과 함께 코골이 때문에 수면다원검사도 했다. 
    결과를 본 후배 의사는“수술을 미룰 상황이 아닙니다”라고 통보한다. 
    비후성 비염에, 1년 넘게 콧속에 점막 수축 스프레이를 분사해온 탓에 이젠 어떤 약물도 듣지 않는 약물성 비염까지 겹쳤다. 
    결국 코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조선일보DB

    ㆍ의사 가운 대신 환자복 입은 사연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책상 앞 스케줄표부터 확인했다. 내 수술보다 나에게 수술 받을 환자들 스케줄로 꽉 찼고, 연이은 모임과 약속 스케줄까지 부담스럽다. 한국 사회는 일하는 중간에 병으로 쉼표를 찍는 일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난관도 따랐다. 후배 의사들이 병원장의 코 수술 집도를 꺼렸다. 당연하다. 그럴리 없겠지만 혹시 잘못되면 그 후한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결국 막내 전문의에게 메스를 맡기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수술대에 누웠다. 솔직히 무서웠다.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윽고 수면 마취로 한잠 자고 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수술 부위에 출혈이 일어나지 않도록 코 안을 솜으로 겹겹이 눌러놓아 코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리 전체에 묵직하고도 답답한 통증이 내리눌렀다. 다행히 무통주사 덕분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아팠던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25년 넘게 환자에게 상처 치료를 할 때는 '자~ 잠깐이면 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나요' 했지만 내가 직접 받아보니 잠깐만 견디고 조금만 참으면 되고, 말처럼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후배 의사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보여야 했다.
    ㆍ역지사지, 환자를 이해하게 된 ‘운명의 3일’
    나의 ‘눈물 쏙 뺀’ 수술 이야기는 조선일보 2012년 10월17일자(A36면)‘에세이(ESSAY)’ 코너를 통해 지면에 소개된 바 있다. 필자의 사연이 소개된 후 주변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에세이 잘 봤습니다.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는 좋은 사례였습니다. 변호사도 원장님처럼 클라이언트(의뢰인)의 절박한 입장을 잘 헤아려야 한다고 봅니다. 반성 많이 했습니다”라면서 소속 변호사들에게 에세이를 돌려보게 했다. 환자들로부터 느낀 고마운 기억도 많다. 수술 1개월 후 대기실 라운딩 중 70대 어르신께서 얼굴을 들이밀며 “원장이슈?” 네, 맞습니다. “다 나았수?” 네, 많이 좋아졌습니다. ”멋집니다” 짧은 세 마디 말로 응원해줬다. 진료실에 마주한 환자들도 본인의 콧구멍보다 필자의 콧구멍을 먼저 걱정해주기도 했다. 환자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아본 의사가 과연 대한민국에서 몇 명이나 될까? 감격의 순간들이다. 덤으로 아내의 잠자리도 침대 아래에서 내 옆자리로 원상회복됐고 코골이 없는 평온한 밤을 되찾았다. 의사 가운 대신 환자복을 입었던 3일 그 시간이 의사로서 살아갈 앞으로의 시간에 큰 가르침이 됐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가장 많이 와 닿는다. ‘20년 의사 이상덕보다 3일간의 환자 이상덕’을 통해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날카로운 메스를 댄 듯하다.
    ㆍ잔소리는 줄고, 배려는 늘고, 고통은 나누고
    사실 환자가 나 같은 지경이 돼서 병원을 찾아왔다면'뭐 하느라 코가 이 지경이 되도록 버텼느냐?'고 잔소리했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고 수술까지 하게 됐다고 말이다. 제발 코 좀 아끼고 사랑하라는 일장훈시도 늘어놨을 것이다. 코 수술은 금방 끝나고 며칠만 참으면 코로 숨 쉬는 날이 열릴 것이라고 평소 하던 대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수술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환자가 아파도 병원에 못 오는 사정이 뭔지 이해하게 됐다. 수술을 결정하기까지 뭘 고민하는지도 알게 됐다. 수술실 대기실에서 누워 기다릴 때 간호사의 관심어린 한 마디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수술실 침대가 얼마나 사람을 긴장시키는지 수술 후 솜 패킹이 얼마나 답답한지, 상처 치료 과정이 얼마나 아픈지를 직접 내가 코 수술을 받으면서 느꼈다. 그래서 환자에게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에도 신중을 기한다. 콧속에 솜 하나를 넣고 뺄 때 수술대에 오른 환자를 대할 때, 수술 후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마주할 때 가장 먼저‘환자 이상덕’이었던 시간을 되돌려본다. 코 수술 후 환자에게 습관처럼 했던 말도 가려서 하게 된다. 그러면서 환자들에게 왠만해서 하지 않는 말도 생겼다. ‘안 아파요, 왜 이제 왔어요, 빨리 수술 합시다.’ 환자였을 때 가장 귀에 거슬렸던 말들이다. 환자들에게 의사의 작은 관심 역지사지의 심정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지 몰랐다. 사연을 공개한 이상 앞으로 더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온다.
    Premium Chosun     이상덕 하나이비인후과병원장 lsd134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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