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클리닉을 부부가 함께 찾아오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부부 문제로 인한 화나 분노의 경우는 더구나 드문데 의례 스트레스를 준 쪽은 전혀 올 생각이 없고 스트레스를 받은 쪽만 와서 자신의 억울함과 분함을 호소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부의 문제로 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같이 병원을 방문한 하나의 사례가 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성질을 고쳐 주어야 살 수 있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이것을 고치지 못하면 이혼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우리 부부는 서로 싸워본 적이 없는 사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왜 부인이 이혼을 요구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같이 병원을 찾은 것입니다.
분명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 부인은 매일 싸운다고 남편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고 하니 이곳은 병원이 아닌 법원이 된 느낌이 듭니다.
비록 병원을 직접 찾고 있지는 않지만, 병원이라도 가서 이 문제를 고치고 싶은 부부들은 아마도 많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아서 같이 살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는 더 많겠죠.
최근 인구보건복지협회의 부부 대화 시간 조사에 따르면 부부의 삼분의 일이 하루에 채 30분의 대화도 나누고 있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원을 방문한 부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봅니다. 먼저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남편의 행동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됩니다.
아직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일입니다.
남편은 우선 목소리를 크게 하고 윽박지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나서 되레 화를 내기까지 합니다.
남편은 도와주는 것 하나 없습니다.
그저 자기 좋은 일만 하고 다닙니다.
도와달라고 하면 일을 망치기 일쑤지요.
아마 집안에서는 일하는 것이 싫은가 봐요.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는 이제 됐어 하면서 나가 버립니다.
돌아와서 분이 안 풀린 나에게 아직도 화가 나 있냐며 핀잔을 줍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가지요.
이러니 어떻게 같이 살겠습니까?
이제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무엇 때문에 싸웠다는 기억이 별로 나지 않습니다.
주로 제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마음이 급하니까 그리고 답답하니까 고함을 지를 때도 가끔은 있지요.
그렇지만, 잠시 그러고 나면 다 해결이 되어 버립니다.
부인의 이야기는 뻔합니다.
그렇게 오래 들을 필요가 없는 말들이죠.
그래서 중간에 빨리 끝내려고 한 것입니다.
저야 집에서는 할 일이 없죠 부인이 알아서 다 하니까요.
요즘 뭐 좀 도와주려고 하면 도리어 망친다고 하지 말라고 하네요.
부인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이제 됐어 하고 이야기를 끝냅니다.
그리고 더 대화를 하다 보면 싸움이 될 것 같아 그 자리를 피하지요.
한참 있다가 돌아오면 다 해결이 되어 있지요.
 | ▲ 화병은 한국인에게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문화증후군이다.보통 분노,억울함,우울 등의 감정이 억눌려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지속된 탓에 정신적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 |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두 분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자꾸 밝히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고, 또 화가 치밀어 올라 이렇게 병원을 찾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역시 누가 잘못했는지 가려달라고 합니다.
법원도 아닌데 졸지에 저는 재판관이 되어 버립니다.
앞서의 신문보도에서는 부부 대화 시간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만 부부에게 있어서 대화의 시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다툼이 대화라면 그 시간은 적을수록 좋겠죠.
대화의 주제가 ‘문제’에 있고 대화의 결론이 ‘해결’이라면 매우 힘든 대화를 하게 되고 결국 다툼으로 끝나게 됩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대화를 하지는 말아주세요.
결론을 빨리 내려고도 하지 마세요.
대화는 그저 서로 마주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대화의 ‘내용’과 ‘과정’입니다.
‘과정’을 중시하는 부인이라면 어떤‘내용’으로 이야기를 할까, ‘결론’을 중시하는 남편이라면 어떤 ‘과정’으로 이야기를 할까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기 바랍니다.
부인이 ‘What’을 정하고 남편이 ‘How’를 정하면 됩니다.
부인이 대화의 주제를 정한다면, 남편은 장소와 분위기를 정하면 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는 그간에 익숙했던, 그간에 다툼으로 이어졌던 대화에서의 역할과는 다른 역할을 찾아봅시다.
그런 다른 역할이 도리어 갱년기를 맞고 있는 자신에게 더 맞는 지도 모릅니다.
☞ Premium Chosun ☜ ■ 김종우 경희대 한의과대 교수 aromaqi@naver.com
草浮 印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