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浮萍草音樂/아시아 불교민속

<1〉 미얀마 ①

浮萍草 2014. 1. 13. 06:00
    탁발, 채움과 나눔이 함께하다
    린이도 어른도 수도승도 물건을 파는 이도 미얀마 사람들의 표정은 무심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어주는 미소도 무심에서 피어난 것이기에 참으로 맑다. 
    1000명의 스님이 수행하고 있는 마하간다용 수도원의 대규모 탁발행렬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양을 올리고 받는 이들의 담담한 표정과 조용한 진행이었다.
    신도들이 뽀얀 쌀밥과 과자를 발우에 담아주어도 스님들은 묵묵히 받을 뿐이다. 
    감사의 표시조차 하지 않는 것은 공덕을 쌓을 기회를 얻었기에 감사는 주는 쪽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감사는 주는 쪽에서’라는 의미를 넘어선 곳에 미얀마불교의 놀라움이 있었다.
    발우를 든 스님들을 따라 승방으로 접어드는 골목길에 들어서자 노인과 아이들 여성들이 길가에 앉아 두 손으로 빈 그릇을 내밀었고, 스님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몫을 그들 
    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닌가. 
    채우고 나누는 일, 받고 주는 일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질의 오고감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물 흐르듯 가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ㆍ베풀고 받는 이 베푸는 물건 모두 청정하고 집착 없을 때 진정한 보시이자 공양일 것
    마지막 날 쉐다곤 파고다의 저녁풍경은 참으로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다. 거대한 사원촌처럼 수많은 탑,열린 법당과 그곳에 모신 무수한 부처님과 갖가지 성상들 그리고 수백의 부처님 앞에 합장한 채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어둠이 덮이고 황금빛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의 현지인과 관광객이 소란하지 않게 조용히 움직이는 광장의 모습은 꿈결 속 풍경인 듯 비현실적 이었다. 부처와 중생이 구별되지 않았던 그 조용하고 신비로운 종교축제의 시간이 일상적으로 펼쳐진다니 놀라왔다. 화내는 사람, 파안대소하는 사람 뛰어가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던 미얀마. 미소 띤 미얀마인들의 얼굴이 그토록 맑고 무심했던 것도 스스로 종교인이라는 인식 없이 종교적 삶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얀마인이 된다는 것은 곧 불교도가 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지만 행복지수가 최상위권인 나라 태어나면서부터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살아왔기에 재가자와 출가자의 마음가짐이 크게 다르지 않고, 그들의 표정과 미소도 승속을 떠나 서로 닮아있는 것일까. 부처님은 베푸는 쪽 받는 쪽 베푸는 물건 이 세 가지 모두가 청정하고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을 때 진정한 보시이고 공양이 된다고 하셨다. 미얀마에서 본 것처럼 수행에 힘쓰는 스님을 공경하며 공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어렵고 굶주린 중생을 돕는 일 또한 당연하다. 공양을 받고 그것을 다시 베푸는 선순환…. 거기에는 이미 ‘누가 누구에게’ 공양한다는 자리를 떠나있어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應無所住而生其心)’ 삶을 실천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또 중생은 법계(法界)에 가득 차 있는 생명의 기운, 행복의 기운, 반야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셨다. 미얀마인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체득하고 나의 기운과 능력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여 내 것만 챙기며 살아가는 데 익숙한 우리들에게 속삭이는 듯하다. “자신만을 위한 모든 것에서 훌훌 벗어나 나의 벽을 무너뜨리세요. 그러면 법계에 충만한 참된 복덕이 찾아들 거예요.”
    ☞ 불교신문 Vol 2976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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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