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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와 건괘

浮萍草 2014. 1. 24. 11:46
    “사의재(四宜齋)란 내가 강진에 유배를 가서 살던 방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를 가서 처음 머물렀던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의 작은 방에 ‘사의재’란 이름을 붙였다. 
    ‘매반가’란 밥 파는 집을 가리키니, 아마 술도 팔고 숙박도 했을 것이다. 
    그런 곳의 방 한 칸을 얻어 기거했다. 
    대역죄인이라 그마저도 감지덕지했겠지만 궁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강진에 유배온 1801년 11월부터 매반가의 방에서 2년을 보내고 갑자년(1804) 새해가 시작되는 날 다산은 그 방의 이름을 ‘사의재’라 짓고 ‘사의재기(四宜齋記)’라는 기록을 
    남겼다. 
    ‘사의(四宜)’란 네 가지 마땅함을 가리키는데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고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고 말은 마땅히 과묵해야 하고, 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한다는 것
    이다.
    “마땅하다(宜)는 것은 의(義)라는 것이니 의(義)로써 제어하는 것이다. 
    어느새 나이만 먹고 뜻한 일은 변변히 이룬 게 없는 것을 생각하며 슬퍼한다. 
    스스로 반성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과객들로 왁자한 매반가 한쪽 켠의 누추한 방이었지만 사의재라 이름 붙인 방 주인의 의지는 결연했다. 
    다산이 새해에 학업과 저술 의지를 확고히 세웠고 이후 통산 18년의 유배생활을 통해 실학의 집대성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역경을 기회로 삼은 것이다.
    다산은 ‘사의재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오늘 나는 <주역>의 건괘(乾卦)를 읽었다.” 
    ‘건괘’는 <주역>의 맨 처음에 나오는 괘이다. 웬 ‘건괘’인가?
     “ ‘설괘전’에 말하길, 건(乾)괘는 굳셈(健)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길, 건은 하늘(天)이요 굳세어 쉼이 없는 것을 일러 건(乾)이라 한다.” 
    다산이 쓴 <주역사전(周易四箋)>에 나온 설명이다. 
    ‘계사전’에서는“건은 태초의 시작을 주관하고, 곤(坤)은 만물의 완성을 이루는데 건은 평이함으로써 주관하고 곤은 간결함으로써 잘 이룬다
    (乾知太始 坤作成物 乾以易知 坤以簡能)”고 했다.
    다산이 건괘를 말한 것은, 쉼이 없는 하늘의 운행처럼 부지런하겠다는 다짐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운행에 따라 새해도 어느새 질주하고 있다. 
    새해의 시작은 평이함으로써 하되, 기본은 부지런함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Khan         김태희 실학21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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