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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어진 정치

浮萍草 2014. 1. 10. 09:45
    배와 방랑을 겪던 정도전. 
    이성계의 군막을 찾아가 군기가 엄정한 군대를 보고 말했다. 
    “이 군사라면 무슨 일이든 못할까?” 
    밖으로는 원(元)에서 명(明)으로 패권이 옮겨가고 안으로는 권문세족과 신진 사대부가 대립하던 시기였다. 
    정도전은 현실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하고 기득권의 온상이 된 불교를 비판하고, 유교의 나라를 꿈꾸었다.
    정도전의 유교적 정치 기획은 그의 저서 <조선경국전>에 잘 나타나 있다. 
    첫 항목인 ‘정보위(正寶位)’에서 군주권의 정당성 근거로 ‘어진 정치’를 들었다. 
    “성인(聖人)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天地)의 큰 덕은 생(生)이니 무엇으로 위를 지킬 것인가? 
    바로 인(仁)이다.” 만물을 살리는 천지의 마음을 군주가 본받아야 한다. 
    ‘인정론(仁政論)’은 정도전 정치론의 출발점이었다.
     “임금의 자리는 아주 높고 아주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다. 
    한번 그 마음을 얻지 못하면 큰 걱정거리가 생기게 된다. 
    하민(下民)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겁줄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모략으로 속일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승복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떠난다. 
    떠나고 머무르는 것 사이에는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사사로운 마음으로 구차하게 얻는 것도 아니요, 
    도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찬양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역시 인(仁)에 의해서일 뿐이다.” 
    약하고 어리석지만 수적인 다수. 
    정치란 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정(仁政)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형벌은 보충적 수단일 뿐이다. 
    “성인이 형(刑)을 만든 것은 이것에 의존해서 정치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보충하려는 것일 뿐이다. 
    벌로써 벌을 그만두게 하고, 형(刑)은 형이 없기를 기약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정치가 잘 이뤄지면 형벌은 쓸데없게 될 것이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한(漢) 고조가 장량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장량처럼 아름다운 은둔으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방원(후일 태종)에게 습격당해 비명에 갔다.
    경세가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주역이면서도 조선시대 내내 저평가되었다. 
    그렇지만 정조는 그를 인정하여 그의 저서 <삼봉집>을 간행하도록 왕명을 내렸다. 
    경복궁 내 여러 이름을 정도전이 지었는데 ‘사정전(思政殿)’과‘근정전(勤政殿)’이란 이름에서 ‘생각하는 정치’ ‘부지런한 정치’에 대한 그의 기대를 알 수 있다.                   
    
    Khan         김태희 실학21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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