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귀·코·목 들여다보기

코 홀대하다 큰 코 다친다

浮萍草 2014. 1. 2. 06:00
    
    ㆍ20년 넘게 남의 콧구멍만 들여다 보니
    비인후과 의사하면서 족히 수만 명의 콧속을 들여다 봐왔다. 
    20년 넘게 콧구멍만 들여다보니 잘생긴 코는 잘 몰라도 이상이 있는 코는 귀신처럼 알 수 있다. 
    그런데 코라는 기관이 우리 몸에서 하는 일에 비해 너무 천대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환절기엔 콧물 나오면 휴지부터 들이대고 코딱지는 더러운 놈 취급 받고 코 후비면 매너 없다는 말부터 듣는다. 
    심지어‘콧방귀 뀌다’‘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코 묻은 돈’‘코에 걸면 코걸이’‘내 코가 석자’‘콧대 높다’‘큰 코 다친다’ 등 어감이 좋지 않은 문장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것이 
    코이다.
    코의 위아래 이웃 기관들과는 사뭇 대조적이기도 하다. 
    바로 위에 붙은 눈은 정기검진도 받고 시력을 좋게 하는 온갖 음식과 약물로 대접 받는다. 
    코 밑에 붙은 입은 먹고, 마시고 사랑을 나눌 때도 사용하면서 나름 호강한다. 
    콧물은 더럽고 지저분한 존재 눈물은 아름답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약으로 묘사되지 않는가.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오직 코를 위한 ‘코 예찬론’을 펼까 한다. 
    다소 교과서 같은 이야기 일 수 있지만 이비인후과 의사, 그것도 코질환 전문의로서의 예찬론이다.
    ㆍ눈과 입에 비해 너무나 홀대받는 코
    매일 한 번 이상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는 코는 사실 별 것 아닌 신체기관처럼 생각하지만 그 기능을 알고 나면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놀랍고도 소중한 기관이다. 숨쉬고, 냄새 맡는역할은 물론이고 우리 몸의 공기청정기 역할 가습기 역할까지 하루 종일 바쁜 곳 또한 코이다. 그래서 코에 조금만 이상신호가 생기면 사람들은 “아프다”는 느낌보다 “불편하다”는 말부터 꺼낸다. 숨 쉬기 불편하고, 냄새를 못 맡아 불편하고 콧물 나고 재채기해서 불편하다. “코만 뻥 뚤리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소연하는 환자들도 수없이 많다. 코에 병이 나도‘죽을 병은 아니다’고 코웃음 치다가 축농증 비염 비중격만곡증 코막힘 등 코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코의 소중함을 잠시나마 떠올린다. 가장 먼저 코는 공기가 몸으로 들어오는 통로 곧 숨길이다. 코로 들어온 공기가 기관지를 통해 폐로 전달돼 호흡을 유지하는데 코는 하루에 1만3400리터의 공기를 실어 나른다. 코는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인데 여기서 콧구멍이 두 개인 이유가 밝혀진다. 우리 콧구멍은 두 개가 동시에 호흡하지 않는다. 한쪽 콧구멍이 숨을 쉴 때 다른 콧구멍은 냄새 맡는 역할에 충실하며 휴식을 취한다. 이렇게 양쪽 콧구멍이 번갈아 가며 숨을 쉬는 주기는 약 40분이며, 이를 코 호흡주기(nasal cycle)라고 한다.
    ㆍ하루 1만3400리터 공기 운반하고 4000가지 냄새 맡아
    둘째, 코는 4000가지의 냄새를 맡는다. 전문적인 후각훈련을 받으면 1만여 가지의 냄새도 구별 가능하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냄새 분자가 콧구멍을 통해 들어오면 후각세포들은 냄새분자를 모아 뇌에 전달해 냄새를 구별한다. 10년 전인 2004년엔 코가 어떻게 냄새를 구별하는지 연구한 결과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인간의 후각계통에 대해 연구한 공로로 미국의 리처드 액설과 린다 B.벅이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는데 노벨상위원회는 선정 이유로 “어떻게 사람들이 라일락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몇 년 후 이 향기를 다시 기억할 수 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후각의 비밀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선정 이유는 또 있다. “인간이 어떻게 1만여 가지나 되는 냄새를 맡고 기억할 수 있는지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면서“후각은 갓 태어난 포유류가 엄마를 알아내는 것에서 화재 감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물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간의 삶의 질에도 중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왜 코를 예찬할 수밖에 없는지 단적인 표현이 담겨있다. 코가 인간의 생존, 그리고 삶의 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셋째, 코는 하루 1리터의 수분을 생산하는 인체 가습기 역할도 묵묵히 해낸다. 폐가 좋아하는 습도는 75~80%인데 날씨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절해 주는 역할이다. 건조한 공기가 코로 들어가면 콧속 점막에서 습기를 얻은 후‘영리하게’ 폐가 좋아하는 습도로 변해 폐에 공급된다. 폐에 알맞은 습도로 조절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분의 1초.
    ㆍ가습기, 난방기, 청정기 역할도
    콧물도 더럽다고 무시할 녀석이 아니다. 콧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각종 조직액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각종 염증세포와 염증매개물질인 히스타민과 류코트라이엔, 호산구 등이 들어 있어 점막으로 유출 되면 가려움증을 동반한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콧물 등으로 코막힘 증상이 있을 때는 가볍게 그리고 천천히 코를 풀어내는 것이 좋다. 콧물 흐른다고 귀찮아만 하지 말고 내 몸을 보호해주는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넷째, 인체 난방기와 공기청정기 역할도 코의 몫이다. 사람의 체온은 36.5℃인데 바깥 기온은 그렇지 않다. 만약 찬 공기가 그 온도대로 몸속으로 직접 들어오면 폐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코는 콧속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폐에 도착하기 전에 따듯하게 데워 아무리 차가운 공기도 코에서 목으로 넘어가는 동안 30~32℃로 조절한다. 인간이 극지대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코 덕분이다. 공기 속 미세 먼저를 걸러내는 공기청정기 역할도 코가 하는데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 1㎤에는 약 10만개의 미세먼지가 포함돼 있으며 이때 공기와 섞여 들어온 먼지와 이물질은 일차적으로 코털에 의해 저지된다. 코털이 걸러내지 못한 미세먼지와 세균, 유독가스는 코털보다 가는 섬모(纖毛)에 의해 걸러진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콧물에 의해 씻겨 나오게 되며 그래도 나오지 않고 붙어 있는 먼지와 이물질은 재채기로 내보낸다. 지독하게 남아있는 최후의 이물질이 계속 들어오면 콧속이 부어올라 침투를 막는다. 무려 5단 필터 공기청정기라고 보면 된다.
    ㆍ‘오똑한 코’ 보다 ‘건강한 코’에 신경써라
    마지막으로 코는 소리를 크고 맑게 내는 역할을 하는 공명기 역할을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코맹맹이 소리를 내봤을 것이다. 이처럼 코가 막혔거나 코를 막고 목소리를 내면 소리도 이상할 뿐 아니라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이는 코가 일종의 울림통 역할을 하는 공명기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현악기에 울림통이 없으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코가 건강하지 않으면 코맹맹이 소리가 나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숨쉬고 냄새 맡고 가습기 난방기 공기청정기 공명기 역할까지 이 모든 일을 코가 해낸다. 이비인후과 의사로서 코를 예찬하는 이유들이다. 그래서 코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 춥고 바람 불 때는 마스크도 써주고 깨끗하게 청소도 해주라는 이야기다. 오똑하고 예뻐지기 위해 코를 세우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콧속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한 이유다.
    Premium Chosun     이상덕 하나이비인후과병원장 lsd134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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