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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동지팥죽

浮萍草 2013. 12. 23. 09:23
    세시풍속 전승 주체 사찰
    태양이 부활하는 날… ‘작은설’ 차례상에 팥죽 불공하고 대중과 함께 나눴으니 ‘절식’이 우선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는 속담이 있다. 황진이가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자락 베어뒀다가 임 오시는 밤에 펼치고자 했듯이 동지는 밤이 가장 길지만 그 다음날부터 해가 조금씩 길어져 양의 기운이 새롭게 싹트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예기>에서도 “동짓달에 우물물이 일렁이기 시작한다”는 말로 거대한 기운의 태동을 표현하였다. 이에 동지를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라 하여 ‘작은설’이라 부르며 해가 바뀌는 또 하나의 시점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고려의 문인 이색(李穡)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동지에는 음이 극에 이르러 일양(一陽)이 생기는 것이니… 사람마음도 욕심에 가려졌다가 착한 단서가 수시로 드러나는데 그것을 기름은 군자에 달렸으되 성실함이 우선이니 예 아닌 것을 버려야 비로소 밝은 본성 보게 되리 팥죽 먹어 오장을 씻으니 혈기가 조화 이뤄 평온하여라.”
    그는 동지를 지나 양이 싹트는 것을 욕심으로 가려졌던 마음에 착한 심성이 드러나는 것으로 비유하고 동지팥죽이 오장을 깨끗이 씻어주어 혈기를 조화롭게 한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팥죽만큼 다양하게 활용되는 명절음식도 없을 듯하다. 해가 짧은 동지에는 음기가 성하여 팥죽을 끓여먹음으로써 이에 대응하였고 또 대문ㆍ마당ㆍ부엌ㆍ뒷간 등 집안 곳곳에 팥죽을 놓거나 뿌려 적극적으로 액을 쫓았다. 초상이 났을 때 팥죽을 쑤어 부조하고 이사ㆍ개업 때 팥죽이나 시루떡을 돌리는 것도 모두 팥의 붉은색이 잡귀를 물리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귀신을 쫓는다 하여 조상신을 모시는 제사상에는 팥을 쓰지 않지만 예외의 날이 있다. 예전에는 동지에도 차례를 지냈는데 이 제사에서는 팥죽을 올리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이다. 제사상에 팥을 놓지 않는 풍습과 상충되는 동지차례의 뜻을 유추해보면 무엇보다 차례 상에 올리는 절식의 개념이 우선했음을 알 수 있다. 설에는 떡국을 올리고 한가위에는 송편을 올리듯, 동지의 절식인 팥죽을 조상신께 바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우선할 수 있는 것은 팥의 의미가 어디까지나 선의 편에서 악을 물리치는 구도 속에서 움직인다는 데 있다. 조상신은 선신(善神)이기에 혹시나 조상신마저 돌아가게 만들까 하여 팥을 쓰지 않았던 평소의 염려에 앞서 조상신이 절식을 흠향하게 하려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동짓날이면 사찰마다 동지불공과 함께 팥죽을 나누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많은 대중이 먹어야하니 팥죽의 양도 엄청나게 마련이어서 이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도 생겨났다. 옛날에 스님들이 서로 자기 절을 자랑하는데 통도사 스님이“우리 절 법당은 문이 커서 한번 여닫으면 문고리에서 쇳가루가 1말3되나 떨어진다”고 하였다. 이에 선운사 스님이 “우리 절 뒷간은 어찌나 깊은지 어제 눈 똥이 아직 떨어지는 중”이라 하자 해인사 스님은“우리 절에는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면 배를 띄워 젓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동짓날 집집마다 조상신께 팥죽을 올리는 풍습은 사라졌지만 사찰에서는 지금도 부처님께 팥죽공양을 올리고 대중이 함께 나누니 우리의 사찰은 전통 세시풍속을 전승하는 주체라 할 만하다.
    ☞ 불교신문 Vol 2971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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