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시풍속 담론

<41>. 연탄과 빠삐용의자

浮萍草 2013. 12. 16. 09:37
    느림의 가치
    사물과 현상, 내면의 소리 더 잘 들리니 ‘각자의 의자’에서 해야 할 일 돌아보게 해
    "안방 사신(死神) 연탄가스 잡을 길 없나.’ 1980년대 중반의 어느 신문기사 제목이다. 당시 우리의 연탄인구는 3000만 명이었고 매년 1만분의1에 해당하는 3000명이 연탄가스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연탄을 써도 바닥에 호스를 깔아놓고 뜨거운 물을 데워 돌리기 때문에 가스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편해져, 검은 연탄이 붉은 용광로처럼 타오르다가 이윽고 회백색으로 사그라지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기 힘들게 되었다. 시인 안도현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는 짤막한 시에 ‘너에게 묻는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시는 식어버린 연탄재를 쓸모없는 잿더미로 여겼던 이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면서 연탄재는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운 삶의 온전한 흔적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어 그는 ‘연탄 한 장’이란 시를 썼다.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지금은 삶의 섬세한 과정들이 스위치 하나로 온ㆍ오프 되는 시대이다. 심지를 돋우는 등잔불도 촛농을 흘리는 촛불의 일렁임도 사라지고 성냥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어두침침한 등잔과 일렁이는 촛불 아래선 책읽기도 쉽지 않았으나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환한 세상이 되었으니 인간은 어느 때보다 뜻있는 많은 일을 하게 되었으리라.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들이 한순간으로 압축되면서 일상의 여유로움 또한 늘어났으리라. 그러나 실제는 어떤가. 우리는 그 삶을 무언가로 가득 채우고 있을뿐더러 편리해질수록 오히려 더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삶의 과정이 다소 불편하고 느리게 흘러가던 시절에는 오히려 삶의 빈 시간과 공간이 많았다. 그래서 사물과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느낌과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머리는 호랑이요 입은 고래 같으나 자세히 보면 범도 아니요 고래 또한 아니로다. 일꾼이 불만 잘 피워놓으면 호랑이도 고래도 구워먹을 수 있겠구나.” 옛 시인 김삿갓이 화로를 이리저리 보다가 특유의 유머와 호방한 기개로 상상력의 시를 꽃피웠듯이…. 송광사 불일암에는 법정스님이 직접 만든 빠삐용의자가 있다.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는 거야.” 영화 ‘빠삐용’을 보고 와서 만들었다는 스님의 의자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낭비하지 않는 인생이란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각자의 빠삐용의자에 앉아보게 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그 의자는 “우리에겐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12월의 현대인들이 만난 그 의자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겨울연탄처럼 온전히 타서 온전한 재로 남아야 하리라”고 말할 것이다.
    ☞ 불교신문 Vol 2969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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