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문득 돌아본 그때 그곳

<35> 강남터미널과 대중잡지

浮萍草 2013. 12. 7. 11:25
    터미널 곳곳 고개숙인 사람들 ‘체면’ 덮고…‘욕망’을 넘기다

    사진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1990년대 초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대중잡지들(로맨스·아리랑·가요생활). 오른쪽 아래 상·하단은 각각 1972년 한 주간지에
    실린 다방관련 기사와 1975년 아리랑 잡지의 인기연재물 ‘찻잔에 어린 진풍경’. 문화일보 자료사진
    거진의 어원은 창고이고 저널은 일기에서 나왔다. 우리 경우는, 아마 일본식 표기를 그대로 가져왔을 텐데 정기 간행물을 일컬어 ‘자질구레하고 막된 것’을 의미하는 잡(雜)을 사용해 잡지라고 한다. 잡초, 잡종, 잡놈… 좋을 것이 없는 표기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의 영원한 애송시에 잡지는 이렇게 표현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서 잡지는 생의 통속함을 상징한다. 시인이 생을 마쳤던 1950년대에 그 통속한 잡지의 대명사는 ‘명랑’ ‘아리랑’ 등이다. 대부분 농촌에서 살았던 당시 사람들에게 그 잡지들은 세련된 도시생활에 대한 선망 보지 못한 영화의 줄거리 꿈에서나 만날 법한 성공신화 따위를 전파했다. 시골청년, 아낙네들이나 머나먼 전방군인들은 화보에 등장하는 인기 여배우 사진을 보며 가슴 두근거려했다. 그리고 스스로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잡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국민 오락거리였다. 당시 월간지 ‘명랑’은 ‘세븐 S’를 편집방향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섹스, 스토리, 스타, 스크린, 스포츠, 스튜디오, 스테이지’가 그것인데 요즘도 통용될 수 있는 대중취향이 아닐까. 내 기억 속에서 박인환의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잡지의 대명사로는 ‘주간지’가 떠오른다. 주간지를 ‘주간마다 발행되는 잡지’로 이해한다면 당신은 젊은 세대다. 과거의 주간지는 본래 뜻과는 전혀 다른 울림을 갖고 있다. 주간지라는 명칭 속에는 여인의 가슴과 허벅지 유명인의 추문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최첨단의 유행과 별난 세태 괴기스러운 이야기, 낯선 이성과의 펜팔 따위가 숨어 있다. 주간지는 곧 은밀한 욕망의 표상이었다. 수입되는 뉴스위크나 타임을 필두로 유수한 국내 시사 주간지도 많았건만 어째서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졌을까. 바로 선데이서울 주간경향 주간한국 주간여성 주간중앙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8년, 신문사의 주간지 발행금지 협약이 해소되자 우후죽순 격으로 대중 주간지가 발행되기 시작했는데 이른바 100만 독자라는 표현대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김지미와 최무룡의 불륜과 결혼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그 유명한 파경에 어떤 내력이 숨어있는지 사람들은 주간지를 통해 정보를 교환했고 입담을 겨루었다.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 없는 배우 탤런트 가수 스포츠 스타의 사생활이 이웃집 일처럼 친숙해지는 것은 주간지를 통해서였다. 1977년 5월 29일자 ‘주간경향’의 기사 한 대목을 옮겨보자. “조용필과 만나본 일도 없다는 서울 성동구 구의동 242번지 일대 거주 30∼40대 주부 60명이 그의 가요계 복귀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각계에 내서 화제‘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아닌‘돌아와요 조용필’의 별난 사연인 즉… ‘저희의 간청이 어쩌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어리광이냐고 나무라시겠지요. 아빠들이야 밖에 나가시면 본의에서든 타의에서든 한 잔의 대포라도 기울일 수 있지만 저희 주부들은 아빠들이 금방 이해 못하시는 이런 작은 일까지 심각하게 받아 들여지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옵니까? 저희들의 가수 조용필 군을 다시 저희들 옆에 있게 도와주세요. 엎드려 간청하옵니다. 저희는 가수 조용필 군의 인간 됨됨이나 온 국민이 다 열창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대마초 흡연으로 연예활동을 중지당한 조용필의 복귀를 호소하는 내용인데 기사 마무리가 이렇다. “기다란 타자용지에 2000여자를 깨알처럼 박아 쓴 진정서의 말미에는 ‘조용필 군과 전혀 친면이 없음을 맹세합니다’라고 동기의 순수성을 다짐한 이들은 서울 성동구 구의동 242번지 신흥주택가 주부들이다.” 실제로 이 같은 주부들의 진정서가 있었는지 기자의 창작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주간지 속에 이런 세상이 있었고 독자들은 그걸 즐기고 나누었다. 어쩐지 내놓고 읽기에는 남의 눈치가 보이는 대중잡지. 그것이 유통되는 공간이 있다. 여성들만의 해방구 같은 미용실이나 목욕탕 휴게실 등이 그런 곳인데 그마저 청소년 신분으로는 접근이 쉽지 않다. 직접 돈을 주고 주간지를 구입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은 바로 고속버스 터미널이나 기차역이었다. 강남터미널 남부터미널 동서울터미널 상봉터미널 그리고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영등포역 버스 터미널과 기차 역사는 그야말로 울긋불긋한 황색지 도색지 또는 각종 주간지의 천국이었다. 에릭 시걸의 ‘갈매기의 꿈’을 들고 다니던 손에 ‘사건과 실화’‘월간 야담’‘일요신문’이 거침없이 들려졌다. 좁다란 좌석에 여럿이 구겨 앉아 킥킥거리며 페이지를 함께 넘기면서 큰소리로 떠든다. “햐, 정윤희 엉덩이 대빵 예쁘다!” 이처럼 왕성한 독서열이 어디 있으랴. 터미널 매대에서 잡지 몇 종을 고르고 화보에 낙서까지 하면서 일행들과 돌려 읽다 보면 행선지 부산이나 여수에 금방 다다른다. 개중에 말없이 조용한 친구는 기사 속 어떤 내용에 깊이 빠져든 탓이다. 남몰래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는 친구도 있다. 흘낏 보니 주소를 옮겨 적고 있다. 바로 대중지마다 빼놓지 않고 마련하는 펜팔난의 주소다. 펜팔 사연은 이런 식이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밤이 흐릅니다. 사랑과 믿음이 지는 내 외로움 그대로 당신에게 흐르고 있습니다. 세월의 골짜기를 뚫고 당신과 내가 흐르고… 나를 스쳐 이 밤에도 이렇게도 짙은 외로움이 흐르고 있습니다.” “가로등 불빛은 은은한 불빛이었지. 멀리서 보면 밝고도 아름다운 빛인데 가까이서 보면 어찌 그리도 슬픈 빛을 하고 있는지…. 이제는 아무도 사랑 때문에 울지 않을 텐데… 왜 저렇게 혼자 울고 서있는 건지… 아무도 바보처럼 거리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지도 않는데… 혼자만 외롭게 기다리고 있다니….” 이런 사연에 응답하고 꽤 오랜 서신교환 끝에 진짜 만남이 이어져 결혼까지 성사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라디오 방송을 탄다. 섹스 파트너 구하는 데 많이 활용되는 요즘의 인터넷 채팅과 비교할 때 주간지 펜팔 서신 시절이 아무래도 우리들의 ‘순수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세월이 흘러 이제 대중잡지는 꼭 ‘썬데이’라고 발음하는 ‘선데이서울’로 통칭되게 되었다. 실제 발행부수는 주간경향이 더 많았다는데 선정성 경쟁에서 우위를 보였던 선데이서울이 대표성을 갖게 된 것 같다. 무언가를 일컬어 ‘선데이서울 같다’라고 하는 표현은 야하다 통속하고 천하다 싸구려다 등의 함의를 지닌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만 밀어붙이기에는 좀 억울한 기분도 든다. 선데이서울 같은 것을 우리 모두가 실제로는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비키니 차림 여배우의 몸매 치정과 불륜의 사건 사고 스토리는 다들 눈 가리고 실눈으로 관음하는 오락물이다. 몸에 해롭다면서 기를 쓰고 찾아 먹는 불량식품과도 같다. 좋아하지만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규율에 너무 쉽게 승복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당시 경찰들은 길가는 여성들의 치마길이도 단속했는데 소위 단속기준이라는 것이 이렇다. ‘속옷이 비치는 칠칠치 못한 여자’ ‘경찰이 보기 민망스러운 아가씨’. 이게 말이나 되는 기준일까. 선데이서울이 그나마 내외적 검열에서 벗어나 활개칠 수 있는 곳이 터미널이나 역사였다. 해방감을 만끽하는 장소였으니까. 요즘이야 진짜 여행객의 통로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되었지만 과거의 터미널 역사는 그야말로 놀이터였다. 티켓을 미리 예약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짜 시간을 정해 무턱대고 만나 돈을 걷어 표를 사는데 반드시 늦는 인간이 있게 마련이다. 일행이 다 모여서 출발하기까지 장시간이 걸리는 터라 그 와중에 먹고 마시고 기타 치며 노래하고 한구석에서는 쭈그려 앉아 선데이서울을 열독하는 풍경이 그곳의 일상사였다. 놀러가기 위한 터미널 역사와 대중잡지의 만남 그것은 한국 대중사회의 성장을 보여주는 표징과 같다. 군 출신이 통치하고 전통사회 가치관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속에서도 대중의 욕망은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자라났다. 이제는 놀고 싶고 즐기고 싶다는 바람이 ‘선데이’ 류에 투영된 것이리라. 어디까지 노출할 수 있는지 어떤 수준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이른바 수위경쟁의 숨바꼭질과 함께였다. 지금 그때 그 잡지를 찾아 읽으면 유치해 보이겠지만 그 깨소금 맛까지 잊어진 것은 아니다. 주말쯤 옛 동창 몇몇을 고속버스 터미널로 불러내 울긋불긋한 주간지 챙겨들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
    Munhwa         김갑수/시인·문화평론가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