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문득 돌아본 그때 그곳

<33> 영등포 공판장

浮萍草 2013. 11. 28. 13:28
    과일로 계절 구분하던… 장사꾼 냄새·사람 냄새 진동하던 곳
    봄은 어떻게 와서 여름이 되고 여름은 가을로 흘러가 겨울이 되는가?
    내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과일이다. 
    오래도록 나는 영등포 공판장에 들어오는 과일의 변화로 사계절의 변화를 알아채곤 했기 때문이다. 
    딸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 껍질을 까서 내 입에 쏙 넣어준 귤 한 조각 그 노랗고 향긋한 기쁨 한 조각을 우물우물 씹고 있으려니 문득 
    영등포 공판장이 떠올랐다.
    아, 겨울이면 공판장 가득 귤 냄새가 진동했는데….
    한때는 나와 내 이웃의 삶의 중심이었다가 또 한때는 한 정당의 당사였다가 얼마 전부터는 대형마트가 들어설 자리로 탈바꿈하게 된 곳,
    그곳 영등포 공판장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일러스트=이정학 기자 luis80@munhwa.com

    서울 영등포에서 이전한 강서구 외발산동의 농협 강서공판장 전경.영등포에 있었던 농협공판장은 1971년에 용산과 청량리 등의 청과물시장 상인들이 밀려들어
    명물 시장을 형성했고, 30여 년간 서민들의 애환을 보듬어왔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등포 공판장은 조광시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조광시장 사람들은 영등포 공판장을 중심으로 살아갔는데 특히 이들의 생활은 공판장에 들어오는 과일에 따라서 달라졌다. 누구네 할 것 없이 같았다. 딸기가 들어오면 딸기 장사를 해야 하고 복숭아가 들어오면 복숭아 손질을 해야 하고 수박이 들어오면 몇 시간이고 수박을 쌓았다. 그들 대부분이 과일 장사꾼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조광시장 사람들에게 공판장에 무슨 과일이 들어오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남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계절을 나누지만 조광시장 사람들은 아니 영등포 공판장을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과일로 계절을 구분했다. 딸기가 들어와야 봄이고 수박이 들어와야 여름이고 귤이 들어와야 겨울이 시작됐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게 봄을 가져다주는 것은 영등포 공판장에 퍼지는 과일 향이었고 복숭아 향기가 온 사방에 퍼지고 나서야 나의 봄은 시작되었다. 시장에 복숭아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아직 어린 계집아이였던 나는 울긋불긋하다 못해 살갗이 벗겨져 버린 팔뚝이며 종아리를 맨살 그대로 드러내놓고 온종일 영등포 공판장 주변을 뛰어다녔다. 가려워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비비꼬면서도 그렇게 하루 종일 달리고 달리다가 넘어지고 그러다가 무릎에 생채기라도 하나 생겨야 잠시나마 엉덩이를 내려 놓고 앉아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하루 종일 영등포 공판장을 주변을 누비고 돌아다니다 지쳐서 집에 돌아왔다. 나를 본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다. 아버지는 내가 접시를 깨뜨리거나 텔레비전의 작동버튼을 망가뜨리거나 했을 때도 눈 한 번 흘기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왜 그렇게 아빠 말을 듣지 않느냐고 나에게 야단을 치신 것이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노여운 얼굴을 보는 것도 아버지의 성난 음성을 듣는 것도 그리고 다름 아닌 내가 아버지에게 혼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그때까지 나는 아버지에게 한 번도 야단을 맞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세 딸 중 둘째 딸인 나를 그 어떤 자식보다도 사랑해주셨다. 편애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런데 다름 아닌 그런 아버지가 나에게 눈을 부릅뜨고 야단을 치고 계셨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 내가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것이었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버지를 한참 동안이나 노려봤다. 아버지가 미웠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잔뜩 부어오른 나의 팔이며 종아리만 뚫어지게 바라보셨다. 아버지와 딸은 마당 한가운데 서서 눈을 부릅뜨고 서로를 노려봤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아버지는 나를 수돗가로 끌고 갔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흙 묻은 옷을 벗고 세수를 하고 발을 닦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심통이 나 있었고 아버지는 벌겋게 부어오른 나의 팔과 다리를 보며 연신 끌끌, 혀를 찼다.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누웠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저녁밥도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이젠 아빠 얼굴도 쳐다보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그렇게 이불 속에서 계속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콤한 사탕 냄새가 났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고개를 쏙 내밀고 이게 뭐야, 하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한 시간, 두 시간…. 저녁 내내 달콤한 향기가 온 집 안을 흘러 다녔다. 사탕 냄새 같기도 하고 설탕 냄새 같기도 하고 먹어도 먹어도 자꾸 더 먹고 싶어지던 딸기 잼 냄새 같기도 하고…. 아버지가 내가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확 젖혔을 때는 벌써 나는 아버지의 성난 얼굴이라든가 억울하던 마음 같은 것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이게 무슨 냄샌가 하고 연신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이것 좀 먹어 볼기야?” “그게 뭔데?” 여전히 뚱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도 내 손은 벌써 아버지가 내민 수저를 받아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내 앞으로 내민 그릇에는 씨를 바르고 반으로 자른 복숭아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 나는 복숭아와 아버지의 얼굴을 몇 번씩이나 번갈아 바라봤다. “정말 이걸 먹어도 되는 거야?”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나는 망설이며 먹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직접 복숭아 한 조각을 수저로 떠서 내 입에 넣어주셨다. 입 안 가득 복숭아 향기가 들어찼다. 그 향기는 사탕보다도 설탕보다도 딸기 잼보다도 달콤했다. 그날 저녁,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복숭아라는 과일을 먹었다.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 그래서 시장에 복숭아가 들어오는 계절이 되면 늘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났고 가려워서 연신 팔이며 다리를 긁어대면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비비꼬고 다녀야만 했다. 복숭아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는 영등포 공판장 주변의 과일 가게들을 모두 돌고 돌아 가장 맛있는 복숭아를 사오셨다. 그런 뒤에 껍질을 벗겨 잘 씻어낸 다음 물이 가득 든 냄비에 복숭아와 설탕을 넣고 몇 시간 동안 끓여서 맛있는 가정용 복숭아 통조림을 만드셨던 것이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둘째 딸을 위해서. 그 저녁에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복숭아 통조림을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마당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아버지의 등에 얼굴을 비벼대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때 마침 엄마가 나타나 내 머리에 알밤을 한 대 먹였다. “요런 여우가 뭐가 그렇게 예뻐? 아빠는 어젯밤에 가려워서 한숨도 못 주무셨는데 너는 혼자 쿨쿨 잘도 잤지?” 아버지의 팔뚝에는 빨간 두드러기가 깨알같이 돋아나 있었다. 아버지도 나와 똑같이 복숭아 알레르기였던 거다. 그리하여 나의 봄은 지금도 영등포 공판장 가득 퍼지던 복숭아 향기와 아버지의 팔뚝에 울긋불긋 꽃처럼 피어나 있던 빨간 두드러기로 시작된다. 생각해보면, 나의 봄을 온통 복숭아 빛깔로 채워주던 영등포 공판장, 그곳은 비단 나에게만 소중한 곳은 아니었다. 영등포 공판장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과일 도매 중매인들이나 소매 장사꾼들 모두에게 삶의 터전이었다. 새벽 경매가 끝나면 누구네 가게고 상관없이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곳이기도 했다. 누구네 할 것 없이 비좁은 사이로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으면, 바닥엔 벌써 상추며 깻잎이며 쌈장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비오는 날이면 비가 온다고 모여 앉아 잔치를 벌이고, 장사가 안 된 날이면 위로한답시고 둘러앉아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서로의 빈 잔에 그득그득 막걸리를 따라주곤 했다. 최 씨 아줌마는 친정 엄마가 보내온 상추며 깻잎을 내놓고, 양 씨 언니는 김장 김치를 가져오고, 바나나 가게 언니는 식당에서 얻어온 밥을 내놓았다. “나도 오늘은 천막 내렸으니까 자기들도 오늘은 장사 쫑이다. 알았지? 오늘은 내일 해가 뜰 때까지 먹고 마시고 밤새 놀기만 하는 거다. 오늘은 장사하면 배신자야, 배신자! 알았지?” 최 씨 아줌마가 술잔을 높이 들고 외치면, 여기저기서 “아니 그럼 누가 먹다말고 가서 장사를 한대? 그런 인간은 정말 배신자지. 우리 중에는 그런 사람 없네요. 자, 건배다, 건배!”를 외친다. 그러다가도 손님이 나타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달려 나가 과일 장사꾼으로 돌아가는 생활인들이 모여 살던 곳 그곳이 바로 영등포 공판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철두철미한 생활인들만 모여 사는 곳에서도 영등포 공판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사람의 맛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야야! 어제 물건 값이 얼마냐?” 사거리에서 구멍가게 하는 예쁜이 할머니가 전대를 툭툭 두드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면 가게 주인은 오늘은 예쁜이 할머니가 외상값을 주려나 기대하며 장끼(시장에서는 영수증을 흔히들 “장끼”라고 부른다)를 내민다. 그러면 예쁜이 할머니는 가게 주인이 내민 장끼를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고개를 모로 젓는다. “야야! 니는 꼭 나한테만 비싸게 받더라. 천 원씩만 빼라.” 어느새 예쁜이 할머니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좀 있으면 그 목소리에 애교까지 넘쳐흐를 것이다. 예쁜이 할머니는 처음엔 목소리를 높이며 으름장을 놓다가 장끼를 보고 나서야 한풀 꺾이고 그리고 나서 최후에는 애교로 사정을 한다. 그러면 가게 주인은 오늘은 절대로, 절대로, 넘어가지 말자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가도 결국에는 예쁜이 할머니의 애교와 미소에 굴복해버리고 만다. “어제 것하고 오늘 것하고 삼십칠만 원만 받아라. 됐지?” 예쁜이 할머니가 너스레를 떨며 물건 값을 넘기면 가게 주인은 주인대로 이왕지사 깎아주기로 한 거 기분 좋게 넘어가자고 작정을 하고 예쁜이 할머니의 너스레에 농으로 장단을 맞춘다. “삼십칠만 원? 어떡하지? 내가 오늘은 특별히 인심 써서 사십만 원 넘으면 냉커피로 시켜드리려고 했는데 삼만 원 모자라니까 그냥 뜨거운 커피로 마셔야겠는데?” 그러면 또 예쁜이 할머니는 “아이, 야야! 그래도 시원한 걸로 한 잔 사줘라, 잉?”하고 예의 그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그야말로 새색시처럼 아양을 떠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가게 주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웃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정말 예쁜이 할머니한테는 못 당한다니까!”를 연발하며 가게 주인은 커피 장수 아줌마한테 “여기, 냉커피 좀 줘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이 가게 주인의 얼굴에 웃음기가 어려 있는 동안에 여기저기서 얼른 추가로 냉커피를 더 주문한다. 그런 뒤에 냉커피가 배달되어오면 외상값 깎은 구멍가게 할머니와 외상값 깎아준 과일 장사꾼과 덕분에 공짜 냉커피 얻어먹게 된 사람들 모두가 서로 둘러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원한 냉커피로 목을 축인다. 어찌 보면 장사꾼 잡아먹는 장사꾼들 그러니까 “미소”와“웃는 얼굴”로 무장한 장사꾼들 그래서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는 장사꾼들이 모여 살던 곳이 또 영등포 공판장이었다. 지금 영등포 공판장은 사라지고 없다. 문득 못 견디게 그곳이, 그 시절이, 그 시간 속에 함께 머물렀던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워 며칠 전에 찾아갔더니 한창 공사 중이다. 이제 얼마 후엔 대형마트가 들어설 거라는데, 영등포 공판장 자리에 들어설 그 대형마트가 부디 그때 그 시절의 영등포 공판장이 품고 있던 사람의 향기와 온기로 꾸려지기를 희망해본다.
    Munhwa         이명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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