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시풍속 담론

<35> 냉이뿌리 단상

浮萍草 2013. 11. 11. 19:12
    겨울에 봄을 품다
    스님들은 동안거, 운동선수는 동계훈련 봄나물의 뿌리는 인삼에 뒤지지 않아 … 위는 사물을 단단하게 만든다. 여름에 몸을 길게 늘어뜨리던 동물도 겨울이 되면 단단히 웅크려 표면적을 최소화하고 과일도 더운 지역 것은 무르고 푸석푸석한 데 비해 추운 지역은 작고 단단하다. 모두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안으로 모으기 위함이다. 겨울은 응축시키는 계절, 안으로 단단해지는 계절인 것이다. 사람의 몸도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는 데는 예외가 아닌 듯하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키 큰 이는 작은 이만 못하고 우람한 이가 왜소한 이만 못하며, 살찐 이가 마른 사람만 못하다. 또 피부가 흰 것은 검은 것만 못하고 아리따움은 씩씩함만 못하며, 엷은 것이 짙은 것만 못하다. 이는 살찐 이에겐 습한 기운이 많고 마른 이에겐 불기운이 많은데 습한 기운보다 불기운이 생명력을 지핀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흰 사람은 폐의 기운이 약하기 쉽고 검은 사람은 신의 기운이 풍족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설이 의학적으로 얼마나 신뢰성을 지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생활에서 터득한 지혜를 들려주던 옛 어른들의 담론과 맥을 같이한다.‘작고 마르고 검은’ 특성이 상대적으로 건강의 지표가 된다는 것은 곧 응축된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맘때쯤 들길이나 산길을 걷노라면 낙엽 사이로 싹이 올라오는 나물들이 있다. 그 가운데 이파리를 사방으로 편 채 땅에 납작 엎드린 냉이가 유난히 눈을 끈다. 냉이는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씨앗을 떨구어 가을이면 싹이 올라와 겨울을 나는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싹이 나는 양력11월부터 캐먹을 수 있는데 가을철엔 뿌리가 실처럼 가늘다가 날씨가 추워지면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겨울을 나는 동안 굵고 튼튼해진다. 줄기가 짧아 바닥에 바짝 엎드린 듯 해를 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원산지인 유럽에서는 냉이의 어린잎을 샐러드나 향을 내는 허브로 쓸 뿐 뿌리를 먹지 않는다. 이에 비해 우리는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은 봄나물의 뿌리가 인삼에 뒤지지 않음을 일찍이 알아차린 민족이다. 춘궁기에 서민들은 뿌리까지 통째 캐어먹을 수밖에 없었겠으나 반상의 구분 없이 월동(越冬)한 뿌리에 생명력이 충만하다고 여겨 봄철의 뿌리식물은 언제나 귀한 별미였던 것이다. 음(陰) 속에 양(陽)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듯 음기가 천하를 뒤덮은 겨울일수록 과일 속의 씨앗처럼 엄청난 생명력의 양기가 응집되어 있다. 숨겨진 양기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 새로운 봄을 맞겠다는 의지이며 다음 해에 활짝 꽃을 피우겠다는 꿈이기도 하다. 사람 또한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닮았으니 겨울에 봄을 품고, 새해의 꿈을 다져야 하지 않겠는가. 한겨울 내내 스님들은 동안거(冬安居)에 들고, 운동선수들은 동계훈련에 들어간다. 겨울에 제대로 단련하는 것이 여름을 거뜬히 이겨내는 일이요 다가올 한 해에 발휘할 힘을 비축하는 일이다. 꽃이 피어 씨앗을 맺고 싹을 틔워 여린 잎을 피워내는 데 꼬박 한 해가 걸린 냉이…. 그러나 냉이의 잎만 뜯어 먹는다면 겨우내 언 땅에 길고 힘차게 뻗은 뿌리의 존재를 알지 못할 것이며 냉이뿌리의 깊은 맛 또한 느낄 수 없다. 이 겨울을 잘 보내면 나의 뿌리가 튼튼해질 것이고, 알 수 없는 힘이 응축되고 모아질 것이다.
    ☞ 불교신문 Vol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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