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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입동에 생각하는 ‘뇌물’

浮萍草 2013. 11. 4. 18:28
    물질은 올라갈수록 ‘뇌물’이 되고 
    내려가거나 넓게 나눌수록 ‘덕’…
    
    “가을 무 꽁지가 길면 겨울이 춥다”는 속담이 있다. 
    겨울이 유독 추워지는 해엔 무도 겨울을 나려고 뿌리가 깊어진다는 뜻이다. 
    겨울로 들어서는 입동(立冬)은 마지막 수확을 갈무리하고 본격적인 월동준비에 들어가는 시기이다. 
    ‘겨울’의 어원도 집에 들어앉아 지낸다는 겨슬(居室)에서 왔으니 혹한의 시절에 겨울잠과 칩거를 주로 하는 데는 동식물이나 사람이나 매한가지이다.
    그런데 ‘안락한 겨슬’이란 어디까지나 살만한 집에 해당하는 것이고 없는 이들의 겨울은 늘 혹독하게 마련이다. 
    오랜 옛날 로마에선 로물루스력을 사용했는데 이 달력은 11월과 12월 없이 1년을 304일로 삼았다. 
    한 해가 춘분에 시작해 동지 무렵에 끝나는 열 달짜리 달력이었고 나머지 두 달은 ‘겨울나기 기간’이라 불렀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겨울 혹독한 추위를 버텨야 하는 겨울이기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으로 빼놓았던 것이다.
    이렇듯 혹독한 계절이지만 겨울의 우물과 동굴 속이 따뜻하듯 바깥이 추울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우주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맘때부터 우리에겐 이웃을 돌아보며 마음을 나누는 풍습이 성했는데 대표적으로 입동.동지.제석(除夕)의 ‘치계미’라는 미풍양속을 들 수 있다.
    이 풍습은 마을사람들이 추렴하여 노인들께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였다. 
    꿩과 닭과 쌀을 뜻하는 치계미(雉鷄米)는 본래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 명목의 뇌물을 뜻하여 오늘날의 떡값과 의미가 같다. 
    그러니 마을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라는 뜻을 담은 셈이다. 
    옛날의 뇌물 가운데 재미있는 것으로는 포졸들의 짚신 값인 초혜료(草鞋料) 형장을 칠 때 종이 몽둥이로 쳐주는 대가의 지장가(紙杖價) 청렴결백을 기른다는 뜻의   
    양렴미(養廉米)까지 있었다.
    뇌물은 제삼자의 말일 뿐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뇌물이라 할 수 없으니 대신하는 말을 만들게 마련이다. 
    치계미.떡값 등이 물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자그마한 뜻’이라는 촌지(寸志), ‘사람 사는 정’이라는 인정(人情) 등은 마음의 표현에 초점을 맞춘 말들이다. 
    회심곡에 죽어서 저승길에 오른 이가 저승사자의 ‘인정 요구’에 시달리는 대목이 나오듯 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뇌물을 인정이라는 말로 표현한 점이 흥미롭다.
    그런가하면 “진상(進上)은 꼬챙이에 꿰고 인정(人情)은 바리로 싣는다”는 말이 있다.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은 꼬챙이에 꿸 만큼 적지만, 직접 이해관계에 있는 관원에게 주는 뇌물은 바리로 실을 만큼 많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진상’이라는 말의 또 다른 사전적 풀이로 ‘허름하고 나쁜 것’이라는 뜻도 있다. 
    진상품이 하급관원에게 주는 뇌물만 못하다는 데서 정반대의 뜻까지 지니게 되었을 법하다. 
    뇌물의 역사는 동서양의 구분 없이 깊고도 다양하다. ‘
    진상’이 허름한 것이 되고 ‘인정’이 뇌물이 되니 원말의 뜻으로만 보면 혼란스럽다. 
    사또밥상의 찬값뇌물을 겨울철 노인들을 대접하는 풍속이름으로 바꾼 것에도 풍자와 반성 눈가림과 시치미의 다양한 이면이 존재하리라. 
    물질은 올라갈수록 뇌물이 되고, 내려가거나 넓게 나눌수록 덕이 된다. 
    부처님 법을 온전히 따르는 불자라면 물질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내려가는 것임을 이미 아는 이들이다.
    
    ☞ 불교신문 Vol 2958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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