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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상강, 서리에 대한 단상

浮萍草 2013. 10. 21. 21:23
    새 생명 씨앗 영글게 하는 거름
    된서리 한방에 나뭇잎이 누렇게 변하듯 자신에겐 서릿발처럼 엄격하라는 의미도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면 하룻밤 새 들판이 바뀐다.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홀딱 데쳐진 듯 누렇게 바뀐다.” 어느 농사꾼이 쓴 자연달력에서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霜降)을 하룻밤 사이에 들판이 바뀌는 시점이라 노래했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 무렵이면 가을추위가 제법 깊어지고 가을비라도 내리고 난 새벽이면 서릿발같이 날카로운 추위가 훑고 지나가기도 한다. 된서리를 맞다,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진다, 냉정한 기운이 서릿발 같다…. 이처럼 일상에서 ‘서리’는 매서운 기운이요, 모진 재앙을 뜻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가을의 서리를 추상(秋霜)이라 하듯 우리는 왜 한겨울에 몰아치는 눈보라보다 늦가을의 서리를 무서워하는 것일까. 그것은 눈과 서리가 지닌 특성 때문이다. 눈은 차지만 부드럽고 곧 녹아버리는 데 비해 수증기가 얼어붙은 서리나 서리가 엉겨 삐죽삐죽하게 된 서릿발은 차갑고 날카로운 얼음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서릿발은 스승의 엄정한 가르침과 철저한 수행정신을 나타낼 때 곧잘 쓰인다. 행자시절을 돌아보며 쓴 스님들의 글을 보노라면 평소엔 부드럽고 자비롭다가도 공부를 시킬 때면 서릿발 같은 꾸지람으로 철두철미했던 스승에 대한 회상을 곧잘 접하게 된다. “서릿발 같은 출가정신을 칼날같이 세우며 세속의 명리에 초연한 수행의 길에서 옛 부처와 조사 스님이 걸어간 길을 똑같이 걷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는 어느 스님의 말에서 우리는 서릿발처럼 명징한 기개를 느낀다. 그런가하면 ‘대인춘풍 지기추상(對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대함에 있어서는 봄바람 같이 너그럽게 대하고 자신을 지킴에 있어서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라는 뜻이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우리 속인들에게, 가을서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잣대로 삼을 만하다. 가을서리가 모질고 무서운 이유는 또 있다. 조선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사람들이 유독 가을을 슬퍼하는 까닭을 말했다. 사람들이 밤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저녁을 슬퍼하고 겨울은 슬퍼하지 않으면서 가을을 슬퍼함은 이미 칠십 팔십으로 노쇠한 자보다 사십 오십에 머리가 희끗해지고 쇠약해져 감을 느낀 자가 더욱 슬픈 것과 같다는 것이다. 겨울의 한복판에서는 만물의 쇠잔함과 추위가 삶속에 깊이 들어와 있지만 여름열기와 가을풍요를 갓 지나온 늦가을의 서리이기에 삶의 무상함이 더 사무치게 마련 이다. 그는 또 유독 선비가 가을을 슬퍼하는 까닭에 대해서도 가을은 음의 기운이 성하고 양의 기운이 쇠한 때이니, 양의 기운을 타고난 자가 어찌 가을을 슬퍼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봄에는 여자가 그리움이 많고 가을에는 선비가 슬픔이 많다”고 한 속담도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는 듯하다. 서리 내리는 늦가을은 누구든 무상함을 느끼며 조금씩 슬프다. 만물이 생명력을 잃고 소멸해가기 때문이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을 품고 있게 마련이지만 그 소멸 또한 끝이 아니라 새봄에 피어날 생명을 품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러니 상강의 가을을 서릿발처럼 냉철하게 슬퍼한다면 새 생명의 씨앗을 영글게 하는 훌륭한 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불교신문 Vol 2955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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