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시풍속 담론

<33>가을기러기

浮萍草 2013. 11. 4. 11:14
    ‘어리석음 벗어난 선각자’
    전생설화 비유…불상 앞 기러기는 아난존자 창공을 높이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리지 않아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 찬 서리 맞으면서 어디로들 가나요.” 동요처럼 기러기는 차가운 창공을 가르며 높이 나른다. 봄.여름 새들이 창가나 나무사이를 날며 정답게 지저귀는 데 비해 가을 새들은 높이 나를 뿐 좀체 가까이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러기는 무리지어 다니는 철새라서 갯벌이나 호수 습지처럼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군락을 이루어 살기 때문이다. 새들이 흔적을 감춘 차가운 계절이면 찾아드는 기러기이기에 이를 보는 인간의 감회 또한 남달랐던 듯하다. 소동파(蘇東坡)는 눈 위에 찍힌 기러기 발자국을 보며 한 생을 살다 가는 우리인간의 발자취 또한 그와 다를 바 없음을 절감하였다. “우리인생 이르는 곳 어디인가 기러기 눈길 밟음과 같지 않은가 어쩌다 눈 위에 발자국 남기지만 기러기 날아간 뒤 그 행방을 어찌 알리….” 이 시구 가운데 눈 위의 기러기 발자국을 나타내는 설니홍조(雪泥鴻爪)란 말은 무상한 인생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소동파는 예전에 아우 소철과 함께 과거를 보러가다가 어느 절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었다. 도중에 말이 죽어서 나귀를 타고 절까지 고생하며 당도했고 형제는 노승이 거처하는 방에서 밤을 보내며 벽에다 함께 시를 썼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동파가 다시 그 절을 찾았을 때 스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절의 벽은 무너져 자취도 없었던 것이다. 이에 시의 뒷부분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노승은 입적해 탑이 되었고 낡은 벽은 무너져 옛 시가 간데 없네 고생했던 지난날 기억하는가 길은 멀어 사람은 지쳤고 나귀는 절뚝대며 울어댔지.” 그는 담소를 나눈 노승이 그리고 흥취에 겨워 적었던 시가 사라진 것을 보며 한순간 허망했지만 자취가 있다 한들 기러기 발자국과 같은 것임을 노래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서산의 문수사 극락보전에는 독특한 모습의 목기러기가 있다. 불상 앞에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매달아놓았는데 그 기러기는 눈물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구경〉 분노품(忿怒品)에 나오는 전생설화를 담은 것일 가능성이 크다. 옛날에 기러기고기를 좋아하는 왕이 있어 사냥꾼에게 그물로 기러기를 잡아 매일 한 마리씩 밥상에 올리도록 했다. 어느 날 기러기 왕이 500마리의 무리를 거느리고 내려왔다가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이에 무리는 공중을 맴돌며 떠나지 않았고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화살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피를 토하며 밤낮을 슬피 울었다. 사냥꾼은 이를 가상히 여겨 기러기 왕을 풀어주고 왕에게 사연을 이야기하자 그 뒤로 기러기를 잡지 않도록 하였다. 그때 기러기 왕은 부처님이요 500마리의 기러기는 500나한이며, 한 마리의 기러기는 아난이었던 것이다. 이에 불상 앞에서 눈물 흘리는 기러기는 아난존자를 상징하는 것이고 대중들에게 불교의 인연법을 말해주면서 전생에서나 현세에서나 부처님을 섬기는 그의 존재를 부각시켰을 법하다. 이와 관련해 세속품(世俗品)에 등장하는 기러기는 그물에 걸리지 않고 창공을 높이 날며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지혜로운 선각자로 묘사되어 있다. 창공을 높이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먹이를 먹으려면 지상에 내려와야 하기에 밝은 눈을 가져야 하리라. 지상의 그물은 화려하고 달콤하기에….
    ☞ 불교신문 Vol 2957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