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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석과불식’의 계절

浮萍草 2013. 10. 15. 10:48
    앙상한 가지를 직시하라
    마지막 남은 ‘씨과실’은 모든 생명에 있는 ‘불성’ 그것을 싹틔울 때 보물보다 귀한 꽃 피울 수 있어
    력9월은 가을의 마지막 달이다. 단풍이 무르익어 가을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건만 절기상으로는 이미 겨울맞이 채비를 앞둔 셈이다. 9월을 달리 추말(秋末).현월(玄月)이라고도 부른다. ‘추말’은 마지막 가을이라는 뜻이요, '현월'은 만물이 생명을 다하여 그 색깔이 검게 변함을 뜻한다. 우주만물은 한순간도 머묾 없이 시시각각 변하지만 그 변화는 ‘순환’이라는 원리를 동반한다. 우리는 매순간 지난 시간과 단절되는 직선의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크고 작은 무수한 순환의 원을 그리며 나아가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거듭됨, 달과 계절의 순환 생명 있는 존재들의 나고 죽음이 모두 그러하다. 났다가 없어지고 흥했다가 멸하는 모든 현상이 자연스러운 것은 이러한 자연의 이치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9월은 산지박(山地剝) 괘에 해당하여 그림으로 보면 와 같다. 음(陰)이 가득 차올라 하나밖에 남지 않은 꼭대기의 양(陽)이 위태롭게 보인다.
    이 괘는 산이 무너지는 형상이라 64괘 가운데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고 여기에 해당하는 운세도 ‘가면 불리하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한다. 이에 신영복 선생은 산지박의 괘에서 늦가을의 감나무가지 끝에 까치밥으로 남은 한 개의 감을 떠올리고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의 이치를 말 했다. 열매와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삭풍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과실을 먹지 않고 땅에 심어 새봄의 싹으로 돋아나게 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이다. 그는 또 마지막 까치밥에서 최후의 양심 최후의 이상을 보았다. 개인의 경우만이 아니라 한 사회 한 시대의 양심과 이상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는 메시지를 선언한 것이다. 씨과실은 하나의 상징이다.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이며 가장 어려운 상황도 희망의 언어로 읽을 수 있다는 변증법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마지막 남은 씨과실마저 떨어진 앙상한 나목(裸木)에겐 희망의 기회조차 없다는 뜻이 아님은 물론이다. 일상적으로 보는 마지막 까치밥에서 보이지 않는 까치밥의 이치를 알아차리는 그 마음이 바로 가장 소중한 씨과실이기 때문이다.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박(剝) 괘의 형상도 마지막 남은 씨과실도 모든 생명에게 핵처럼 간직된 불성(佛性)을 뜻한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선하고 천진무구한 본성 그것을 싹틔울 때 어떤 값진 보물보다 귀한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마조(馬祖)스님은 깨달음을 찾는 제자에게 “너의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찌 밖에서 찾으려하는가”라고 말했다. 제자가 “제 보물창고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지금 묻고 답하는 그것이 바로 보물창고지.” 일체가 부족함 없이 갖추어져 있으며 아무리 써도 바닥나지 않는 자신의 보배가 있건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에 우리는 중생일 것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잎사귀를 떨고 나목으로 서는 일이며,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했다.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벗으면 앙상한 가지에 마지막 남은 까치밥이 드러나고 그제야 자신의 보물창고를 열어 마음껏 보물을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 불교신문 Vol 2953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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