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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소서(小暑) 단상

浮萍草 2013. 7. 4. 18:22
    “물.불 못가리는 계절 왔다”
    물과 불로써 생명근원 밥 짓듯 상극이 만나 모든 것 성숙시켜 ‘작은 더위’라는 뜻의 소서(小暑) 무렵이면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장마철로 접어든다. 여름은 열기 가득한 불의 계절이기에, 자연은 열기를 식혀줄 비를 내려주고 사람들도 물을 찾아 떠난다. 이렇듯 여름은 물(水)과 불(火)이 함께 성하여 그 이치를 돌아볼 만하다. ‘물불 못 가린다’는 말이 있듯이 물과 불은 서로 정반대의 속성을 지녔다. 물은 낮은 데로, 불은 높은 데로 가는 길이 다를 뿐더러 물의 응집력과 불의 팽창력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목.화.토.금.수의 오행에서도 물과 불은 상생(相生)이 아니라 상극(相剋)이다. 이를테면 불(火)은 나무(木), 흙(土)과 상생의 관계이다. 나무는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불은 흙을 단단히 만들어 그릇을 구워낸다. 이에 비해 물을 끼얹으면 타오르던 불은 꺼져버리고, 불을 지피면 물이 증발해 한 방울도 남지 않으니 서로 상극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생상극은 어디까지나 오행의 속성을 나타낸 것일 뿐, 상생이 상극 되고 상극이 상생 되는 원리 또한 무궁무진하다. 불은 흙을 살린다 하지만(火生土) 화력이 지나치면 흙까지 태워버리고, 화력이 부족하면 흙이 불을 덮어 꺼트리게 되니 말이다. 오히려 극과 극이 통하는 이치가 조화롭다. 소박하게 돌아보자면 펄펄 끓는 열을 식히는 것은 물의 힘이요, 물의 차가움을 따뜻함으로 바꾸는 것은 불의 힘이다. 물과 불로써 생명의 근원인 밥을 짓듯 상극의 두 요소가 만나 모든 것을 성숙시킨다. 정몽주는 ‘석정전다(石鼎煎茶)’라는 시에서 “돌솥에 차가 끓기 시작하고 풍로에는 불꽃이 빨갛구나 물과 불이 천지를 움직이니 이 뜻 무궁현묘하도다” 라고 노래하였다. 그는 차를 끓이며, 돌솥의 물과 풍로의 불이 서로 화합하는 기운에서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하다. <주역>에서는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는 괘를 ‘수화기제(水火旣濟)’라 하면서 완성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물이 위에 있어 그 기운은 아래로 향하고 불이 밑에 있어 그 기운은 위를 향하니, 이를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 한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수화기제는 상괘.하괘의 6개 효가 완벽하게 호응하는 모습으로 된 유일한 괘이다. 그런데 더 의미심장한 것은 ‘완성’의 괘를 마지막이 아닌 63번째에 배치하고, 마지막에는 화수미제(火水未濟)의 괘를 두었다는 점이다. 박문현 교수가 이를 두고 ‘물과 불은 또 다른 만남을 기다리는 것’이라 표현했듯이 완성은 곧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성철스님은 <주역>을 인용하여 “바다 밑에 불꽃이 훨훨 타니 지천태(地天泰)요, 산 정상에 물결이 출렁출렁하니 수화기제(水火旣濟)로다”라는 법어를 내린 바 있다. ‘지천태’란 땅(地)이 위에 있고 하늘(天)이 아래에 있는 형상을 가리켜, 땅이 하늘 되고 하늘이 땅 되듯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이르는 것이다. ‘수화기제’ 또한 물과 불이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서로를 이롭게 함을 말하니 ‘지천태’와 통하는 말이다. 중생의 근기로 볼 때 이러한 원리는 우주자연 속에 있고, 삶을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동력이라 새겨야 할 것이다. 물과 불이 성한 이 계절에 본격적인 물과 불의 만남이 펼쳐질 듯하다.
    ☞ 불교신문 Vol 2925 ☜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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