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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물의 명절, 유두(流頭)

浮萍草 2013. 7. 22. 10:55
    최상의 선<善>, 물을 본받는 날
    유두 물맞이로 재계하고 보살계도량 열어 낮은 곳에서 만물 포용 물…道에 가까워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대인들은 여름이면 계곡과 바다로 물놀이를 떠나지만 우리에게 본격적인 물놀이 명절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다. 음력 6월 보름의 유두(流頭) 날은 찜통더위가 절정에 달하여 음식을 장만해 시원한 계곡을 찾아 물맞이를 하며 즐기는 풍속이 성행하였다. 유두풍습은 더위를 식히는 것만이 아니라 맑은 물에 머리와 몸을 씻고 청결한 몸으로 하루를 노닒으로써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없애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뜻을 지녔다. 특히 유두의 물맞이로는 동류수를 으뜸으로 꼽고 있다. ‘유두’라는 이름도 “동쪽으로 흐르는 물(東流水)에 머리와 몸을 씻는다(頭沐浴)”는 뜻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이처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을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라 하는데〈동의보감〉에도 ‘서출동류수는 곧 약수’라 하였다. 오행으로 볼 때 서쪽은 물(水) 동쪽은 나무(木)에 해당하니 서쪽에서 생긴 물이 동쪽으로 흘러 초목을 자라게 하므로 동류수는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물이라 보았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유두날이면 궁궐에서 보살계도량을 열어 왕이 보살계를 받았다. 보살계는 출가.재가의 구분 없이 불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실천덕목으로 보살자격을 새로 얻을 때 받게 되지만 거듭 보살계를 받기도 한다.
    따라서 고려시대에 국사와 왕사를 비롯한 고승 대덕을 모시고 보살계도량을 열어 역대의 왕이 주기적으로 보살계를 받았던 것은 스스로 불제자임을 다짐하고 널리 선언하는 의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보살계도량을 6월 보름에 열게 된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유두날 머리와 몸을 씻는 풍습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재계(齋戒)의 의식과 통하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부처님을 비롯한 신적 존재들을 맞을 때 관욕으로 씻어주는 의식을 행하듯 유두 물맞이를 올바른 불자로서 살겠다는 다짐의 정화의식으로 받아들였던 셈이다. 이처럼 물의 정화력으로 부정(不淨)하고 삿된 모든 것들을 씻어내는 풍습은 광범위하다. 불교의 관욕, 무속의 씻김의식,기독교의 세례는 물론 삿된 것을 물리칠 때 정화수 그릇을 들고 뿌리는 풍습은 민간에 일반화되어 있다. 조상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현수(玄水) 개인 치성에 떠놓는 정화수도 맑은 영혼으로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필수적인 정성의 제물이다. 그런가하면 노자(老子)는〈도덕경〉에서 최상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며 물이 도(道)에 가장 가깝다고 하였다. 그는 강이나 바다가 이 세상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되는 것은 아래이기를 좋아해서이며 사람도 초목도 태어나서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딱딱하고 강해지니 굳고 강한 것들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들은 삶의 무리라 하였다. 노자의 말은 자연을 본받으며 살 때 참된 생명력으로 진정한 도에 이를 수 있음을 새겨보게 한다. 물은 모든 것에 스며들어 이로움을 주지만 위에 머물지 않고 아래에 처함으로써 만물을 포용하여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 또한 비록 살아있더라도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굳어있다면 곧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보살계도량과 결합한 유두날의 물맞이가 물이 지닌 종교적 의미를 되새기게 하듯 유월보름은 물을 본받고 자연을 본받는 날로 삼을 만하다.
    ☞ 불교신문 Vol 2929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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