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시풍속 담론

<17>음양의 교차점, 하지

浮萍草 2013. 6. 18. 09:19
    차면 기울고, 쇠하면 차오르니…
    인생이라는 바가지에 무엇을 담고 어떻게 비울 것인지는 자신의 몫 군가 굴곡 많은 자신의 삶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한 적이 있다. 올라갔을 때 떨어질 것이 예견되어 있고 바닥을 찍고 나면 올라갈 일만 남은 롤러코스터의 원리는 만물의 이치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위든 아래든 극점에 가까울수록 반대의 기운이 이미 싹트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자연의 순환주기 속에서 대극의 지점에 놓인 하지(夏至)와 동지(冬至)는 이러한 이치를 잘 보여준다. 하지에는 양기가, 동지에는 음기가 최고점을 찍는 동시에 내리막을 걷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동지에서 일양(一陽)이 시작되고 하지에서 일음(一陰)이 시작된다”고 하듯 동지는 음이 가득한 가운데 양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하고 하지는 양이 극에 달한 가운데 음의 기운이 싹트는 절기인 것이다. 24절기 중에서 하지와 동지를 이지(二至)라 하고 춘분과 추분을 이분(二分)이라 한다. 이분이지(二分二至)로 네 절기를 묶는 까닭은 모두 음양이 서로 교차하는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춘분.추분은 밤낮이 같아지는 날이지만 춘분은 양기가 추분은 음기가 우위를 점해가는 시점에 해당한다. 이러한 원리는 북쪽하늘의 북두칠성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동지가 되면 북두칠성은 바가지가 하늘을 향한 모습으로 지평선에 떠오른다. 마치 이 바가지에 다시 생성된 양의 기운을 조금씩 채우며 새로운 생명력의 시간들로 성숙시켜갈 준비를 하는 것처럼. 그러다가 하지가 되면 북두칠성의 바가지는 땅을 향해 뒤집힌 모습으로 변한다. 바가지에 가득 찼던 양기를 모두 쏟아버린 형국으로 바뀌면서 거꾸로 음기가 차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양력으로 6월21일에 든 하지는 양의 기운이 꼭짓점을 찍는 날이다.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어 그야말로 양기충천한 날인 것이다. 그러나 주역의 괘(卦)로 보면 하지에 양이 5개이고 음이 1개이다. 최고점을 찍음과 동시에 양기는 조금씩 하강하고 잠재되어 있던 반대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언젠가는 내려가게 마련이듯이 그리고 절망의 나락에서 한 줄기 빛이 시작되듯이…. 세상의 이치는 차면 기울고, 쇠하면 차오르게 마련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생겨나면서부터 한순간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무상함을 가르치셨다. 채플린은 마치 이러한 가르침을 절감한 듯이“인생이란 가까이서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인간의 비극은 나쁜 운명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떨어져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만물이 매순간 우리에게 이토록 간단한 이치를 가르쳐주고 있건만 우리의 시선은 늘 나의 자리에서 세상을 향할 뿐,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무언가가 가득 담긴 나의 바가지도 서서히 쏟아질 것이고 쏟아진 나의 바가지도 다시 무언가를 담을 수 있도록 하늘을 향해 일어날 것이다. 인생의 굵직한 흐름에서도, 하루하루의 삶에서도…. 그런데 인생의 바가지가 ‘바로서고 뒤집힘’이 우주자연의 운행처럼 순환하는 이치라면 그 바가지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비워버릴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닌가. 바가지에 담긴 것을 약으로도 독으로도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이다. 이러한 작지만 큰 깨우침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무상의 가르침이리라.
    ☞ 불교신문 Vol 2921 ☜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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