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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단오와 불교

浮萍草 2013. 6. 11. 09:41
    범일국사 ‘성황신’ 되다
    법성포선 연등축제, 경산에선 원효성사 다례… 다양한 민속놀이로 주민-스님 축제일로 삼아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선물은 책력’이라는 말이 있듯 본격적으로 부채가 등장하는 시절에 들어섰다. 음력 5월5일 단오는 여름기운이 왕성한 데다 양수 5가 겹쳐 연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특히 이날 오시(午時: 11~13시)에 부정을 물리치는 쑥.익모초를 뜯어 대문에 걸어두거나 떡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생기 충만한 단옷날, 하루 중 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오시에 뜯은 쑥과 익모초이니 능히 잡귀와 더위를 쫓을 만하다. 이러한 특성을 취해 단오를 연중 으뜸가는 날이라는 뜻에서 ‘수릿날’이라고도 부른다. 몸의 제일 윗부분인 머리 위를 ‘정수리’라 하듯이 ‘수리’란 ‘높다 귀하다, 신령스럽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단오는 설.한식.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꼽혔으며 단옷날이 되면 천지신명과 조상에 제사를 지내왔다는 기록이 삼국시대부터 등장한다. 그런데 절기상으로 불교와 무관해 보이는 단오가 우리나라에선 불교와 인연이 깊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전승된 역사 깊은 마을축제로 단오제에서 주신으로 모시는 대관령 국사 성황신이 바로 신라 말의 선승 범일국사(梵日國師)이다. 백제불교 도래지 영광 법성포 단오제는‘연등축제’ ‘무속수륙재’를 열고 있는가 하면 경산 자인면의 단오제에서도 원효스님 탄생지를 기념해 ‘원효성사 탄생다례제’를 봉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모두 불교권에서 주체로 나선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스스로 불교를 적극 수용한 경우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는 단오를 주민과 스님들이 다양한 민속놀이를 하며 하나 되는 공동체의 축제일로 삼고 있다. 중생의 삶 속에서 역사성.민중성.역동성을 지닌 채 전승되어온 우리불교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매년 단옷날이면 주민들이 큰절로 올라가 단오체육대회를 열어온 지 40년을 훌쩍 넘긴 사하촌이 있다. 승속이 팀을 짜서 윷놀이.씨름.탁구.축구 등으로 경기를 벌이는데 많을 때는 20개 팀을 웃돌았다. 절에서는 스님들이 강원과 선원으로 나누어 팀을 짜고 사찰 종무소를 비롯해 마을의 파출소.방범대.소방대와 신도단체에 이르기까지 팀이 꾸려진다. 경기를 하지 않는 이들도 구경거리를 놓친 수 없어 절로 올라갔기에 이 날은 마을이 텅 비었고 절 마당이 떠들썩하도록 승속이 하나 된 축제를 펼쳐온 것이다. 조선중기에 강릉단오제를 본 허균은 “대관령에서 산신을 모시고 내려오는 단오제 일행을 만났다. 대관령 신이 영험하여 해마다 5월이면 사람들이 대관령에 올라가서 신을 맞아 즐겁게 해준다”고 기록하였다. 범일국사가 국사성황신으로 좌정하게 된 것은 신라왕실이 신앙한 교종과 대립되는 위치에서 지방 호족세력을 도와 영동지역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고 고려 건국에 도움을 준 인물로 평가된 데서 비롯되었던 듯하다. 강릉 학산리의 한 처녀가 바가지로 우물물을 떠 마실 때 물속에 해가 떠 있었고 후에 태기가 있어 낳은 아기가 범일국사라 한다. 또 강릉에 왜구가 쳐들어오자 스님이 대관령 정상에 올라 도술을 부려 산천초목이 모두 군인으로 변해 왜구를 물리쳤다고 한다. 단옷날을 둘러싼 불교와 민간의 만남은 이렇듯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다양한 스토리텔링으로 전승될 것이다.
    불교신문 Vol 2013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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