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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육조의 돈오,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浮萍草 2013. 6. 15. 00:00
    최후의 가르침, ‘중도’를 행하라
    육조대사가 열반한 국은사 편액.
    ‘단경’에는 육조께서 제자들에게 최후의 가르침을 전한 대목이 있다. “나오고 들어감에 양변을 여의도록 하여라.” 여기서 나오고 들어가는 것은 우리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육조는 생각할 때마다 양변(兩邊)을 여의라 한다. 양변이란 선-악, 나-너 진보-보수 등 대립하는 양쪽을 말하는데 어느 쪽을 집착하면 편견에 빠진다. 이것을 분별망상이라 한다. 이 양변에 대한 집착을 떠나 다 아우르는 것이 중도다. 결국, 육조 혜능도 중도를 말한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부처님이나 용수, 달마를 비롯 육조까지 역대 조사 선지식은 모두 중도(中道)를 종지(宗旨)로 했다. 이것은 이후 마조나 임제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 선사 그리고 우리나라 도의국사 간화선으로 깨치고 인가 받은 태고보우국사 모두가 한결같이 이 중도를 근본으로 했다. <선의 황금시대>나 일본 중국의 여러 불교학자들이 간혹 선(禪)을“중국화된 불교”“노장사상과 결합된 불교”라 정의한다. 그러나 선종이야말로 불교의 핵심인 중도연기, 무아.공을 가장 간명하고 정확하게 전승하는 입장이다. 또한 선종은 노장, 유교 사상과는 전혀 다른 중도연기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ㆍ육조 조계혜능대사의 열반
    조계 남화선사 육조 진신상.

    서기 712년, 혜능 대사는 75세로 육신의 한계를 느꼈다. 제자들에게 고향집인 국은사에 탑을 세우게 했다. 이것이 국은사 보은(報恩)탑이다. 불조와 부모, 그리고 나라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이다. 탑이 완공되자 조사는 40여 년 동안 주석했던 조계를 떠나 고향으로 갔다. 조계의 대중은 슬피 울며 좀 더 머무시길 청했으나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도 열반을 나타내기 위함이니 온 것은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나의 이 몸도 반드시 가야 한다.” “법은 누구에게 전하십니까?” “도 있는 이가 얻고, 무심한 이가 얻느니라.” 이 말씀을 마치고 국은사로 가서 목욕한 뒤 앉은 그대로 열반에 드니 이상한 향기가 가득하고 무지개가 떴다. 713년 8월 3일이니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이다. 대사의 나이 76세였다. 영남에서 살아있는 부처로 존경 받던 대사가 가니 오랫동안 머물렀던 소주의 지사가 조계로 모셔가고자 했다. 이에 신주 지사가 반대해 다투게 됐다. 서로 타협하기를 향을 피워 연기가 가는 고을로 모시기로 하니 향은 높이 올라 마침내 소주 조계로 향했다. 그리하여 대사의 육신은 조계 보림사(지금의 남화선사)로 모시고 탑을 쌓고 그 안에 아교와 옻을 칠하여 등신불로 만들어 모셔 놓았다. ㆍ우리나라 쌍계사 금당의 육조정상탑
    육조 정상을 모신 지리산 쌍계사 금당.

    쌍계사 금당 편액 추사의 글씨다.

    10년이 지나 어느 날 야심한 밤에 보림사 육조탑 안에 이상한 소리가 나 대중들이 가보니 웬 사람이 도망쳤고 대사의 목에 상처가 있었다. 이 사실을 고을에 알려 5일 만에 범인을 잡아 문초하니 홍주(지금의 남창) 개원사에서 신라 김대비스님이 돈 2000냥을 주고 육조의 머리를 가져오면 해동으로 가져가 공양하겠다 해서 범행했다고 실토했다. 소주 지사는 보림사로 찾아와 범인의 처리를 물었다. 그러자 주지 영도스님은“국법으로 한다면 의당 죽여야 하지만 불교의 자비로는 원수와 친한 이가 평등합니다. 하물며 공양하려던 것이니 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지사는 탄복하고 “불법의 광대한 자비를 비로소 알았다”며 놓아 주었다. 이 사실은 <경덕전등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리산 쌍계사에 따르면 김대비스님의 이 거사는 성공하여 육조의 정상(頂相)은 쌍계사 금당에 모셔져 매년 다례를 모시고 있다. 어찌 보면 엽기적이라 할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지금도 중국 광동성 조계 남화선사의 조전에는 육조대사의 열반상이 그대로 모셔져 있으니 중국에선 실패한 것이 확실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육조의 명성을 듣고 비록 열반했지만 정상을 모시려 한 그 뜻은 법을 위한 것이니 법은 도의국사를 필두로 차례로 전해져 해동에 널리 퍼졌으니 이 또한 성공이 아니겠는가? ㆍ제자들 ‘선의 황금시대’를 열다

    육조가 열반에 든 이후 수많은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전법행을 하였다. <전등록>에는 육조의 전법 제자가 33인이라 한다. ‘단경’을 기록한 법해 청원행사, 남악회양, 영가현각, 하택신회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남악회양이 마조도일 청원행사가 석두희천이라는 제자를 만나 인가하고 돈오법을 전한 것이다. 마조(709~788)는 강서성 홍주(지금의 남창)에서 석두(700~790)는 호남성에서 각각 본격적인 전법교화를 펼쳤다. 강서와 호남은 흔히 ‘강호(江湖)’로 불리는 천하의 중심을 말한다. 양자강 이남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로 물산이 풍부하고 인구가 많은 곳이다. 육조의 손자대인 마조와 석두대에 이르면, 선은 더 대중화되어 ‘마음이 부처다’ ‘평상심이 도’와 같이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특히 마조대사는 서당지장 백장회해 남전보원, 대주혜해, 방거사 등 88인의 기라성 같은 전법제자를 두었다. 이 마조 문하에서 신라 9산선문 중 7산선문이 세워졌으니 그 영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에 조계 돈오선을 최초로 전하여 지금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宗祖)로 추앙된 도의(道義)스님은 선을 만나 깨달아 마조의 상수제자인 서당대사에게 인가를 받았다. 그 뒤 조계 보림사까지 가서 조사전의 육조를 참배하고 귀국하여 가지산문을 열었다. 마조의 제자 중 백장(749~814)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一日不食)”와 같은 선종 총림의 청규를 제정하여 시행했는데 이것은 대중의 생활 속에 선이 스며들어 새로운 문화를 창달해 나갔다. 이 무렵 당나라 무종이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한 폐불사태(842~845)를 일으켰다. 전국 4만여 사찰을 폐사하고 모든 경전을 불살랐다. 그런데 이 극악한 억불정책으로 화엄과 천태 등 교종은 거의 단절됐으나 주로 산중에서 ‘불립문자 이심전심’의 특성과 백장청규 정신으로 별 타격을 입지 않아 이후 불교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런 흐름이 중국에선 임제종.위앙종.운문종.조동종.법안종 등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는 선종의 융성기를 열었고 한국에는 구산선문과 조계종 일본과 베트남에는 임제종과 조동종 등 조사선이 전파됐다. 이것은 모두 조계 혜능으로부터 기원된 것이다. 특히, 7세기에서 14세기 동아시아는 중국의 당.송.원 나라 시대이고 한반도는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로서 세계 인류 문명을 선도한 시기이다. 이때를 “선(禪))의 황금시대”라 하는데 중국 공산당 지도자 조박초는“한중일의 황금유대시대”라 불렀다. 현대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도 불교와 선(禪)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ㆍ21세기 대안 사상, 선(禪)
    지난 1월 조계 남화선사를 참배한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불교포럼 순례단.

    21세기에 인류는 다시 동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20세기에 급속한 산업화 근대화를 추진한 일본과 한국, 그리고 뒤늦게 문호개방을 통해 경제제도에서 자본주의를 도입한 중국의 급격한 성장은 동아시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17세기 개신교의 청교도 정신에서 발흥한 자본주의 산업화의 물결은 지금에 와서 잦은 전쟁과 금융위기와 환경위기로 그 한계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미국 등 서양에서도 대안 사상과 문화로 불교와 선(명상)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제 서양 엘리트들이 참선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선이 의학과 뇌과학과 접목하여 치유와 심리상담에 활용되는 것은 보편화됐다. 구글과 같은 세계 최고 기업에서도 명상이 도입되고 우리나라 삼성그룹도 지난 해 명상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전 임직원들을 교육하고 금년에는 삼성 명상센터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힐리언스센터와 같은 명상센터가 여기저기 건립되고 수많은 명상프로그램과 지도자들이 힐링붐을 타고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선을 중심으로 통불교 흐름을 이어온 우리 대한불교조계종은 한국사회와 인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육조 혜능 조사의 열반 1300주기를 맞아 그 길을 다시 생각해 본다.
    불교신문 Vol 2918         박희승 조계종 총무원 문화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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