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육조의 생애와 사상

7 육조단경’, 천하에 돈오를 알리다

浮萍草 2013. 5. 11. 07:00
    깨달은 육조에게도 허물이 있는가?
      
    ▲ (左) 조계 남화선사에 조성된 육조단경 석경   ▲ (中) 육조대사상.   ▲ (右) 육조 혜능대사가 <육조단경>을 설한 소관시 대감사
    입구.
    ㆍ‘육조단경’이란 무엇인가?
    조는 조계 남화선사(당시 보림사)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주 자사(刺史,지금의 도지사) 위거(偉)와 여러 관리들이 찾아 와서 법문을 초청한다. 지방 수령과 관리들이 직접 찾아와 초청하였다는 것은 당시 영남 소주지방에 육조의 위상이 상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육조가 이에 응하여 소주 대범사(지금의 대감사)로 가서 법을 설한다. 이 법문을 기록한 것이 바로 저 유명한 <육조단경>이다. ‘단경’은 인도의 제28대 조사 달마 이래 동쪽에서 최초로 정립된 조사어록이다. 육조 이전의 달마와 승찬, 홍인 대사의 어록이 회자되지만, 기록이 명확치 않고 선의 종지인 돈오와도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이 단경은 20세기 초, “돈황본”이 발견되어 기록과 사상이 분명해졌다. “자사는 문인 법해(法海)로 하여금 육조의 설법을 기록케 하였으며,후대에 널리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이 종지(宗旨)를 이어 받아 서로서로 전수케” 했다. 이로써 단경은 후대에 도를 배우는 이를 위해 소주 지사와 육조의 제자 법해스님이 기록한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이 단경도 “돈황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한국, 중국, 일본에 여러 본이 전해왔고, 그 내용도 상당히 첨삭되어 조사선의 종지 (돈오)에 벗어난 내용이 적지 않았다. 단경 중 가장 고본인“돈황본”은 글자가 1만2000자에 불과한데 후대 본은 2만4000자로 내용이 배나 추가되어 사상에 혼돈이 있었다. 그러나,“돈황본”이 발견되어 육조 돈오사상의 원형을 알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 “돈황본”을 최초로 번역한 분은 다름 아닌 성철스님이다. 참선하는 수좌들에게“책 보지 말고 화두하라” 했지만 단경만은“선종의 성전(聖典)”이라며“돈황본”을 구하여 직접 여러 판본과 대조 하여 오탈자를 바로 잡고 손수 번역하여 책으로 만들어 냈다. 종단 원로 고우스님에 따르면, 1988년 해인총림에서 선화자법회를 준비할 때 “수좌들이 어떤 선어록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물으니, 성철스님은 “수좌들이 사상 정립을 하고 참선해야 한다, 육조단경이 좋다”고 했다 한다. 육조단경은 부처님 제자의 법문집으로는 유일하게 “경(經)”자를 붙인다. 또, 현대 중국에선 <논어> <맹자> <노자> <장자>와 더불어 중국인 5대 명저에 꼽힌다. 동아시아 불교권에선 이 육조단경을 모르면 불교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육조단경에는 선종을 정립한 육조 조계혜능의 핵심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육조단경은 선종 최고의 성전이다. 육조단경할 때 ‘육조’는 조계혜능대사를 말하며 ‘단경’은 단(壇)을 높이 쌓은 곳에서 법을 설한 것을 말한다. 당시 육조대사는 수계식을 거행하면서 법문했는데, 그때 계단(階段)을 쌓고 그 위에서 했다. 그래서 육조단경이라 한다. 이 법회에는 놀랍게도 1만 명이 참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ㆍ정혜(定慧), 불교의 근본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혜(定慧)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다” 육조는 법문에서 ‘정혜(定慧)’를 근본이라 한다. 육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부처님도 역대 모든 조사 선지식들이 한결같이 이 정혜를 불교의 근본으로 삼았다. 정혜란 우리 마음을 말한다. 우리 마음에 번뇌망상이 없으면 정(定)이고, 그 정에서 바른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혜(慧)다. 중생의 마음은 옳고-그름, 선-악, 나-너 등의 분별망상에 덮혀 있지만 부처의 마음에는 번뇌망상이 모두 사라져 지혜만 난다. 중생도 번뇌망상을 비운 자리에서 바른 마음을 쓰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를 정혜라 한다. 싯타르타 태자가 중도를 깨달아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었는데,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의 다른 표현이 정혜다. 정혜는 번뇌망상이 완전히 꺼진 자리에서 영원히 지혜만 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초기불교(남방불교)에서는 사마타-위빠사나 또는 무아(無我)라 하고, 대승불교에서는 공(空)이라 한다. 선종에서는 살활(殺活),진공묘유(眞空妙有),천태사상은 쌍차쌍조(雙遮雙照),지관(止觀),화엄사상은 이사무애(理事無碍)라 표현 한다. 그 표현만 다르지 근본은 하나, 정혜다. 중도(中道)다. 간화선도 정혜를 근본으로 한다. 화두를 순일하게 들면 우리 마음이 성성적적(惺惺寂寂) 삼매가 된다. 화두 의심이 또렷또렷하면 번뇌망상이 사라진다. 화두에 또렷또렷한 의식이 성성(惺惺)이고, 번뇌망상이 없는 상태가 적적(寂寂)이다. 이 성성적적이 바로 정혜와 같은 자리다. 육조대사는 정혜가 불교의 근본이라 하면서 정과 혜가 다르다고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육조 당시에도 ‘좌선해서 선정을 익혀야 지혜가 생긴다’ 하는 주장이 많았다. 지금도 선정에 들어야 깨달을 수 있다고 정을 강조하는 남방계통의 서적이 홍수다. 그러나, 육조가 경계하듯이 이런 견해는 잘못된 공부다. “곧 정은 혜의 몸(體)요,혜는 정의 용(用)이니,곧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곧 정으로 존재할 때 혜가 정에 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에 두 모양이 있는 것이다.” 법이 두 모양이 되면 법이 둘이라는 말이니, 다툼이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생과 부처가 다르다고 보면, 부처와 중생은 양변이 되어 갈등이 생긴다. 번뇌와 지혜도 그렇고, 선과 교도 그렇다. 선과 교가 다르다면 법이 둘이라는 말이 된다. 법은 하나(不二)다. ㆍ일행삼매 = 평상심
    경내 보리수(왼쪽 위)는 기념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좋다.

    정혜로 생활하는 사람은 일행삼매로 사는 사람이다. 일행삼매(一行三昧)는 일상생활에서 항상 곧은 마음(直心)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세수하고 밥 먹고 일하고 행동할 때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곧은 마음으로 행하면 일행삼매가 된다. 가령,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마주할 때 내 견해에만 집착하지 않고 나만큼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해 나간다면 일행삼매를 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정혜로 말하면, 일상 생활할 때 분별심을 떠나 바른 마음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일행삼매와 정혜도 둘이 아니다. 이것을 후일 마조(馬祖, 709~788)대사는 평상심(平常心)이라 표현한다. 평상심이란 평상시 마음이 아니라 번뇌망상 즉, 분별심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 ㆍ육조 법문의 특색, 중생이 부처다
    혜능대사는 이 단경에서 법문 듣는 중생을 ‘선지식(善知識)’이라 불렀다. 선지식은 바른 스승을 말하는데, 깨달은 육조가 법문 듣는 중생을 선지식이라 한 것은 얼핏 모순이다. 그러나, 여기에 선(禪)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선에서는 깨달은 분만 부처라 하지 않고 일체 중생을 본래 부처라 한다. 선에선 부처와 중생, 번뇌와 깨달음을 하나로 본다. 그래서 육조대사는 청중을 보고 “선지식들아!”한 것이다. 우리 종단에서도 법회 때 법사들이 청중을 ‘선지식’으로 보고 법을 설하는 전통을 살려 나간다면 이 시대에 매우 의미 있는 불교의 특 색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에 관하여 육조단경 ‘참청’편에 매우 심오한 뜻이 담긴 대목이 있다. 신회가 육조에게 묻는다.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한다. 내가 본다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보지 않는 것은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육조가 “나의 허물을 본다” 할 때 육조의 허물은 무엇일까? 도인이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깨달은 육조대사에게도 허물이 있는가?
    육조단경 성지 대감사에서 좌담회하는 불교포럼 순례단

    지난 1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모시고 육조성지를 순례할 때 버스 안에서 불교포럼 임원진에게 이것을 퀴즈로 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 정확한 답이 나왔다. 과연 육조대사의 허물은 무엇일까?
    불교신문 Vol 2910         박희승 조계종 총무원 문화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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