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육조의 생애와 사상

9 ‘돈오, 본래부처’

浮萍草 2013. 6. 8. 10:49
    돈오를 아는 ‘갑<甲>’은
    ‘을<乙>’을 차별하지 않고 
    ‘을’이 되어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다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이해하고 확신하는 삶을 살게 되면 일상생활의 웬만한 역ㆍ순경계에서 자유로워진다.이것이 돈오선의 진정한 의미다.사진은 육조가
    40여년 간 주석한 조계 남화선사의 일주문.
    ㆍ남능북수(南能北秀) ‘단경’에 “남능북수(南能北秀)”란 말이 있다. 당나라 당시 고승인 남쪽 혜능과 북쪽 신수 대사를 부른 말이다. 신수는 주로 낙양과 장안(서안)에 주석하며 3대 황제의 국사(國師)로 부귀영화를 누렸음에 비하여 혜능은 오랑캐 땅 영남의 산에 주석했다. 그러나 신수대사는 혜능대사를 육조로 인정하여 높이 보고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측천과 중종 황제가 황궁으로 초청하여 법문을 부탁하면,신수는 매번 사양하고“남방에 오조의 종지를 이은 육조 혜능대사가 있으니 청하여 법문을 들어라”고 권했다. 나이도 서른 살이나 어리고 영남의 나뭇꾼 출신인 행자로 깨닫고 인가 받아 도망간 혜능을 비방치 않고 황제에게 천거했으니 신수 또한 대단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신수대사는 자성(自性)을 보지 못했다. “중생이 번뇌를 부지런히 털고 닦는 좌선을 해서 깨달아야 부처가 된다”고 가르쳤다. 반면에 육조는 “중생이 본래 부처다. 중생과 부처가 하나다.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니, 털고 닦을 번뇌가 따로 없다. 누구나 자성만 보면 바로 부처가 된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 불렀다. ㆍ육조의 돈오
    육조대사는 ‘단경’에서 돈오를 이렇게 말한다. “중생과 부처의 자성(自性)은 하나다. 자성은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다. 생각생각 마다 지혜로 관조하여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났는데 무엇을 세우겠는가. 자성을 단박 닦으라.” 육조는 자기 마음(自性)을 단박에 보라 한다. 번뇌망상은 모두 착각이고 허깨비다. 번뇌가 실체가 없고 연기 현상임을 알면 지혜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단박에 보아 견성(頓悟見性)하여 부처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먹구름이 걷히면 해가 나오듯이(雲開日出). 육조는 “깨달음 그 자리에는 부처도 중생도 없으니 빠름도 느림도 없다.” 다만 법은 하나이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기 때문에 돈.점이라 한다. 견해가 더딘 즉 ‘점(漸)’이요 견해가 빠른 즉 ‘돈(頓)’이다.” ‘단경’ 의 이 대목을 보고 ‘그럼 돈.점이 있는 게 아니냐?’고 하는 분들이 많다. 분명히 “법은 하나”라고 했으니 법에 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의 견해가 빠르고 느릴 뿐이다. “가르침에는 돈과 점이 없으나(法無頓漸), 미혹함과 깨침에 더디고 빠름이 있나니 만약 돈교의 법을 배우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하지 않다.”
    조계 남화선사 일주문에 걸려 있는 ‘조계’ 편액.
    ㆍ수행, 닦음 없는 닦음(頓修)
    육조는 말한다.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세속에서도 가능하다. 절에 있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 있으면서 닦지 않으면 서쪽 나라 사람의 마음이 악함과 같고 세속에 있으면서 수행하면 동쪽 나라 사람이 착함을 닦는 것과 같다. 오직 바라건대, 자기 스스로 깨끗함을 닦으라. 그 러면 이것이 곧 서쪽 나라다.” 육조가 말하는 수행은 절이나 출가, 좌선과 같은 형식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그 마음에 주목한다. 여기서 수행 특히, 단박 닦음인 돈수(頓修)에 대하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흔히 돈오한 육조 혜능도 출가하여 ‘8개월 동안 방앗간에서 수행하였으니 단박 닦음(頓修)이란 잘못된 것 아니냐’ 한다. 선문(禪門)에선 중생이 본래 부처라 보기 때문에 중생이 닦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부처가 부처되는 것이니 닦음이란 수행의 방편으로 본래 부처가 중생이라는 착각에서 착각을 벗어나는 과정이다. 이것을 ‘닦되 닦음이 없다’라고 표현한다. 분별망상을 완전히 여의는 그 순간이 돈오고 돈수 즉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 것이다. 그때부터 분별망상이 사라지고 정혜, ‘없는생각(無念)’, 중도삼매로 살게 되고, 이것이 곧 부처님 행이다. ㆍ돈오의 가치
    조계 남화선사 촨정 방장으로부터 <육조단경>을 선물 받는 총무원장 자승스님.

    그럼, 육조의 돈오선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것을 이해하고 확신하는 삶을 살게 되면 일상생활의 웬만한 역.순경계에서 자유로워진다. 선-악, 내편-네편, 진보-보수 등의 양변을 떠나되 양변을 다 아우르는 지혜를 밝힐 수가 있다. 돈오의 가치는 철저한 동체대비심으로 어떤 차별도 없다. 갑을 관계를 예로 든다면, 돈오를 아는 갑은 을을 차별하지 않고 을이 되어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다. 양나라 황제를 만난 달마대사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본분사에서 법을 설했다. 혜능은 오랑캐 땅 영남 지방에서 서민들과 평생 더불어 살았고 자기 본분은 산중에서 법을 전하는 것이라며 황제의 거듭된 입궐 요청도 거절했다. 오조 홍인대사도 당 태종의 입궐하지 않는다면 목을 가져오라는 명에도 태연하게 목을 내놓았다. 반면에 점오의 신수는 낙양과 장안의 황실과 귀족들의 존경과 예우를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후세에 신수를 따르는 이는 거의 없어지고 모두가 혜능의 법을 따르게 된다. 20세기 후반 육조의 돈오사상을 복원시킨 성철 방장도 1978년에 해인사를 방문한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 돈오는 황제나 대통령 등 어떤 세속적 권력과 삿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수행자의 본분을 견지하게 한다. 이러한 가치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우리가 본래 부처라는 입장에서 보면 마음에 분별망상은 번뇌고 착각이다. 모두가 부처이니 황제와 대통령이 무지랭이 나뭇꾼이나 청소부 실직자와 평등하고 차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까닭에 돈오는 어떤 걸림이나 집착을 떠나 오로지 부처의 지혜와 자비를 행하는 것이다. 본래 부처가 망념에 집착하여 착각한 것에서 착각을 단박에 깨달아 부처로 사는 것이 돈오돈수적 삶이다. ㆍ공덕(功德)
    육조대사가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끝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三業)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법석에서 위사군이 물었다. “달마대사께서 ‘양무제의 불사 시주 공덕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알려주십시오.” 육조가 답했다. “절 짓고 보시하며 공양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 하지 말라.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고 복밭(福田)에 있지 않다. 자기의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이 곧 공(功)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德)이다. 안으로 불성(佛性)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 만약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다.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공덕이 곧 가볍지 않다. 그러므로 항상 공경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이다. 공덕은 자기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만약 양무제가 백성들의 고혈로 불사하지 않고 어렵고 힘든 백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정치했다면 그 공덕으로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양무제가 이해한 불교는 끊임없는 불사를 통해 복을 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백성들을 괴롭히면서 자신의 복을 짓고자 했다. 양무제는 법을 몰라 지혜롭지 못했다. ㆍ‘단경’ 법문을 마치고 조계로 돌아가다
    지리산 쌍계사 금당(육조정상을 모신 곳)의 돈오문.

    육조는 법문을 마치고 이렇게 말한다. “여러 사람들은 그만 흩어져라. 혜능은 조계산으로 돌아가리라. 만약 대중 가운데 큰 의심이 있거든 저 산으로 오너라. 너희를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같이 불성(佛性)을 보게 하리라.” 함께 있던 관료와 사부대중이 예배하며 찬탄하고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큰 깨침이시여! 옛적에는 미처 듣지 못한 말씀이로다. 영남에 복이 있어 산부처가 여기 계심을 누가 능히 알았으리오.” 하고 흩어졌다. 육조가 조계산으로 가 교화하기를 사십여 년이었다. 만약 문인(門人)으로 말한다면 스님과 속인이 3만5000명이라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만약 종지(宗旨)를 말한다면‘단경’을 전수하여 이에 의지하여 믿음을 삼게 했다.
    불교신문 Vol 2916         박희승 조계종 총무원 문화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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