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관음성지를 찾아서

32 강남 봉은사

浮萍草 2013. 10. 2. 00:00
    뚝섬 나룻배 노 저어 닿은 봉은사…
    관세음보살 부르는 그 마음 오롯이  
    종루 아래 작은 연못 중앙에 모셔진 관세음보살. 봉은사를 찾는 신도들이 처음과 마지막에 들러 인사를 올린다
    봉은사 대웅전.
    G20이 열린 코엑스와 거대한 빌딩들이 도심 곳곳에 즐비하게 서 있는 서울 강남의 한복판 삼성동. 그 중심에 천년고찰 봉은사가 자리잡고 있다. 50년 전만 해도 달랐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했으니 두말이 필요없다. 1960년대 초 뚝섬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 2km 쯤 한가로이 걸어 이르던 곳이 봉은사였다. 당시 뚝섬유원지와 봉은사는 유명한 나들이 코스였다. 많은 사람들 기억 속에 ‘뚝섬 봉은사’라는 이름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유다. 신라시대 창건된 봉은사는 법등을 이어 오다가 불교가 어려움에 처했던 조선시대 중.후기 선종 불교의 으뜸 사찰로 도약한다.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와 허응당 보우스님이 불교부흥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억불정책으로 폐지됐던 선교양종을 부활하고 선종의 수사찰로 봉은사를,교종의 수사찰로 봉선사를 삼아 불교를 중흥하고자 했다. 특히 봉은사는 스님의 과거시험인 승과를 실시한 도량으로 불교 부흥의 중심지였다. 지난 7일 오전 봉은사를 찾았다. 평일 추운 날씨지만 법복을 입은 신도들 외국인 관광객까지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진리를 찾아 처음 들어서는 진여문(眞如門)을 먼저 지난다. 수도산(修道山) 수선종(首禪宗) 봉은사(奉恩寺) 현판이 걸려 있다. 문 양쪽에 1989년 법왕루를 지으면서 철거된 천왕문에 모셔져 있던 사천왕상이 봉안돼 있다.
    23m의 미륵대불이 사바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71세에 쓴 봉은 편전
    편액.대웅전 편액도 추사가 썼다.
    진여문을 지나 법왕루까지 약간의 오르막길 왼편에 새롭게 조성된 개울이 있고 우측에 부도와 탑비 공덕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부도들 중간에 보우스님의 부도와 비 예정지 푯말이 있다. 불교중흥을 위해 노력했던 보우스님은 문정왕후가 저세상으로 떠나자 제주도로 유배 가서 결국 최후를 맞았다. 보우스님의 부도탑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법왕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향한다. 대웅전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판전(板殿)의 편액 또한 추사의 글씨인데 대웅전의 글씨는 세밀하게 삐친 부분을 다시 칠하면서 지워 버린탓에 판전의 글씨에서처럼 본래의 필력을 완전하게 찾아볼 수 없게 된 점이 아쉽다. 대웅전 좌우로 심검당과 선불당이 있고 선불당 뒤로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우측 계단을 올라 영산전으로 향한다. 대웅전 뒤편으로 영산전 북극보전 영각이 있고 길을 따라 내려서면 미륵전에 다다른다. 일주문 역할을 하는 진여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환한 미소 반겨주는 거대한 미륵부처님이 봉안되어 있는 곳이다. 10년 넘는 불사끝에 1997년 조성된 미륵대불은 높이가 23m이다. 미륵전 왼편에 판전(板殿)이 있다. 판전엔 <화엄경소>를 비롯,15종 3438매의 방대한 수량의 목판본이 보관돼 있다. 특히 판전의 편액은 추사가 71세 때 병중에서 쓴 글로 유명하다. 편액 왼쪽에 세로로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라고 쓰여 있다. 과(果)는 노과(老果)를 말하며 추사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종루 밑으로 내려서면 해수관음상이 작은 연못 중앙에 서 있다. 기도를 다 마친 신도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조용히 관세음보살을 읊조리는 그들은 무엇을 저토록 간절히 발원하는 것일까.
    불교신문 Vol 2682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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