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관음성지를 찾아서

21 의성 고운사

浮萍草 2013. 9. 21. 00:00
    의상스님과 최치원의 만남이 빚어낸 仙境 
     
    ▲ (左) 보물 제246호 고운사 석조석가여래좌상   ▲ (右)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ㆍ대세지 보살을 모시고 있는 법당은 현재의 대웅
    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고운사의 큰법당 역할을 하던 유서깊은 전각이다.
    안동 IC를 빠져 나와 10여 ㎞를 달리면 고운사에 다다른다. 고운사 입구에는 연밭이 있다. 꽃잎을 다 잃은 연밥들이 연못위로 빠끔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연못 건너편엔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를 숲으로 조성한 ‘법계도인림’이 조성되어 있다. 의상스님이 광대무변한 화엄사상의 요지를 210자의 게송으로 압축한 것으로“가지가지의 꽃으로 장엄한 일승(一乘)의 진리로운 세계의 모습”이라는 뜻이며 <삼국유사>에는 ‘법계도서인’ ‘화엄일승법계도’ ‘화엄법계도’ ‘일승법계도’ ‘법성도’ ‘해인도’ 등으로 기록 되고 있다. 법계도 모양의 길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한‘법계도인림’을 따라 54번 꺾인 곳을 들어가다 보면 중앙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을 친견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마지막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데 이는 사바세계 그대로가 부처님 세계임을 의미한다. ‘법계도인림’을 거쳐 산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선다. 1000년 넘게 내려온 숲길은 산뜻한 공기로 마음까지 청량하다. 파란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소나무들 사이로 비쳐오는 햇살은 산사를 찾는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명승지에 있는 다른 절처럼 번잡하지 않아 고운사는 좋다. 고찰 가운데 드물게 관람료를 받지 않아 공연한 시비를 할 필요도 없다. 사찰 입구에는 식당과 가게가 하나도 없어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 (左) 고운사 일주문   ▲ (中) 신라말 대표적 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조성한 가운루.   ▲ (右)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 모양
    으로 조성한 숲길 ‘법계도인림’.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의 이름은 원래 높을 고(高)자를 붙인 고운사(高雲寺)였다. 신라 말 불교와 유교, 도교에 모두 통달한 최치원이 여지대사, 여사대사 등과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조성한 이후 그의 호인 고운(孤雲)을 빌어서 고운사(孤雲寺)로 바뀌었다. 의상스님과 최치원은 7~9세기 세계의 중심이었던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최고 인텔리’였다. 따라서 고운사는 1000년 전 불교와 유학의 최고 권위자가 창건하고 주석했던 도량으로 중요성이 남다르다. 의상스님이 창건한 고운사는 화엄사상(華嚴思想)과 함께 대유학자로 존경받는 최치원 사상의 정수를 간직한 도량이다. 의상스님과 최치원이 비록 200년의 시간차를 두고 고운사에 머물렀지만, 선지식과 학자의 만남은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추앙받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켰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1km 거리의 천년송림체험로를 걸으면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주문으로 손꼽히는 작은 규모의 고운사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을 조성할 당시 원목을 그대로 활용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일주문에서 합장 반배를 하고 경내로 들어선다. 일주문을 지나면 계곡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가운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운루의 본래 이름은 가허루(駕虛樓)였고 우화루의 본래 이름은 우화루(羽化樓)였다. 누각 아래로는 계류가 흐르고 뒤로는 산과 구름을 접하는 정토의 세계가 참배객을 기다린다. 번잡한 세속을 떠나 마음을 내려놓기에 적격이다. 죽어서 가야산의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과 밀접한 인연을 간직한 고운사는 도교적 이미지로 가득한 절이다. 뒷산의 명칭도 뭉게구름을 뜻하는 등운산이고,최치원이 세웠다는 가허루나 우화루 역시 도교의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비행체들을 뜻한다. 그 만큼 이곳은 아름다운 선경에 가깝다.
    고운사 연수전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나면 왼편으로 극락전이 보인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대세지 두 보살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현재의 대웅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고운사의 큰법당 역할을 하던 유서깊은 전각이다. 법당에 들어서서 관세음보살을 명호해 본다. 종무소 건물을 지나서 대웅전이 나오고 뒤로 등운산((騰雲山) 봉우리가 원만하고 풍만하게 펼쳐져 있다.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대웅보전을 지나면 도선국사가 조성한 보물 제246호 고운사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봉안돼 있는 약사전이 나온다. 균형 잡힌 몸매와 인자한 상호,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9세기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이다. 고운사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약사전 맞은편에 명부전이 자리하고 있는데 명부전은 사후에 인간이 심판받는 장소를 형상화한 곳으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명의 대왕과 그 권속들이 조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약 300년 전에 세워진 법당이다. 죽어서 저승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묻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다시 종무소 쪽으로 가다보면 사찰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건물이 하나 있다. 최초에 영조가 내린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연수전’으로 현재의 건물은 고종이 새로 지었다.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던 곳으로 절에선 볼 수 없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고운사 호랑이 벽화.

    올해가 마침 호랑이띠 해라서,참배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호랑이 벽화’가 눈에 띄었다. 보는 사람의 눈을 따라서 호랑이 눈동자가 따라오는 신기한 벽화다. 보수 당시 철거하지 않고 본래 벽화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식당 벽면에 옮겨 놓았다. 고온 다습한 날씨로 번성한 하루살이들이 참배하는 내내 괴롭힌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신경을 쓰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계속 손으로 하루살이떼를 쫓으며 걷다보니 다시 일주문으로 나온다. 법계도를 나오는 것처럼 부처님 세계를 나와 다시 부처님 세계로 들어선다.
    불교신문 Vol 2654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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