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시풍속 담론

<12> 입하(立夏)의 기운

浮萍草 2013. 4. 30. 09:29
    삼보의 힘찬 약동을 느끼다
    볍씨 싹트고 신록 우거질 때 부처님도 오시니 기우제 지내고…억울한 이 없는지 돌아보기도
    선시대의 문인 정범조는 ‘하자천지덕(夏者天之德)’이라 하여 여름을 찬미했다. 만물을 생장시키는 여름의 왕성한 기운이 하늘의 덕과 같다는 것이다. 입하(立夏) 무렵이면 여름기운이 조금씩 일어서는 시기라 볍씨의 싹이 트고 보리이삭이 패기 시작하며 산야에 신록이 일고 개구리 소리 들리기 시작한다. 현대인들이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 시절에 부처님은 이 땅에 오시고 스님들은 여름안거에 들어간다. 불(佛)과 승(僧)이 법(法)에 따라 움직이니 삼보의 힘찬 약동이 느껴지는 시기이다. 계절의 시작에 ‘들 入’자를 쓰지 않고 ‘설 立’자를 쓴 뜻에 대해 내린 해석들이 다양하고 재미있다. “새 계절이 왔으므로 모든 것을 다시 세우라는 것”이라 보는가하면“피동적이 아니라 스스로 당당하게 알아서 잘 선다는 뜻”“그 다음 절기를 준비하기 위해 세월을 잠시 세우는 것”,“이미 있는 것으로 이동함이 아니라 준비해온 것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뜻” 등이라 풀이한다. 실제 ‘立’자는 두 팔을 벌린 사람(大)이 땅(一)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을 본 따 만든 글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대 중국에서는 시(始).건(建).립(立)이 서로 통용되는 의미였다고 한다. 지금도 ‘들어(入)서다(立)’라는 말을 즐겨 쓰듯이 ‘시작하다’란 뜻을 ‘서다’, ‘들어서다’로 표현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설날의 ‘설’ 또한 ‘서다(立)’를 어근으로 하여 새해에 들어서는 날, 새해를 시작하는 날의 뜻을 지녔다고 한다. 이러한 어원과 무관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새 계절을 맞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봄이 한창인 양력 5월초에 여름을 운운하니 절기는 늘 앞질러가는 듯하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이 무렵에 벌써 기우제를 지냈는가하면 중종16년(1521)에는 우박이 떨어지자 왕과 의정부.육조. 한성부 관료들이 모이는 긴급회의가 소집되기에 이른다. “우박은 삿된 기운인데 입하(立夏)에 개암만한 것이 내렸으니 반드시 내리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보면서 해결하지 못한 나랏 일들이 거론되고 옥에 갇힌 이들 가운데 억울한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기도 한다. 또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금기하는 풍습도 있었다. 도교에 삼원사립(三元四立)이라는 말이 있는데 상원(1.15), 중원(7.15), 하원(10.15)을 3원이라 하고 입춘.입하.입추.입동을 사립 (四立)이라 하였다. 이에 태종10년(1410)에는 ‘삼원사립’이라는 이유로 왕이 사냥대회에 나갔을 때 그 고을의 감사와 수령의 알현을 받지 못한 기록도 등장한다. 계절이 바뀌는 무렵을 중요한 변화의 시기로 보아 근신하는 의미일 것이다. ‘여름철 더위에 상하면 가을에 학질이 생긴다’는 말이 있듯이 계절의 한기와 더위에 관련된 병은 즉시 발병하지 않고 잠복해 있다 다른 계절에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의보감>에도 겨울 동안 따뜻하게 지내지 못해 한기에 감촉되면 그 기운이 봄이나 여름에 발현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았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환절기’라 부르는 시기에 감기나 병에 걸리는 이들이 많아 옛사람들의 근신을 새길 만하다. 땅속은 대기와 반대라서 입하와 소만이 든 음력4월의 땅속이 가장 차다고 하니, 보이지 않는 우주자연의 기운이 신비롭다.
    불교신문 Vol 2909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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