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시풍속 담론

<11> 춘우(春雨)와 법우(法雨)

浮萍草 2013. 4. 23. 09:33
    저마다의 꽃을 피우니…
    곡우철 농부와 소풍갈 아이의 봄비가 같은가 중생들은 자기 그릇만큼 ‘법우’ 받아들여 성장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내 철모 위로 봄비가 내린다. 참호에도 들밭과 수풀에도 봄비가 내린다. 봄비는 북방의 대지를 진흙탕으로 만들어 적들의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수렁에 빠지게 된다. 비가 그치고 회백색 비안개가 깔리면 적들은 방향을 잃고 우리는 새로운 한 무리의 포로들을 잡게 된다….” 1941년의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에는 한 독립투사가 상해에서 내리는 봄비를 보며 쓴 글이 실려 있다. 초록의 씨앗을 움트게 하는 봄비의 생명력 감상에 젖게 하는 봄비의 서정성이 만연한 이 봄날에도 어느 시기 어딘가에서 봄비는 생사의 갈림이거나 처절한 삶의 질곡이기도 하다. 이에 근기가 부족한 우리중생들은 어떤 처지에 놓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봄비를 봄비 자체로 보라’는 진리가 때로 공허하게 들린다. 호미를 든 곡우철 농부의 봄비와 소풍나들이 생각에 잠을 설친 아이의 봄비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법화경〉 약초유품(藥草喩品)에 나오는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큰 구름이 비를 내려 차별없이 대지를 고루 적시고 모든 수목은 각기 종류와 성질에 맞게 비를 흡수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부처의 자비는 일체중생에게 평등하지만 다양한 생각과 근기를 지닌 중생들은 자기의 그릇만큼 그 법우(法雨)를 받아들여 성장한다 는 비유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대상과 상황에 적합한 가르침을 펼친 분이다. 그가 스스로 깨달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법은 인식론적 각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으나 중생은 수행에 전념하는 이가 아니라 세속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수행자에서부터 왕과 귀족, 갑남을녀에 이르기까지 각자 처한 자리에서 바른 길을 가는 것이 깨달음을 향한 길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였고 제자들과 유행(遊行)하면서 여러 상황을 만날 때마다 질문과 답변으로 가르침을 펼쳤다. 중생의 근기에 따른 이러한 대기설법(對機說法)은 마치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듯 초목이 스스로 적절히 비를 받아들이듯 베풀어졌던 것이다. “봄비야! 너는 만물을 살리건만 나는 어찌 너를 보고 기뻐하기 전에 눈물부터 나느냐? 그것은 내 맘이 슬프기 때문이다. 꽃을 실은 봄수레가 몇 번이나 내 문 앞을 지나갔지만 내 쓸쓸한 가슴엔 영원히 찾지 아니하고 갔다. 얼음덩이가 둥실둥실 뜨고 사철 눈보라만 치는 것이 북빙양(北氷洋)의 경색이라면 나의 가슴은 그와 같다. 봄비야! 너는 황해바다에 일어났던 저기압이 바람에 슬슬 몰려 이 반도강산에 와서 뿌리는 아무 뜻 없는 물방울이건만 불행한 인생 들은 너를 보고 우는구나.” 총독부기관지에 근무해 친일인물로 평가받는 한 언론인은 젊은 시절의 어느 날 경성의 창밖으로 내리는 봄비를 내다보며 이렇게 읊었다. 낯선 땅에서 나라를 지키던 앞의 독립투사와 비슷한 시기였다. 그 역시 나라를 잃은 슬픔과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옥죄임에 봄비가 서러웠던 것일까, 단지 자신의 감성을 노래한 것일까. 불행한 시기에 서로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인물이 각기 바라본 봄비는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상황의 비’였다. 차별 없는 봄비(春雨)에, 차별 없는 법우(法雨)에 각자의 방식으로 비를 맞으며 저마다의 꽃을 피울 날을 그려보는 봄날이다.
    불교신문 Vol 2907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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