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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곡우의 감로수

浮萍草 2013. 4. 17. 09:48
    다선일여<茶禪一如>…다례제 올려
    ‘못자리’ 하는 중요한 절기…우전차 최상품 고로쇠물은 남자, 거자수는 여자들이 애용 식가라면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오사리굴비를 기억할 것이다. 오사리굴비란 봄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 무렵에 영광 법성포 앞바다에서 알을 낳으려고 북상하는 조기를 잡아 말린 것을 말한다. ‘오사리’에도 여러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른 철의 사리 때 잡은 해산물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은 동중국해나 제주도에서 미리 잡아 어획량이 적지만 이 시기에 북상하는 조기는 연하고 기름기가 많아 맛이 뛰어나기에 한식 사리나 입하사리보다 곡우사리를 으뜸으로 친다. 〈열양세시기〉에는 비늘이 잘고 살이 두터운 ‘공지’라는 물고기가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남양주 미음리에서 멈추는데,이런 현상은 곡우를 전후해 성하여 강가사람들은 이로써 철의 이르고 늦음을 점쳤다고 한다. 이 물고기 이름은 곡우에 이르렀다는 뜻의 ‘곡지(穀至)’라는 말이 와전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물고기가 수온이 높아지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니 이 무렵에 어류와 관련된 기록이 많이 등장한다. 어류뿐만 아니라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는 못자리를 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볍씨를 담가 싹이 나면 파종을 하는데, 부정을 타면 싹이 잘 트지 않아 그해 농사를 망친다고 믿었다. 따라서 상가에 다녀오거나 궂은 일이 있으면 대문 앞에 불을 지펴 그 위를 건너 삿된 기운을 몰아낸 뒤 집으로 들어갔다. 볍씨를 담은 항아리에 금줄을 치고 고사를 올리기도 하며 토지신 질투로 쭉정이 농사를 짓게 될까봐 부부 잠자리도 금했다니 농사에 임하는 옛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살필 수 있다. 이 시기는 나무에 본격적으로 물이 올라 수액을 마시러 산을 찾는데 이를‘곡우물 마시기’라 한다. 경칩 무렵의 고로쇠물은 여자물이라 하여 남자들에게 더 좋고 곡우 무렵의 거자수는 남자물이라 하여 여자들이 애용하면서 음양의 조화를 따르는 이들도 많다. 고로쇠는 특히 신라 말 도선국사와 관련이 깊다. 스님이 백운산에서 오랫동안 좌선을 하다가 일어나려니 무릎이 펴지지 않아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나려다 가지가 부러졌다. 그 가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에 마셨더니 신기하게 무릎이 펴져 뼈에 이롭다는 뜻으로 나무이름을 골리수(骨利水)라 불렀다가 고로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곡우라 하면 차(茶)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찻잎을 따는 시기로 곡우를 기준삼기 때문인데 곡우 전에 딴 것을 상품으로 여겨 이름도 우전차(雨前茶)라 부른다. 이 무렵 다향이 높은 사찰에서는 다례제를 열기도 하면서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선풍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시대에 차를 매개로 스님과 유학자 간의 교류도 활발했는데 그 중 백미는 단연 초의선사와 추사이다. 초의스님이 대흥사 일지암에서 정성껏 재배한 차와 편지를 보내면 추사는 염주ㆍ책ㆍ향 등과 주옥같은 글씨로 답례했다. 추사는 차가 떨어질 만하면 “그대는 보고 싶지 않고 편지도 관심 없으나 차만은 끊지 못해 재촉하오.”라며 스님께 닦달의 편지를 쓰기도 하고 남의 차를 가로챈 뒤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허물없이 유쾌한 농을 주고받은 두 거장의 교류에 종교와 이념을 뛰어넘는 우정과 차향이 깊게 배어있다. 봄의 미각을 알리는 달짝지근한 고로쇠와 순수하고 깊은 차맛…. 모두 곡우의 감로수이다.
    불교신문 Vol 2905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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