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축생전

7. 소 (중)

浮萍草 2013. 7. 18. 07:00
    우직하게 도량 불사 앞장…곳곳서 공덕 기려 
    공주 갑사 공우탑. 사찰생태연구소 제공
    직하고 성실함 때문일까. 아니면 선한 축생이라는 이미지 탓일까. 소는 사찰 창건 일등공신(?)이다. 사찰마다 창건 설화가 있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동물이 바로 소다. 공주 갑사에는 공우탑이 있다. 죽은 소를 위해 세운 탑이다. 탑에 얽힌 소 이야기는 이렇다. 정유재란을 겪은 갑사는 화마로 앙상한 터만 남았다. 그러나 의상 스님이 화엄의 높은 교학을 펼쳤던 도량의 황량함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인호 스님과 20여명의 스님들이 중창 불사의 원력을 세웠을 때였다. 뜻대로 불사가 진행되지 않자 인호 스님은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다 꿈에 소가 나와 “불사를 돕겠다” 약속하고 사라졌다. 꿈을 깬 이후 소는 나흘 째 아침마다 갑사를 찾았고 매일같이 향나무와 기와 등 법당 중건에 필요한 자재를 구해와 나르는 등 불사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소의 도움으로 원만한 불사 회향을 앞둔 어느 날 기력을 다한 소는 지쳐 쓰러져 숨을 거뒀다. 스님들은 소의 공덕을 기리고자 탑을 세웠고, 그 탑이 바로 갑사 길목에 있는 공우탑(功牛塔)이다. 땅 끝 해남의 아름다운 절 미황사는 검은 소와 관련이 있다. 조선 숙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의 ‘미황사 사적기’에는 미황사 창건 얘기가 실렸다. 신라 경덕왕 8년 홀연히 한 돌배가 땅끝마을 사자포에 와 닿았다. 배안에서는 천악범패의 소리가 들렸으나 범인은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이 소식을 접한 의조 화상은 장운, 장선 두 사미와 사부대중 100명과 몸을 정갈히 하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비로소 돌배가 해안에 닿았다. 안을 살피니 ‘화엄경’ 80권,‘법화경’ 7권, 비로자나·문수보살 및 40성중,16나한과 탱화,그리고 금환(金環)과 흑석(黑石)이 각각 한 개씩 실려 있었다. 사부대중이 부처님을 봉안할 곳을 논의할 때 흑석이 절로 갈라져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의조 화상도 꿈을 꾼다. 한 금인(金人)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인도의 왕으로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불상과 경전을 모실 곳을 구하고 있는데 이곳에 이르러 산 정상을 바라보니 1만불이 나타나므로 여기에 온 것이다. 마땅히 소에 경을 싣고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경을 봉안하라”고 일렀다. 의조 화상은 이를 그대로 따라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 소가 누웠다 일어나서 산골짜기 이르러 다시 누웠다. 첫 절이 통교사(通敎寺)고, 두 번째 누운 곳에 지금의 미황사를 창건했다. 미황사의 ‘미’가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황’은 금인의 황홀한 색을 취한 것이라 한다.
    봉화 청량사 삼각우송. 사찰생태연구소 제공

    봉화 청량사에는 뿔이 셋 달린 소 이야기가 전해진다. 청량사 유리보전 오른쪽에는 뿔모양으로 갈라진 세 가지를 드리운 늙은 소나무가 있다. 전해오는 바 원효 대사가 청량사 창건에 진력을 다할 때 하루는 사하촌에 내려갔다. 마침 뿔이 셋 달린 소와 논을 갈던 농부를 만났고 소는 당최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였다. 스님은 농부에게 소를 시주할 것을 권유,소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밤낮없이 운반해 청량사 창건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회향 하루 전 소는 생을 마쳤는데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다. 이후 스님이 소를 묻은 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랐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삼각우송’ 이 소의 무덤을 ‘삼각우총’이라 불렀다. 평택 심복사 역시 소가 등장한다. 파주 문산포에 사는 천문을이라는 어부는 바다에서 건진 불상을 봉안할 도량 걱정에 잠을 못 이뤘다. 꿈에 나타난 부처님의 말씀대로 바닷가에 홀연히 나타난 검은 소 세 마리와 불사를 마쳤다. 절과 500m 떨어진 곳에 소의 무덤이 있고 매년 정월 초삼일이면 천노인을 기리는 예불을 드린다고 한다.
    법보신문 Vol 1094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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