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축생전

5. 쥐 <하>

浮萍草 2013. 7. 5. 07:00
    꼬리 바쳐 경전 필사…미륵신앙과도 관련
    ‘무소유’ 법정 스님과 쥐의 인연이 흥미롭다. 스님의 수필집 ‘서있는 사람들’ 중에 나오는 해탈 쥐와의 인연담은 헌식(獻食)에서 비롯된다. 헌식이란 공양할 때 배고픈 중생 몫으로 음식을 따로 뒀다 나누는 일이다. 스님은 음식을 두던 헌식돌에서 으레 기다리던 큰 쥐를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자주 보게 되자 반가웠다고 회고했다. 곁에 다가와 음식을 먹을 만큼 서로 길이 들었다고. 어느 날 스님이 “여러 생에 익힌 업보로 흉한 탈을 쓰게 됐는데 내생에는 좋은 몸 받아 해탈하거라”고 말을 건넸는데,기이하게도 다음날 쥐는 헌식돌 아래 죽어 있었다. 스님은 착하게 살려는 생명의 근원은 한가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사실 쥐와 관련된 불교 이야기로는 ‘불설비유경’의 안수정등 비유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야기인 즉, 이렇다. 사방에서 일어난 들불과 성난 코끼리에 쫓긴 한 사람이 나무 덩굴을 타고 우물 안 으로 피했다. 위기를 모면하는가 싶었더니 우물 안벽에선 독사 네 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렸고, 바닥에는 독룡이 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의지할 곳이라곤 덩굴뿐이었다. 와중에 난데없이 흰 쥐와 검은 쥐가 덩굴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순간이었다. 찰나 입으로 떨어지는 달콤한 꿀 다섯 방울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잊었다는 애기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을 상징하는데 안수정등의 비유는 재물,애욕,음식,명예,수명의 오욕에 집착하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 친다. 경봉 스님은 이 안수정등 그림을 설법에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경봉 스님은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에서 공부하다 틈만나면 일터나 장터,잔칫집을 돌아다니며 행방포교(行方布敎)에 나섰다 고 한다. 스님이 꼭 챙기던 것이 있었는데, 먹으로 안수정등(岸樹井藤) 법문이 묘사된 그림을 매단 석장이다. 처음에는 구수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마침내 불교의 깊은 진리로 사람들을 이끌었다고 하니,안수정등 그림이 현장에서 어떤 효과를 발휘했을지 눈에 선하다. 쥐는 미륵신앙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삼국유사’ 권4 제5 의해편에 따르면 진표율사는 불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수행할 때 쌀 한 홉을 덜어내 쥐를 길렀다. 미륵신앙을 크게 일으켰던 진표율사의 이 같은 기록 탓에 학계는 미륵신앙과 구도에서 쥐가 어떤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고 한다. 함경도의 세인굿에서 불리던 무가인 ‘창세가’의 내용은 쥐와 미륵신앙의 또 다른 접점이 된다. ‘창세가’에 보면 미륵이 우주의 질서를 정리하고 나서 쥐에게 물과 불의 근원을 물어 비로소 물과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됐고 쥐는 그 대가로 이 세상의 뒤주를 얻었다. 불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때는 조선후기. 나운 화상이 중국에서 ‘묘법연화경’을 들여와 필사본을 쓰기 위해 잠시 명상에 잠겼는데,어디선가 황색 쥐가 나타났다. 쥐는 꼬리를 보시할 테니 붓을 만들어 필사해 줄 것을 당부했다. 감복한 나운 화상은 쥐의 꼬리를 뽑아 붓을 만들었고 한자에 한번 씩 절을 하고 3개월의 공을 들여 완성했다. 이 경전은 현재 통도사 유물전시관의‘묘법연화경’으로 알려졌다. 쥐띠 해엔 불교계에 크고 작은 일들도 많았다. 760년 4월 월명사는 향가 ‘도솔가’를 지어 해가 두 개였던 변괴를 없앴고 1564년 여름 휴정 스님은 ‘선가귀감’을 지었다. 또 1972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직지심체요절’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1984년에는 익산에서 미륵사터가 발굴됐다.
    법보신문 Vol 1089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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