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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식’에 새기는 ‘불’의 의미

浮萍草 2013. 4. 1. 07:00
    욕망의 불은 스스로를 파괴
    
    새 불 하사받는 ‘사화’ 의식날…찬음식 먹으며
    화재가 잦은 계절 ‘불에 대한 경각심’ 일깨우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엘리어트가 찬란한 계절 4월의 역설을 읊었듯,이 무렵 산과 들은 하루가 다르게 왕성한 생명력으로 피어나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고들 한다. 
    24절기 즐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은 동지에서 105일째 되는 날인 한식(寒食)과 매년 같은 날이거나 하루 정도 차이를 
    둔다. 
    따라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도 생겨났지만 두 세시(歲時)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24절기는 날씨의 변화로 기준을 삼는 농사력(農事曆)이기에 청명은 이 무렵 자연의 흐름과 농사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농가월령가>에서는“대청 앞 제비 한 쌍 옛집을 찾아오고 꽃밭의 벌나비 분주히 날고기니 미물도 때를 만나 즐거워함이 사랑겹다”
    고 봄의 변화를 노래한 뒤“농부의 힘든 일 중 가래질 첫째로다. 
    점심밥 잘 차려 때맞추어 배불리소. 
    냇가 밭엔 기장과 조를 심고 산밭엔 콩과 팥을 심으리. 
    보리밭 갈아놓고 모 심을 논 만들어두소”라며 때맞춰 해야 할 일을 세세히 되새겼다.
    이에 비해 한식은 불(火)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명절이다. 
    한식날이면 이름 그대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이는 봄을 맞아 한 해 동안 사용할 불을 새롭게 
    교체하는 상징적 의식이다. 
    대궐에서는 버드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이 신하들과 고을 수령에게 불을 나누어주는 사화(賜火) 의식을 행하고 각 고을의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게 된다. 
    따라서 묵은 불을 새 불로 교체하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올림픽 때 길고긴 성화 봉송의 의식을 소중하게 행하듯이 불은 태양의 축소판이자 성스러움과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예로부터 집집마다 불씨를 묻어두고 불씨를 꺼뜨리면 집안이 망한다며 신성하게 여겼고 나라에서는 왕이 새로운 불을 지펴 만백성
    에게 나눠줌으로써 왕의 신성함과 권위를 드높였던 것이다. 
    이러한 풍습은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달하는 동지를 전후하여 왕실에서 성대히 등(燈)을 밝혔던 불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 해의 시작은 작은설인 동지부터 설과 대보름ㆍ입춘까지 이어지듯이 새로운 불의 점등 또한 지속되었고 한식에 이르러 불을 지펴 
    백성들에게 배포함으로써 실제적인 점등이 완성되었던 셈이다.
    특히 한식 무렵이면 바람이 심하고 가물어 예나 지금이나 화재가 잦은 계절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시기에 불을 금함으로써 불조심을 일깨우는 뜻도 함께 하였다. 
    신성한 불의 계승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잘못 다루어 삶을 파괴하는 불에 대한 경각심이 한식 명절에 함께 담겨있는 것이다.
    어둠과 무명을 밝히는 것이 불이요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며 올리는 것이 등공양이다. 
    그러나 탐진치로 가득 찬 욕망의 불은 스스로를 파괴할 따름이다. 
    심화요탑(心火繞塔)이라는 설화에서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志鬼)라는 백성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타오르는 마음의 불
    (心火)을 주체하지 못해 여왕이 다녀간 절의 탑을 맴돌다 불귀신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밝혀야 할 불과 꺼야할 불을 잘 가릴 일
    이다.
    
    불교신문 Vol 2901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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