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천년사찰 천년의 숲길

23 고불총림 백양사

浮萍草 2013. 10. 5. 07:00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으로 선정 
    조선팔경 백양사 쌍계루에서 백암산에 안기다
    고려시대 400여수의 시가 누대를 장식하는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풍광에는 8월의 짙은 녹음이 고스란히 연못에 투영되어 있다.
    백암산을 병풍삼아 당당하게 자리잡은 고불총림
    백양사 전경.
    양사 쌍계루로 향하는 숲길. 매표소에서 1.5km 정도의 길로 비자나무,단풍나무,갈참나무 등이 울창한 산림을 이뤄 다양한 멋을 뽐내니 보는 즐거움에 한참의 시간을 빼앗긴다. 유모차의 바퀴 굴림이 경쾌할 만큼 평탄한 길이다. 초봄에는 벚꽃으로 가을에는 애기단풍으로 오는 이를 반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과 ‘가장 걷고 싶은 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경포대에 가면 5개의 달을 찾기 바쁘고,사진기를 메고 백양사에 왔다면 조선 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쌍계루와 주변 풍경을 담기에 분주해진다. 징검다리에서 보는 연못에 비친 쌍계루와 백암산의 늠름한 모습도 좋고, 쌍계루에 올라 연못과 징검다리를 건너는 가족과 연인의 모습을 보는 것도 정겹다. 쌍계루에는 고려와 조선을 풍미했던 이들이 노래한 400수의 시가 누대를 장식하고 있다. 보수작업을 마쳤으며 주변의 풍광을 조망하기에 좋다.
      
    ▲ (左) 경전에는 손에 칼을 들고 있으나,봄과 기쁨을 관장하는 사천왕 답게 비파를 들고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백양사 지국천왕.
    ▲ (中) 지난해 새로 단장을 마친 쌍계루는 고려시대 목은 이색이 붙인 이름이다.▲ (右) 아름다운 숲길로 유명한 매표소부터 시작
    되는 1.5km 숲길에는 주말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백양사는 현재 5대 총림의 하나인 고불총림으로 1400여년 전 백제 무왕33년에 여환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백암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백양사가 처음 창건될 때 명칭인 백암사는 ‘암석이 모두 흰색이라 백암산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백암산이라는 산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고려 덕종3년 중연선사가 중창하면서 정토사 혹은 정토선원으로 변경되었는데 사찰의 성격이 정토신앙을 바탕으로 한 선종 사찰로 일신하면서 그 명칭 또한 변경 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들은 대부분 정토사로 표시되었으나 조선시대의 기록은 백암사와 정토사가 혼재되어 있다. 백양사라는 이름은 하얀 양을 제도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선조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흰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7일간 계속된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 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상으로 환생하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현재의 백양사의 모습은 만암선사에 의해 만들어 졌다. 현재 남아있는 대웅전과 사천왕문 등을 건립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쌍계루에 한참을 머물며 주변의 풍광을 담고,대웅전으로 향한다. 이미 기울기 시작한 오후의 빛은 인간의 감정 가운데 기쁨의 세계를 관장하고,계절 중에는 봄을 관장한다는 사천왕 가운데 지국천왕 을 온화하게 비춘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보리수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보리수 아래서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었고,무불상시대에 부처님을 표현했던 상징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백암산을 타고 내려온 상쾌한 바람 한가락이 코끝을 맴돌고, 총림의 예불소리가 온몸을 감싼다.
    불교신문 Vol 2744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