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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남한산성 장경사

浮萍草 2013. 9. 7. 07:00
    굽이굽이 승군의 호국숨결 살아있는 남한산성에서 서울을 한눈에 내려 보다
    지난 6월 30일. 남한산성 성곽길을 걷다 잠시 열린 하늘사이로 남산이 눈에 들어왔다
    해 전부터 인지 지루한 장마기간이 점점 길어지는 듯하다. 이틀간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추는 듯하고 하늘이 잠깐씩 열리기를 반복한다.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서둘려 남한산성 장경사(주지 경우스님)로 향했다. 망월봉의 남사면 중턱 해발 36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한산성 내에서 비교적 넓은 대지를 갖고 있다. 팔도에서 모인 스님들 남한산성에 ‘사연’ 담아
    무척 너른 주차장이건만 차를 대기가 머쓱하다. 100여명의 군인들이 훈련 후 저녁식사를 위한 배식이 한창이다. 자세히 보니 장교를 지원한 대학생들인 학군단이다. 학생의 신분으로 장교가 되고자 방학기간동안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다.
     
    ▲ (左) 남한산성 성곽 안쪽의 길은 급경사가 없고 넓어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걷기에 적당하다▲ (右) 조선 인조때 창건된
    장경사 전경. 남한산성 축성 당시 노역에 동원된 스님들이 머물고, 승병들이 주둔했던 도량이다.

    이 평탄한 대지의 한쪽은 성곽이 감싸 흐르고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은 지금의 학군단처럼 조선시대 스님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훈련과 숙식이 이루어졌던 호국숨결이 살아 숨 쉬는 터전이다. 남한산성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대대적으로 축성된 것은 조선 인조2년(1624년)부터 인조4년 사이다. 이때 8도의 승군들이 축성에 일익을 담당 하였으며 축성 후에도 남한산성 곳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수성에 필요한 훈련을 계속 하였다. 이때 새로 창건된 사찰 가운데 하나가 장경사이며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너른 부지는 당시의 승군훈련장이다.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다. 서둘러 남한산성의 서문으로 향했다. 남한산성 성벽은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 연주봉,동쪽으로 망월봉과 벌봉, 남쪽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았다. 성벽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비해 성곽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둘레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서문 근처에서는 맑은 날 남산이 보인다. 남한산성 둘레길에서 서문 밖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성벽을 타고 20m쯤 가면 서울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벌써 서울의 야경촬영을 위해 카메라 삼각대를 펴놓은 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비온 후 맑게 열리는 하늘을 기대하며 인천에서 한걸음에 달려 왔단다. 비방울이 오락가락하다 저녁 노을빛과 함께 하늘이 잠깐 열리며 남산이 보이자 탄성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망대에 삼각대를 펼쳐놓고 성곽 길을 촬영하다 남산을 향해 셔터를 누른다.
     
    ▲ (左) 승군의 훈련장이었던 장경사 앞의 너른부지는 인근 부대에서 찾아온 젊은 군인들로 활기차다.

    다시 전망대로 돌아와 여러 사람들과 숨죽이며 먹구름에 가린 하늘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더 이상 남산은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주변보다 어두운 그림자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비구름과,남한산성 서문의 좌우를 휘감아 넘는 수분을 흠뻑 머금은 구름을 피부로 느끼며 볼 수 있었다. 자연의 모습 중에는 눈으로는 볼 수 있으나 사진으로는 기록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불교신문 Vol 2736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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