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천년사찰 천년의 숲길

16 삼악산 상원사

浮萍草 2013. 8. 17. 07:00
    걸음걸음 내딛으며 집착도 욕망도 버리네
    삼악산에서 내려 본 의암호와 춘천전경
    촌에서 버스를 내렸다. 다리 넘어 강촌역 담벼락의 알록달록 풋사랑의 흔적들은 여전했지만 더이상 진입하는 열차는 없다.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으로 신역사가 인근에 생겼기 때문이다. 길머리를 돌려 삼악산을 넘을 요량으로 의암매표소에 도착했다. 표를 끊고 오르는 길이라 생각하기엔 등산로가 어정쩡하다. 시작은 물 마른 골짜기의 바위 돌을 오를 뿐이다. 5분후쯤 철제 난간으로 된 계단을 만나면서 생각은 바뀐다. 악산을 오를 수 있게 해주는 친절한 길이다. 20여분 후에 돌계단 위로 대웅전 처마가 고개를 내민다. 절벽을 병풍삼아 서있는 상원사(上院寺)다. 강원도의 전통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차를 가지고 올라갈 수 없다. 주위를 둘러봐도 절벽형태의 돌산은 차가 오를 만큼의 틈을 주지 않는다. 험한 산길따라 오르면 절벽을 병풍 삼아 의암호 내려보며 고요하게 서 있는 고찰
    산왕전과 칠성각 편액이 나란히 걸린 삼성각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구전이 있을 뿐 정확한 창건연대와 창건주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유점사본말사지’에 따르면 조선 철종9년 금강산에서 온 풍계선사가 고정암을 중건 하여 상원사로 편액을 바꾸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대웅전 외에는 삼성각과 요사채 하나가 전부다. 삼성각은 하나의 전각에 산왕전(山王殿)과 칠성각(七星閣)이라는 두 개의 편액이 나란히 걸려있다. 도량 한켠의 감로수를 마시고 담아가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위로는 더 이상 물이 없다. 상원사를 지나자마자 300m 남짓의 깔딱고개를 만난다. 이곳에서는 충분한 휴식을 권한다. 정상까지 이런 너른 공간이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집에서 가져온 두 가지 생각을 꺼내본다. 하나는 삼악산을 오르는 방향이었다. 길은 하나지만 어디를 출발점으로 삼냐에 따라 조삼모사(朝三暮四)가 된다. 등선폭포를 출발점으로 하면 오르기는 비교적 수월하나 내려올 때가 고생이고, 의암매표소를 출발점으로 하면 오를 때는 수고스럽지만 내려가는 길은 한결 수월 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미 의암매표소를 들머리로 오르는 정공법을 택한 이후라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남은 한 가지 생각은 온전한 붕어섬을 만나는 것이다. 겨울철도 아닌데 붕어빵 같은 소리로 들릴 것이다. 머릿속에 그리고 온 메인사진은 붕어모양 의암호의 섬이 온전히 보이는 춘천방향의 멋드러진 전경이다.
    삼악산 등산로에는 밧줄과 ㄷ자 쇠받침이 촘촘히 있다
    이제 남은 건 오직 하나 네발 짐승이 되어 1km 남짓의 정상을 오르며 붕어를 찾는 것뿐이다. 큰 바위 사이를 타고 올라야 하지만 일반인도 충분히 등산이 가능 하게 ㄷ자모양의 쇠받침이나 밧줄이 꼼꼼하게 배치되어 있다. 얼마 오르지 않아 너무 쉽게 붕어가 보였다. 꼬리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더 올라야 하는데 주변을 살피니 누군가 춘천 방향의 전경을 촬영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꺽은 것 같다. 조건반사적으로 셔터가 눌려진다. 나뭇가지를 꺾었던 사람의 마음과 조바심에 그 자리에서 셔터를 누르던 나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르는 사이사이 삼악산은 확 트인 전경을 기꺼이 보여 주었다. 오를수록 달라지는 것은 점점 온전한 붕어의 꼬리부분을 볼 수 있다는 정도이다. 정상을 오르기도 전에 붕어섬만을 좇던 카메라를 등가방 깊숙이 정리했다. 숨은 가쁘고 다리는 무거워 졌지만 집착의 상을 벗어 던지니 비로소 주변이 온전히 눈에 담기며 마음은 가벼워졌다. 무사히 정상에 도착하여 등선폭포를 향했다. 풀린 다리를 흙길이 달래준다. 거의 다 내려왔을쯤 등선폭포가 모습을 보이고 연인들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불교신문 Vol 2724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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