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천년사찰 천년의 숲길

18 청도 운문사

浮萍草 2013. 8. 31. 07:00
     사람 키만큼 공중에 띄워져서 거니는 비밀의 정원으로 향하는 천년의 소나무길
    솔바람길은 1km의 짧고 평탄한 길이지만 다양한 숲길의 모습을 보여준다.
    웅장한 만세루가 운문사의 세월을 말해준다.
    문사 매표소를 지나면 이내 차도와 인도가 분리된다. ‘ 여기서부터 운문사의 솔바람길입니다.’ 정감어린 글자체의 이정표가 보이고 그 너머에 짙푸른 숲이 베푸는 향연이 바람을 타고 코끝으로 전해진다. 짙은 소나무향이다. 여러 명이 능숙한 비질로 길을 낸 것 같은 멀끔한 흙길이 나타난다. 삐져나온 돌부리조차 찾기 쉽지 않다. 평탄하고 미끈한 흙길은 좌우로 꼬리로 흔들며 더 깊은 숲속으로 이끈다. 길 가운데 마을수호신 역할은 족히 감당할 수 있는 아름드리나무도 있다. 길이 계곡 쪽으로 붙나 싶더니 계곡과 접한 비탈면의 울창한 소나무 군락 사이로 나무데크가 깔려있다. 경사면이 급격하다보니 어느 곳은 사람 키만큼 위로 띄워져 길이 깔려있다. 안개가 끼는 날은 솔 향을 머금은 구름위의 산책이 된다.
    울창한 소나무 군락과 다양한 아름드리나무,거기에 단정한 흙길과 공중을 걷는 나무데크 길이 어우러진 1km의 솔바람길. 이름은 기존 길을 정비한 후 사중에서 공모를 통해 붙여졌다.
    돌아오는 길에 담장 너머로 회주 명성스님이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범종루에 들어서면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와 만세루 그리고 대웅보전이 보인다. 1700여 명의 비구니스님을 배출한 운문사는 정갈한 기품이 느껴진다. 현재와 같은 대찰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중국 당나라에서 법을 전해 받고 운문사를 중창한 보양국사 때이다. 고려 태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산적을 토벌하려 청도에 이르렀으나 선적들이 견성(犬城)에 모여 항복하지 않았다. 보양국사 도움으로 청도 일대 평정한 고려 태조 왕건 ‘운문선사’라는 사액 내려
    이에 태조가 보양국사에게 지혜를 구하니 ‘개는 밤만 지키고 낮은 지키지 않으며 앞은 지키고 뒤는 지키지 못하니 낮에 북쪽을 치라’ 는 가르침을 주었다. 태조는 이 말에 따라 산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이후 개국초기의 혼란을 수습한 후 태조20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과 함께 전지 500결을 하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대작갑사는 운문사로 개칭되었고, 경제적 기틀을 갖춘 대찰이 되었다. 현재는 신라시대의 금당 앞 석등,석조여래좌상,동.서 삼층석탑으로 시작하여 고려시대 원응국사비,석조사천왕상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대웅보전,비로자나삼신불회도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가람을 메우고 있다. 대웅보전 뒤편으로는 비밀의 정원이 가람을 장엄하고 있다. 10여 년 전에는 보리밭이기도 했고,수년전 까지는 비워두다 시피한 공간이었는데,2008년부터 흙을 부어 언덕을 만들고 여기에 우리 꽃 야생화를 짜임새 있게 심고 가꾸었다. 구절초를 비롯해 비비추,꽈리,벌개미취,작약,옥잠화등 서로 다른 꽃이 개화시기를 달리해 피고 지고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불교신문 Vol 2732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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