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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팔공산 북지장사

浮萍草 2013. 8. 24. 07:00
    마음까지 상쾌한 솔향기 끝에 만나는 지장도량
    소박하고 정감 가는‘팔공산 북지장사’편액.
    그 뒤편에 대웅전 처마가 살짝 보인다.
    찍한 도로가 팔공산 자락을 파고든다. 백안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고 1km쯤 더 이어지더니 막다른 길이다. 우측으로 북지장사 이정표가 보인다. 길을 들어선다. 차량 한 대가 들어설 수 있는 오래된 포장도로다. 몇 호의 농가와 밭이 보이는 산간마을의 풍경이 아주 잠깐 보이지만 코끝엔 이미 진한 소나무향이 느껴진다. 흙을 덮은 넉넉한 마른 솔잎,그 사이사이 머리를 내리는 바위,그리고 이 모두를 끌어 안은 소나무 군락이 이내 모습을 나타낸다. 북지장사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이 길에도 요즘 유행하는 길 이름이 붙어있다. ‘대구올레 팔공산 1코스’란다. 코스는 백안삼거리부터 북지장사에 이르는 편도2.5km의 거리로 말 그대로 남녀 노소 모두 가볍게 걷을 수 있는 길이다. 석조지장보살좌상과 지장보살도가 전해지는 팔공산 지장신앙의 발원지
    소나무 군락을 이리저리 따라 오르는 빛바랜 포장길도 나름의 멋이 있다. 오르는 길 중간에 서서 촬영을 위해 사람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오전에 내린 비로 올라오는 사람이 드물고 차량으로 북지장사까지 오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덕분에 깊은 심호흡으로 허파까지 솔 향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 (左) 임시 법당의 청아한 독경소리가 팔공산 자락에 퍼져 나간다.▲ (右) 나란히 서 있는 북지장사 삼층석탑 2기가 도량의 중심을
    잡아준다.
    지장도량으로 향하는 소나무길.
    몇 대의 차량을 올려 보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소대 단위의 작전 중인 완전군장을 갖춘 군인들이다. 이번에는 산악자전거에 멋진 복장을 입은 사람이 올라온다. 촬영을 정중히 거절하신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마주치다 보니 어느덧 북지장사에 도착했다. 팔공산 지장신앙의 발원지인 북지장사는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팔공산 북지장사’라는 아담한 편액이 걸린 대문은 양 옆 벽으로 금강역사가 그려져 있어 금강문의 역할을 한다. 일주문과 천왕문이 없어도 도량의 안과 밖을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 지장도량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으로 보수공사 중인 대웅전(보물 제805호)이 보인다. 처마의 단청까지 새롭게 마친 모습이 보수공사의 막바지로 보인다.
    북지장사는 신라 소지왕 7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현재 보수중인 대웅전은 원래 지장전이었는데 대웅전이 불타 버린 후 대웅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립연대는 조선 인조 원년으로 조선중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더불어 ‘석조지장보살좌상’(대구 유형문화재 제15호)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북지장사 지장보살도’가 팔공산의 유서 깊은 지장도량임을 말해 주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현재의 북지장사를‘공산의 지장사’라 칭하며 입전된 토지의 규모가 200결에 달한다고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구읍지’에 따르면 승당과 선당이 있고 부속암자로 청련암과 도명암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량 주변에 고려시대 이전의 유물인 건물지,기단,석탑 등이 있어 옛 사격을 전해주고 있다. 후대에 달성 가창에 있는 남지장사와 구분하는 뜻에서 북지장사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의 편액은 현재 임시법당에 붙여있고, 법당에는 ‘석조지장보살좌상’도 모셔져 있다. 기도 스님의 독경소리가 청아하게 도량을 가득 메운다. 임시법당 정면으로는 북지장사 삼층석탑 2기(대구 유형문화재 제6호)가 나란히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불교신문 Vol 2730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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