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천년사찰 천년의 숲길

5 오산 보적사

浮萍草 2013. 6. 1. 07:00
    법당 처마 용마루 위로 잿빛도시를 널다
     
    ▲ (左) 독산성의 암문으로 만든 보적사의 ‘해탈의 문’이 이채롭다▲ (右) 성벽이 나지막한 산 능선을 휘감고 있다.
    세마대에서 보적사 법당 너머로 보이는 동탄 신도시
    은 밤까지 이어지는 택배 초인종 소리,러시아워 상관없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교통체증은 명절을 앞두고 어김없이 반복되는 풍경이다. 사람과 물자 이동으로 꽉 막힌 도로를 피해 서울역에서 오산가는 누리호를 타고 오산으로 향했다. 널찍한 좌석이 주는 3600원의 호사에 몸을 맞기면 창유리에는 출근시간에 전철역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수많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흘려 간다.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에서의 호사는 45분만에 오산역에 도착하면서 끝난다. 좀 더 소박한 여행을 원한다면 전철로 세마역에 내려 2km남짓 걸으면 보적 사로 향하는 길을 만난다. 문화유적에 이야기를 더한 둘레길이 오산에도 여러 있다. 이중 독산성을 끼고 보적사와 세마대에 오르는 역사흔적을 찾아가는 독산성 도보코스가 으뜸이다. 독산성은 독성산성이라고도 하며 평지에서 돌출하여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어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과 용인의 석성산성과 함께 도성방어를 위한 삼각점을 형성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백제가 처음 쌓고,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다. 성의 둘레는 3km,성곽의 길이는 1km 정도이다. ㆍ 권율 장군의 기지 담겨있는 세마대 아래 욕망을 털어내며 걷는 문화유산 둘레길
    한신공원 옆 계단에서 독산성 코스가 시작된다. 작은 골에도 나무다리를 놓아 가벼운 운동화로 충분하다. 가다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눠 있는데 어느 곳으로 올라도 보적사와 세마대에 이르게 되는 순환형 길이다. 오른쪽으로 들어섰다. 친절한 이정표를 따라 벤치가 보이기도 하고 잠시 차도가 나오기도 한다.
    더 오르면 나지막한 정감을 느낄 수 있는 독산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난다. 새로 보수된 부분도 있으나 옛 성벽의 모습이 상당부분 남아있다. 해발 200m 밖에 안 되는 성벽에는 사방이 평지인 덕에 아주 멀리까지 조망된다. 오산과 동탄이 나란히 들어온다. 서문으로 들어서면 다시 보적사 이정표가 양방향을 모두 가르친다. 이번에도 오른쪽으로 향한다. 남문을 지나니 보적사가 있다. 보적사는 산성의 암문이 ‘해탈의 문’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삼국시대 독산성을 축성하고 성내 현재의 터에 전승을 기원하며 창건된 이래 여러 차례 전란으로 중건을 거듭하다 조선시대 정조가 용주사를 세우면서 복원하였다. 현재는 법당 정면에 3층 석탑이 조성되어 전통사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보적사 바로 뒤가 세마대이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선조 25년 전라도 관찰사 권율 장군이 2만의 병력으로 평지에 홀로 솟은 독산성에 진을 치고 왜적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적장 가토가 이끄는 왜군도 수만 명에 이르렀다. 적장은 벌거숭이산을 끼고 있는 독산성에는 물이 부족할 것 이라는 판단을 하고 물 한 지게를 산위로 올려 보내 조롱하면서 성안에 식수가 동나기를 기다렸다. 이에 권율 장군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를 산위로 끌고 가 흰쌀을 말에 끼얹으며 목욕을 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성에는 말을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착각해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때 말을 씻긴 산꼭대기를 세마대(洗馬臺)라 하고 지금은 전각이 세워져 있다. 주변에 너른공간이 있어 수북한 눈밭을 걷으니 앙상하게 얽히고설킨 나뭇가지 사이로 단출한 3칸 법당 지붕에 동탄 신도시가 고스란히 걸려있다. 66층의 동탄의 마천루라는 메타폴리스도 황사에 갇히고 용마루에 걸려있기는 매한가지다. 인간의 욕망이 만든 잿빛도시도 빨래처럼 작은 법당 처마 사이에 널어 볕을 쬐고 청명한 바람을 쏘이고 싶다.
    불교신문 Vol 2694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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