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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정산성 미륵암

浮萍草 2013. 5. 11. 07:00
    화엄벌에서 미륵암까지
    원효대사의 설화가 한 보따리
      
    ▲ (左)능선을 따고 유유히 흐르는 금정산성 너머로 부산시내 전경이 들어온다. ▲ (中) 범어사에서 북문으로 향하는 바위길.▲ (右)
    원효봉에서 바라본 미륵암
    성암으로 향하는 비구니스님께 길을 묻고 범어사에서 금정산 북문의 미륵암으로 향한다. 바위길이다. 넓게 펴진 바윗길은 양쪽에 로프를 쳐두어 길을 잃지 않게 하지만,등산로 중간중간의 철책은 눈에 거슬린다. 그러나 이 경계가 야생동물의 터전을 보호한다면 그 경계를 탓할 수 없을 것이다. 40여분 바윗길을 오르다 보면 순탄한 길이 나오고 이내 북문이다. 금정산성 4문 가운데 가장 거칠고 투박하다는데 지금은 북문일대 정비작업으로 곳곳이 파헤쳐져 어수선하다. 세심정 인근에 상당히 너른 공간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설파해 화엄벌이라고도 한다. 또한 금정산성 방어를 위한 범어사,국청사,해월사 등 스님들의 승병 훈련장이기도 하였다. 광장 사이사이의 안내판을 읽다보면 이곳의 역사와 유래를 쉽게 접한다. 부산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진산 금정산과 영남 대찰인 범어사. 이런 이름을 얻은 유래는 금샘 설화로 뿌리를 같이한다. 설화에는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빛 나는 우물 곧 ‘금정(金井)’ 이란 산 이름과 범천의 고기 곧 ‘범어(梵魚)’라는 절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주석했다는 미륵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자리한 미륵암.

    역사의 퍼즐을 맞추며 10여분 완만한 길을 걸으면 원효대사가 주석했다는 미륵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자리한 미륵암을 만난다. 이곳의 이름은 법당인 염화전 뒤 암봉이 마치 화관을 쓴 미륵부처님처럼 생겨 신령한 기운을 준다해 지어졌다고 한다. 원효대사의 이야기는 미륵사에서도 계속된다. 이곳 가장 높은 바위에 신라 장군기를 꽂고 동래 앞바다에 진을 치고 있던 왜병을 유인한다. 장군기를 보고 올라온 첩자를 신통력으로 사로잡은 뒤 호리병을 손에 들려 살려 보냈는데 적장이 이 호리병을 깨뜨리자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는 것이다. 독성각 옆 바위에는 원효대사가 신라 장군기를 꽂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독성각에 오르는 돌계단길 중간, 석간수가 나오는 작은 샘에 얽힌 얘기도 재미있다. 바위 구멍에서 쌀이 한톨씩 나와 이곳 스님의 끼니를 잇게 했다는데 하루는 사미승이 쌀을 더 많이 나오게 하려고 막대기로 쑤신 후 쌀 대신 물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독성각 뒤 바위 면에는 원효대사가 그렸다는 마애불이 남아있다. 옛이야기를 뒤로하고 이번에는 금정산성 둘레길을 나선다.
    미륵암 인근에서 만난 처한 자리에서 항상 주인이 되라는 글귀가 신년에 제법 잘 어울린다

    금정산성은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해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병자호란 이후 만들어 졌으며 총길이는 17km에 이른다. 일제시대 파괴된 동서남북 4문의 복원을 시작으로 산성 복원과 둘레길 정비가 상당이 이루어 졌고,사이에 복원된 망루가 경치구경 하기 제격이다. 북문으로 돌아와 동문으로 향했다. 3.6km 정도의 완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는 정비가 잘된 트레킹 코스다. 원효봉에서 내려다보는 곡선의 금정산성과 그 너머의 부산시내 그리고 아련히 펼쳐지는 바다. 뒤를 돌아보니 미륵암 전경이 일품이다. 정오에 시작한 산행이 동문을 빠져나갈 때 쯤 태양은 제법 기울어 포근한 오렌지 빛깔로 세상을 감싸고 있었다.
    불교신문 Vol 2688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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