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천년사찰 천년의 숲길

4 구례 사성암

浮萍草 2013. 5. 25. 07:00
    그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인간 옭매는 경계의 그물 없더라
    사성암에서 바라본 세상. 지리산 능선 사이의 평야와 섬진강이 서로 잘 어울려 모순됨이나 어긋남이 없다.
    금강산 보덕암을 떠올리게 하는 사성암 전경
    서운 칼바람이 부는 날. 사성암을 가기위해 구례구역에 내렸다. 시간당 한 대꼴로 열차가 잠시 멈췄다가는 단촐한 역이다. 역 광장에서 보이는 성삼재-길상봉(노고단)-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능선이 신비감을 주고 그 앞에 온화해 보이는 오산의 사성암을 보고 있자니 찬바람이 가슴속 깊은 곳까지 상쾌하게 해준다. 그런데 역 광장 앞에 택시기사들 간에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이유는 구례구역의 이름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역은 구례 입구에 위치해 있지만 행정구역상 전남 순천이다. 역을 이용하는 사람 중에 구례군민이나 구례에 관광온 이들이 많지만 구례 택시는 영업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순천택시와 구례택시간에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 (左) 소원바위 앞에는 얽힌 설화를 그림으로 표현해났다▲ (中) 사성암 가파른 절벽의 계단이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右)
    너덜겅 돌탑 입구의 기암괴석이 손을 들어 맞이한다.

    도시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이 순박한 작은 마을도 아등바등하며 사는,별수 없는 사바세계라고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택시를 타고 오산 등산로 입구에 내려달라고 부탁하니,대뜸 사성암에서 소원은 한 가지만 빌라고 귀뜸한다. 더 빌면 안 들어 준다면서. 기도도량으로서 명성이 대단한가 보다. 오산 입구로 이동하여 사성암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조금 오르다 보면 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인 너덜겅을 만난다. 너덜겅 사이로 길을 만들면서 비탈면 위쪽으로 사람키 만한 돌탑이 조성해, 너덜경이 밑으로 흐르는 걸 막아 지나가는 이들의 외호 신장 역할을 해준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온화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급경사나 난코스는 없지만 꾸준히 오르기만 해야 하는 길이 이어진다. 시간은 정오를 향하는데, 아직 비스듬히 떠 있는 태양은 겨울의 찬바람을 몰아내기에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이 길을 한 시간 남짓 오르면 사성암에 이른다. 사성암은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가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직의 거대한 바위에 20m정도 기둥을 세워 전각을 지은 모습이 금강산 보덕암과 흡사하다. 약사전과 법당 모두 바위에 살짝 걸쳐 당우의 대부분을 허공의 기둥이 바치고 있는 형상이다. 고개를 위로 꺾어 아찔하게 서 있는 전각을 보고 있자면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약사전에는 원효스님이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는 마애약사여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기암절벽에 음각으로 새겨졌으며 왼손에는 약사발을 들고 있다. 사성암은 여느 절과 달리 넓은 마당이 없다. 대신 법당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돌계단은 소원을 적은 기와와 대나무가 양쪽으로 펼쳐지며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법당을 옆으로 끼고 돌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는 소원바위가 나타나고 시야가 뻥 뚫리는 풍광이 연출된다. 해발 500m가 넘는 사성암에서 섬진강이 평야와 마을을 가로 지나고 그 너머로 지리산의 연봉들을 또렷이 볼 수 있다. 더욱이 시야가 가장 좋은 방향으로 ‘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관망도’ 라는 안내판이 큼직하게 설치되어 있다. 천문대에 가면 돔 지붕에 영상을 쏘아 밤하늘의 별을 먼저 보여주고 이어 별자리 모양을 이어주는 것 같은 친절함을 느끼게 해준다.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구례구역에 다시 도착했다. 열차도착 시간 10분전이 되니 승강장에서 대기하라는 자동안내멘트가 흘려 나오고 전광판에는 빨강불이 깜빡거린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한분이 바삐 짐을 챙겨 승강장으로 향하니 역무원이 짐을 받아 들고 추우니 일찍 나가시지 말고 따듯한 대합실 계시면 열차오기 바로 전에 말하겠단다. 사바세계도 자비의 나눔이 함께한다면 한파를 녹이지 못하는 겨울햇살보다 따스할 것이다.
    불교신문 Vol 2692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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