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불교미술의 해학

45.아라한을 괴롭히는 것

浮萍草 2014. 3. 11. 07:00
    아침저녁 예불을 할 때“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 제대 아라한 무량자비성중”하여 부처님 당시 부촉을 받은 아라한에 대한 예를 올린다. 아라한을 이미 모든 번뇌를 끊어버린 경지 이므로 마땅히 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추신 분이기 때문에 응공(應供) 이라 하여 사찰에서는 나한전이나 응진전에 그 형상을 모셔두고 공양을 올린다. 또한 나한은 미래부처님인 미륵불이 하생하기 전까지는 열반에 들지 않고 신통력으로 수명을 연장하며 우리 곁에 계신다고 한다.
    “10년 수행 참아도 가려움은 못 참겠네”
    바늘 꿰려 안간힘 쓰는 아누루타 존자 ‘재미’ 나한님들의 친근한 일상…‘인간미’ 새록새록
    수원 용주사의 가섭과 아난
    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제일 처음인 분이 가섭존자이다. 가섭존자는 대가섭존자라 하여 이미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이심전심(以心 傳心)의 주인공이다. 부처님과 미소로,혹은 자리를 나누어 앉음으로,이것도 모자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자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 청하여 부처님의 발을 보여줌으로써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선의 초조가 되기도 하였다. 가섭존자가 어느 때 사위성 깊은 숲속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하다가 길게 자란 수염과 머리,헌옷을 입은 채로 기원정사에 찾아갔을 때 많은 대중 들은 마음속으로 그를 경멸하였으나 부처님께서는 여러 대중의 마음을 읽으시고 찬탄하여 말씀하시길 ‘가섭아 잘 왔다.’하고 앉은 자리의 절반을 가섭에게 내어주셨다고 한다. 가섭존자는 부처님이 주신 분소의(糞掃依)를 받아 입고 8일 만에 아라한 과를 증득하였으며 항상 거친 옷과 거친 음식에 만족하고 수행에 몰두하여 두타(頭陀)제일이란 칭호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가섭은 그림이나 형상으로 모실 때 언제나 늙은 비구의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가섭존자로부터 법을 받은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며 제바달다의 친동생으로 왕자의 신분답게 늠름하고 씩씩한 젊은 비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8세에 출가하여 20세부터 부처님을 모신 미남 비구로 마등가녀의 유혹에 넘어가 부처님께서 능엄경을 설하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아난존자는 지조를 지키고 몸을 잘 보호하여 수행을 완성하였다 한다. 다문제일(多聞第一)로 부처님을 25년간 모셨으며 부처님 멸도 후 제1차 결집 때 경전 결집에 큰 역할을 하였다. 부처님의 모든 경전에 그 유명한 첫마디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러하듯 가섭과 아난으로 전해진 부처님의 정법안장은 3조 상나화수존자를 비롯한 28조 보리달마에 이르렀으며 부처님의 정법 안장은 중국으로 건너와 33조 혜능을 거쳐 오늘날 한국에 부처님의 정법안장이 전해져 그 열매를 맺고 있다. 먼저 화성 용주사 삼세불화에 나타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살펴보자. 부처님의 연화좌 밑에서 아난을 가르치는 듯 가섭의 얼굴은 인자한 표정과 자애로운 자태로 나타나 있고 두 손은 가슴에 모아서 손가락을 양쪽으로 굽혀 맞대고 있다. 쭈글쭈글한 늙은 얼굴에 흰 눈썹은 서기가 서려 있고 자라다만 흰 머리카락과 깎지 않은 수염은 밤송이처럼 따갑게 느껴진다. 매부리코엔 두타행의 상서로움이 그대로 배어 있고 이빨이 빠져 다문 입은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인데 앗! 이것은 뭐야? 긴 귀에 붉은 귀걸이는 무엇이람? 손녀에게 멋없단 소리 들을까봐 귀에 포인트를 주셨나 보다. 패션 감각 뛰어나게 치장을 하셨네? 분소의를 입고 두타행을 하시는 가섭존자와 붉은 귀걸이라 어딘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그 다음 아난존자를 살펴보자. 아난존자는 경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여성들의 우상(偶像)으로 준수하게 생겼다. 청년의 미모에 크고 살짝 들어간 눈, 반듯한 이마, 잘생긴 콧대 등등 총명함이 그대로 들어난다. 지금 보아도 어느 탤런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법 하다. 살짝 든 책을 통해 팔만사천 부처님 경전의 저자는 자기임을 과시하는 듯 뽐낸다. “가섭존자님 경전의 저자는 접니다. 저작료를 받아야 하나요?” 하니 가섭존자께서 “알았어! 저작료 받아서 나 옷 한 벌 해줘?”하고 묻는 듯 두 손을 모아 화답한다. 아난존자와 가섭존자와의 대비를 통해 인간의 늙어 감을 여실히 보여주어 또한 교훈적이기도 하다. 철저한 부조화로 해학을 창조해 내는 단원 김홍도의 혜안(慧眼)에 존경심을 표한다.
     
    장성 백양사의 바늘꿰는 아라한(왼쪽)과 등을 긁는 아라한.

    이번엔 장성 백양사 대웅전에 모신 16나한의 모습을 보자. 아누루타 존자인가? 바늘에 실을 꿰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신 모습이 재미있다. 아누루타 존자는 공부하지 않는다고 부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자 발심하여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 공부 하였다. 계속하여 잠을 자지 않고 눈을 혹사하자 부처님께서 “아누루타야 눈을 잠을 먹이로 하니 쉬도록 하여라.” 하고 걱정하였으나 결국 두 눈이 멀고 말았다. 그 대신 천안통을 얻어 천안제일이 되었다. 어느 날 존자가 바늘에 실을 꿰려 안간힘을 써보았으나 되질 않자 주변에 도움을 청하며“누가 이 바늘에 실을 꿰어주는 복을 짓지 않겠는가?” 하니 마침 그 곁을 지나시던 부처님께서 실을 꿰어주었다. 놀란 아누루타는 “세상의 복전(福田)이신 부처님께서 무슨 연유로 또 복을 지으려 하십니까?”하고 물으니 부처님께서는 “복은 많이 지을수록 좋기 때문에 나는 작은 복도 놓치지 않으려한다.”고 말씀하셔서 작은 복의 공덕도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다. 이러한 일화를 생각하며 이 나한상을 보면 재미가 솔솔 난다. 실 꾸러미를 무릎위에 얹어 놓고 보이지 않지만 평소의 습관대로 한 눈은 크게 뜨고 한 눈은 살짝 감아서 실을 든 손이 바늘귀를 찾아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살짝 기울인 고개, 찡그려 주름진 얼굴엔 곧 될 듯, 될 듯 하지만 계속 허탕을 치니 계면쩍은 미소가 흐른다. “존자님 제가 꿰어드리고 복을 지을까요?” 물어보고 싶은 생동감이 넘친다. 그 옆의 등을 긁는 아라한은 그 시원함을 금치 못하는 것 같다. 한 손으로는 가사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막대기로 등을 긁는데“옳지! 옳지! 바로 거기야 거기” 가려운 곳을 바로 찾았는지 한쪽 눈은 감으며 정확히 위치 추적을 한 것 같다. 아주 만족스런 웃음을 띠며 시원해 한다. 깨달음이나 등 긁는 것이나 순간에 이루어지는 카타르시스 아닐까? 아라한의 표정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주 불회사 아라한. 등 긁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또한 나주 불회사 대웅전 포벽을 보면 내 어깨가 근질근질하여 긁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벽화가 있어 해학적이다. 참선을 하다말고 갑자기 등이 가렵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워 웃옷을 벗고 오른손으로 등 긁개를 잡고 등을 굽혀 가려운 부분을 긁어보지만 그곳이 아니듯 싶다. 가려움은 계속되고 정말 미치겠네! 콧물은 흐르고,등짝은 얼마나 긁었는지 벌겋게 부어오르지만“헉! 여기도 아니네?” 가려움을 참지 못하는 눈빛이 보는 이의 등짝을 근질거리게 하여 재미있다. 이러하듯 사찰의 아라한님들은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오히려 쉬워도 사소 한 일상의 삶은 오히려 어렵다. 깨닫기 이전에는 서슬 퍼런 칼 날 위에서 수행하지만 깨달음에 이르면 “평상심이 도”라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고 인간적이다. “10년 수행은 참을 수 있지만 지금 당장 가려움은 절대 못 참아!”이 한마디 외침이 중생들에게 웃음으로 전해져 봄날에 꽃을 피게 한다.
    불교신문 Vol 2487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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