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불교미술의 해학

42.파격적이어서 더 재미있는 불화

浮萍草 2014. 2. 18. 07:00
    부처님께서 말씀하실 때 모든 화신(化身) 부처님이 증명하시고 무수한 보살들이 서원하며 많은 아라한들과 천신 들이 예경을 한다. 이 자리는 너무나 경건하고 숭엄하여 자칫 한눈 팔수 없는 긴장된 순간이기도 하다. 만약 지금 이 자리에 부처님이 설법 하신다면 우리들은 어떤 마음일까? 장엄된 도량에 놀라고 희유하신 세존의 음성에 가슴은 떨리고 광명의 빛으로 인해 정신은 아득할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게 부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딴 청을 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격을 깨는 파격미(破格美)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사찰의 불화를 잘 살펴보면 놀라기도 하고 입가에 미소가 흐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여유로움에 감탄하며 아! 이런 것이 불교미술의 해학이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법석중에서… 지옥에서도… 구석서 속닥속닥 들키면 어쩌려고
    장엄한 곳서 딴청 피는 두 보살님 ‘조마조마’ 명부세계서도 후미진 곳서 옥신각신 ‘귀여워’
    여수 흥국사 대웅전 영산회상도 부분
    저 여수 흥국사 대웅전 영산회상 불화를 살펴보자. 녹색과 적색 그리고 연주황색이 어우러진 채색의 아름다움과 함께 항마촉지인 (降魔觸地印)을 하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중앙에 앉아 <법화경>을 설하신다. 부처님 정상계주(頂相珠)에서 뻗쳐 나온 신령스러운 기운은 장엄을 더해주고 있다. 그 주변으로 문수, 보현 약왕, 미륵보살 등 4대보살이 전면에 서 계신다. 그 앞쪽에는 사천왕이 전면 호위를 맡고, 그 뒤쪽에는 가섭, 아난 등 6대 제자 들과 화신불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측면에는 작은 두광의 범천,제석천이, 맨 뒤쪽에는 여래팔부중(如來八部衆)이 철통 경계를 서고 있다. 이러하듯 모든 성중들이 경건하게 부처님을 향하여 설법에 귀 기울이는 엄숙함 이 흐르는데 약왕과 미륵보살만이 딴전을 부린다. 경직된 자리에서 이 두 보살의 딴전은 중생들이 한숨 돌리는 여유를 갖게 한다. 수많은 성중들의 이목(耳目)이 한곳으로 집중되어 부처님의 말씀에 온 정신을 쏟고 있어 중생들이 이 성중들과는 눈을 맞출 여유가 없지만 아무리 바쁘고 거룩한 장소라도 유독 약왕과 미륵 두 보살만은 중생을 생각하신다. “부처님 보다 중생 먼저!”란 슬로건으로 고개를 갸웃 돌려 중생을 향하시니 다른 성중과 차별이 되어 바로 눈에 띄어 법석의 격을 깬다. 파격적인 멋이다. 누굴 찾는 눈치다. 오늘 이 법석에 내가와 있음을 아시는가? 날 찾는가? 눈도장이라도 찍으려 눈을 맞춘다. 알아보았다는 듯이 홍조 띤 얼굴에 부드러운 눈길, 무슨 말씀인지 속삭여 줄 것 만 같은 미소를 머금은 입술,투명 광배에 화려한 보관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살님은 기다리셨구나. 중생이 올 줄 알고 무수한 세월을 생각하며 기다리셨구나.
    부처님 말씀 마다하시고 허물 많은 중생을 섭수하려 지금껏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며 상구보리(上求菩提)보다는 하화중생(下化衆生) 에 더욱 마음을 두고 계신 듯하다. 일체중생에게 헌신하는 약왕과 미륵 양대 보살님의 돌출적인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라 따뜻한 정을 느낀다. 여수 흥국사는 떠나보내 다시 그리운 내님이 계시는 곳이다. <보살지지경>에 “어떤 것이 보살의 원인가? 저 보살이 처음으로 무상보리심을 일으키면 이를 발심원(發心願)이라 하고,미래세가 다하기까지 중생을 위한 까닭에 좋은 일이 있는 곳마다 태어나기를 원하면 이를 생원(生願),모든 법의 무량한 여러 선근을 관찰하고 경계를 생각하기를 원하면 이를 경계원(境界願) 이라 하고 미래 세상에서 모든 보살이 잘 거두는 일을 잘하리라고 원하면 이를 보살의 평등원(平等願)이라 한다”하여 보살의 다섯 가지 원을 밝히고 있다. 나도 보살이 되어 끝없이 중생 위한 원을 세워보자.
    화성 용주사 박물관 아미타도 부분
    한편 용주사 효행박물관에 있는 석남사 아미타불화를 보면 또 하나의 파격 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미타 부처님께서는 극락세계의 즐거움을 열심히 설명하시는데 또 딴청을 부리는 부처님의 제자들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극락의 이야기도 이젠 싫증이 나셨나? 다른 제자들과 성중, 화신불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합장 예경하고 부처님 말씀을 경청하는데 어라? 이분들이 부처님 제자 맞아? 부처님은 열심히 중생 제도하시는데 이 두 분은 다른 경전을 펼쳐들고 입을 벌려 크게 떠들며 이야기 한다. 책을 든 제자가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키며“이 책의 글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 옆의 제자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난처하다는 듯이 양손을 펼쳐 보이며“아니 난 몰라”란 표현을 한다.
    이 광경을 곁눈질로 보고 있던 코끼리 탈을 쓴 야차가 눈으로 거든다. 입을 실룩거리며 “아니 그것도 모르면서 시끄럽게 하세요?” 이러한 소란에도 주변의 화신불, 두 분의 존자, 용왕은 눈길도 주지 않으며 오직 부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데 진력을 하고 있다. 이 불화를 보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 몰래 만화책 꺼내보다 들켜 혼난 기억이 새롭게 피어오른다. 이러한 불화 또한 경직되고 획일화된 사고를 배척하고 무궁무진한 사유 세계를 존중하는 불교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여유롭고 아름다워진다. 죄인을 추달(推撻)하고,그 죄를 판정하는 살얼음판 같은 엄숙한 지옥의 법정에서도 엄숙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을 치며 싸움을 하거나 항변을 하는 무리들이 있어 또한 파격적이다. 지옥의 세계에도 이런 여유가 있구나.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해학적이다.
    합천 해인사 명부전 시왕도 부분
    먼저 합천 해인사 명부전의 시왕도 일부를 보면 두명의 지옥의 판관들이 5명의 죄인을 잡아다 꿇어 앉혀놓고 심문을 한다. 죄의 내용을 기록한 두루마리 판결문을 가슴에 안고 대질 심문이라도 하는 듯 질문을 하니 칼을 벗은 죄인이 대답을 한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항변이라도 하는 눈치이나 그러나 무슨 소용 있으랴? 칼을 쓴 옆의 죄인들이 한심하다는 듯 수군덕거린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예수시왕생칠경에 의하면 염라대왕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저와 여러 왕 들이 모두 흑의(黑衣)에 흑번(黑幡)을 들고 흑마(黑馬)를 탄 저승사자를 망자의 집에 파견하여 무슨 공덕을 지었는지 이름을 확인한 후 도첩(度牒) 에 따라 죄인을 가려 뽑아 놓아주며 본래의 서원을 어기지 않고 있습니다.” 고 말하여 절대로 공정하게 죄인을 다루고 있음을 밝혀두고 있다. 대질신문이 지루하였던지 그 위의 우두(牛頭),마두(馬頭) 옥졸은 그사이를 참지 못하여 장난을 친다. 말머리 옥졸이 소머리 옥졸의 턱을 치며“야! 너 까불지 마”하며 장난을 친다. 저승사자에서 도첩을 넘겨받던 판관이 옥졸을 가리키며 한소리 한다. “야! 너희들 장난 그만 쳐라. 예들은 만나면 장난질이야” 지옥의 옥졸들이 부모나 선생님 눈만 벗어나면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초등학교 학생 같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지장도 부분
    이뿐만 아니라 안동 봉정사 대웅전 중단의 지장시왕도를 보면 7폭 병풍이 둘러쳐진 중앙에 지장보살님이 앉아계신다. 그 앞에 선악동자가 꽃을 들고 있으며,주변 좌우로 협시한 도명존자,무독 귀왕과 시왕,그리고 그 뒤로 저승사자,머리털이 위로 솟은 앙발(仰髮)귀신, 장군,동자 등 지장보살의 무리들이 근엄하게 명부(冥府)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데 뒤쪽 후미진 곳에서는 서로 자리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이나 지옥이나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다툼이 있게 마련인가? 저승사자의 무기인 도끼를 문 용(龍)과 앙발귀신과의 일전이 벌어지려는 순간이다. 앙발귀신이 근육질 팔로 철퇴를 내리치려니 뒤 병풍은 찢어지고 저승사지 의 무기인 용 또한 절대 물러서질 않는다. 서로 눈알을 부라리니 큰 싸움이 벌어지려나 긴장감이 감돈다.
    “애들 이러다간 지장보살님께 혼나지?” 곁에 있는 마두옥졸과 호두(虎頭) 옥졸은 머리를 맞대고 소리 낮추어 속삭인다. 주변을 관망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말과 호랑이의 걱정스런 표정이 너무 천진난만하여 오히려 귀엽다. 이쯤 되면 지옥도 한번쯤 가서 구경할 마음의 여유가 생길까? 엄정한 명부의 세계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티격태격 다투거나 장난을 치는 모습은 너무나 재미있다. 잘못된 자들을 잡아들이는 지옥의 세계에서도 한줄기 휴식의 짬이 있으니 지옥의 세계보다 좋은 인간세계에서는 싸우지들 말고 여유를 느껴보았으면 한다.
    불교신문 Vol 2481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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